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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의 행복

기자명 하림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15.05.11 10:59
  • 수정 2015.10.22 12:07
  • 댓글 2

용두산 공원을 걸어서 절로 들어오고 있을 때였습니다. 앞쪽에서 열심히 걸어오고 있는 60대 남성이 눈에 들어옵니다. 걷는 모습과 체형이 왠지 눈에 많이 익습니다. 챙이 있는 모자를 눌러쓰고 오로지 걷기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살짝 지나치면서 눈빛을 나눕니다. 그 순간 예전에 초등학교 운동장을 매일 걷던 그 눈빛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조금 그을린 낯빛도 보입니다. 건강해 보였고 얼굴에 약간 살도 올랐습니다.

7년전 암 투병하던 한 남성
포기 않고 ‘걷기’로 암 극복
직접 효과 입증 어렵겠지만
걷다보면 마음의 병도 해소

7년 전쯤 일입니다.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조기축구동호회에 나가던 일이 기억납니다. 초등학교 운동장에 50대로 보이는 한 남성이 빠른 걸음으로 열심히 돌고 또 돌았습니다. 눌러쓴 모자 아래로 굵은 땀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내립니다. 아무 말도 없이 그냥 돌기만 했습니다. 그분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습니다. 그러나 쉽게 알 수 없었습니다. 3개월쯤 지나자 그분에 관한 사연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목에 암이 생겼는데 위치가 좋지 않아 수술을 하기가 불가능했다고 합니다. 병원은 그분에게 남은 시간이 3개월 밖에 없다고 통보한 상태였다고 합니다.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은 그분은 포기하지 않고 걷기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몇 개월 뒤 병원에 갔더니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병원에 가서 사진을 찍었더니 암 덩어리가 말라 붙어있더랍니다. 병원에서 무슨 치료를 받았느냐고 되물었고, 그분은 그냥 매일 걷기 밖에 한 것이 없었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그 때 ‘걷는 게 이런 좋은 효과가 있구나’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 나도 자주 걸어야지’라고 다짐도 했지만 그 이후로 잊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그 분을 다시 만난 것입니다.  그분은 지금도 걷는 것을 계속하고 계셨습니다. 물론 누구나 이런 방식으로 암을 극복할 수 있다면 아마도 모든 환자들이 걸어서 병을 극복하겠지만 불행히도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차피 치료가 어렵다고 하는 상황이라면 경치 좋은 곳을 매일 걷는다면 그 나름대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세상을 만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 역시 이미 경험을 해봤습니다.

10여 년 전 뉴욕에 있을 때 매주 토요일 등산반에 참가 했었습니다. 오전에 올라가서 약 세 시간 정도 걷는 산행이었는데 오후에는 자기 일정을 소화할 수 있어서 좋아했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가는 산은 내가 자연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다시 알아차리도록 도와주었고 자연은 내게 생기를 주었습니다. 몇 년 뒤 저는 귀국했지만 그 산악회는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마침 도반스님이 밤새 몸이 안 좋아 잠을 자지 못했다고 합니다. 함께 차를 타고 오는 동안 목소리 높여 걷기를 해야 한다고 권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에는 주변을 둘러보면 좋은 산행코스가 많이 있습니다. 특히 그 스님 가까이에는 멀리서도 찾아가는 부산의 유명한 산책로가 있습니다. 바다를 끼고 걷는 ‘이기대’라는 곳인데 10분 거리에 있습니다. 아무리 가까이 있더라도 직접 걷지 않으면 소용이 없겠지요.

우리는 늘 무병장수를 기원합니다. 그러나 쉬운 것 같은데도 갈수록 어렵다는 것을 느낍니다. 몸만 잘 관리한다고 되지 않는 것을 많이 봅니다. 얼마 전부터 예전에 국가대표 수비수로 유명했던 정용환 선수가 암이 걸려 힘들어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3년 전부터 토요일 오후에 나가는 축구팀 일원이어서 함께 축구도 많이 했었습니다. 이 분은 술도 조금 하고 담배도 안하고 자기 관리를 잘하는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암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걷기도 중요하지만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능력도 중요해 보입니다.

▲ 하림 스님
미타선원 주지
반듯하게 살려는 분들이 그렇듯이 이 분도 남을 위한 삶에 애쓰고 자기 관리에 철저하다보니 스트레스를 견디기가 힘들었나 봅니다. 요즘 미국 심리학에서 3분 명상을 개발해서 그 효과를 많이 알리고 방법을 전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힘들 때 잠시 분리되어 쉴 수 있는 방법으로 3분간만 호흡이나 몸의 느낌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의 심신에 휴식을 주도록 하는 방법입니다. 이것이 걷는 것만큼 우리의 마음에는 건강한 휴식을 준다는 것입니다. 몸의 건강만큼 마음의 건강관리도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몸이 힘들어 하는 것은 우리에게 보내는 신호라고 합니다.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 용감한 일이지만 건강한 방법은 아닌 듯합니다. 오늘도 최고가 아닌 약간 뒤에서 자비와 연민의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좀 더 건강한 삶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1294호 / 2015년 5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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