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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행복, 대한민국’ 그리고 우리의 민낯

기자명 강용주
  • 법보시론
  • 입력 2015.05.06 16:55
  • 수정 2015.06.11 10:44
  • 댓글 0

요즘 아침마다 광화문 광장에 나간다. 겨우 커피 한잔 들고 진실규명을 가로 막는 특별법 시행령 철폐를 주장하며 농성중인 이석태 세월호 특별 조사위원장을 보러간다. 광화문에 가면 4.16참사 이후 가장 많은 인원인 250여명의 유가족들이 상복을 입고 삭발한 모습으로 1박2일 걸어서 광화문에 왔던 지난 4월 초의 슬픈 모습이 겹쳐진다. 유족들이 영정을 들고 광화문 광장에 모인 뒤편의 정부 종합청사에 걸린 ‘국민행복,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플래카드는 바람에 반쯤 찢어져 너덜거리고 있었다.

세월호 가족들을 지원하기 위한 배보상이 확정되었지만 정작 유가족들은 반발하고 있다. 돈으로 능욕하지 말라고 호소한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모욕감을 느끼는 것은 왜일까? 누군가와 돈을 주고 받을 때 마음 상하는 일을 한번쯤 경험했을 것이다. 말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은 그래서 나왔을 터이다. 개인적인 관계에서도 그럴진대, ‘금요일에 돌아올게’하고 수학여행 떠난 아이들이 배와 함께 가라앉는 것을 두 눈으로 목격한 부모들은 어떠했을까. 국가가 가족들에게 돈을 지급한다는 의미는 그래서 조금은 더 특별해야 할 것 같다.

첫째, 돈의 성격 문제로 고통의 본질을 이해한 돈이어야 한다. 꼬리표가 분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망자 1인당 얼마씩이라고 하는 것은 고통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또한 고통을 당한 피해자 모두에 대한 위로여야 한다. 사망한 당사자 뿐 아니라, 참척의 고통을 당하고 있는, 가족들의 고통을 끌어안을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교통사고 사망자 1사람당 얼마, 이렇게 정의하는 것은 자식을 잃은 부모 그들의 참척의 고통을 전혀 이해 못한다는 뜻이다. 두번째, 고통의 책임성 문제이다. 지금 특별법 시행령 가지고 문제가 많다. 진실규명은 첫걸음도 떼지 못했는데, 1인당 얼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고통을 당하게 된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뜻이다. 보상을 받으면 손해배상을 할 수 없게 된다. 진실규명 없이 돈으로 진실을 덮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여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셋째, 돈 앞에서 모욕감을 느끼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유족들을 배려해야 한다. 사고로 가족을 잃었을 때, 위로나 보상금을 받은 경험이 있는 분들은 알 것이다. 피해자가 정당한 위로금이 아니라 “목숨 값”이라는 비아냥을 느끼게 만든다면 잘못된 일이다. 벌써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년이 지났다. 미국의 9.11이나 광주의 5.18처럼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사람들은 그 일이 일어난 시기가 되면 심리적으로 힘들어지는 트라우마의 ‘기념일 반응’을 겪게 된다. ‘기념일 반응’은 ‘불충분한 애도 혹은 해결되지 못한 애도’시에 더 잘 나타난다. 이 말은 우리사회가 세월호 참사를 겪은 유족들과 생존자들이 충분히 슬퍼하고 위로 받을 수 있도록 돕는다면 그 ‘기념일 반응’을 잘 극복할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다. 상처를 헤집고 못질하며 피흘리게 한다. 4월16일이 왔지만 유가족들은 맘껏 슬퍼하지도 못하고 추모식을 취소해야하는 현실이다. 세월호 참사 1주기가 애도와 위로의 자리가 되긴 커녕 ‘세월호 증후군’으로 고착 되려고 한다.

지난해 4.16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세월호 유족들의 가장 큰 바람은 내 아이, 내 가족을 돌려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죽은 자를 살려서 데려올 수 없다. 그 걸 들어줄 수 없는 이 기막힌 상황에서, 보상금 지급 문제는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 그 문제가 바로 이 사회의 품격 문제라는 생각을 한다. 돈과 바꿀 수 없는 가치의 문제, 돈보다 사람의 마음, 보상 문제에서도 우리가 끝까지 지키고 고수해야할 방향이 아닐까.
유가족들이 상복을 입고 영정을 들고 광화문까지 와야하는 현실은 우리 사회의 민낯이다. 그 어디에도 ‘국민행복, 대한민국’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바람이 대답한다. ‘국민행복, 대한민국’ 플래카드를 찢어 발겨 위정자들에게 말하는 듯 한다. ‘국민은 안 행복하다고. 그런데 니들만 행복하냐’고. 세월호 1주기. 우리들의 대한민국은 슬프고 불행한데 당신들의 대한민국만 행복한가 보다. 바람도 아는 걸 얼마나 외쳐야 할까?

강용주 광주트라우마센터장 hurights62@hanmail.net
 

[1293호 / 2015년 5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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