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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한 번 생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나는 편도나무에게 말했노라.
편도나무야 나에게 신에 대해 이야기해다오.
편도나무야 나에게 신에 대해 이야기해다오.
그러자 편도나무가 꽃을 활짝 피웠다.
‘ 편도나무에게 ’
- 니코스 카잔차키스

우정사업본부는 4월 ‘과학의 달’을 맞아 한국을 빛낸 과학자들을 소재로 한 우표 3종, 104만4000장을 발행했다. 우리나라에서 과학자가 우표에 실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우리나라 첫 과학자 우표에 실린 과학자는 국립과천과학관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헌정된 31명의 과학자 중 고 이휘소(1935~1977), 석주명(1908~1950), 한만춘(1921~ 1984) 선생이다.

과학기술의 진흥에 국가의 명운이 걸린 점을 감안할 때 정부가 이번 세 과학자들을 기념하는 우표를 발행한 것은 매우 환영할만한 조치라 생각한다. 이는 국가의 장래를 걸머질 청소년들에게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을 고조하는 바람직한 효과를 불러오리라 기대한다.

국내 물리학자들은 특히 고 이휘소 교수의 기념우표에 많은 감회를 느끼리라 생각한다. 이휘소 교수는 현대 과학의 정수라고 할 만한 입자물리학 분야에서 세계적인 업적을 쌓은 천재 물리학자로서 그가 관여한 연구에 이미 세 번이나 노벨상이 주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생존했었다면 아마도 노벨상을 받았으리라 생각하고 있다.

이휘소 교수는 ‘게이지 대칭 이론’으로 소립자 물리학의 표준모형을 정립했다. 1979년 와인버그, 글래쇼와 함께 노벨상을 받은 파키스탄의 살람은 상을 받으면서 이휘소 교수의 천재성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이휘소는 현대물리학을 10여 년 앞당긴 천재이다. 이휘소가 있어야 할 자리에 내가 있는 것이 부끄럽다”

이휘소 교수는 6.25 한국전쟁의 참화가 아물지 않은 1955년 19세에 미국 마이애미 대학에 유학을 떠나 30세에 아이비리그인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정교수가 되었고 그가 42세에 자동차 사고로 사망한 1977년에는 시카고대학 정교수이자 세계적인 입자물리연구소인 페르미 가속기연구소 이론물리부장이었다. 한 나라 과학의 국제적 위상을 나타내는 단 하나의 지표로서 흔히 노벨상을 들고 있다. 현재 경제규모로 세계 10위권에 진입한 우리나라가 아직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없는 것은 참으로 아쉬운 대목이며 그런 의미에서 이휘소 교수의 비극적인 요절이 커다란 공허로 다가온다.

이휘소 교수의 인생과 학문은 그의 제자인 고려대 강주상 교수의 ‘이휘소 평전(럭스미디아, 2006)에 기술되어 있다. 그는 유학 중 ‘팬티가 썩은 사람’으로 알려질 정도로 연구 그리고 또 연구에 몰입했으며 모든 사교생활도 피해 주위로부터 인간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오해를 받기도 했다.

천재란 무엇인가? 카잔차키스는 편도나무에게 신에 대해서 물었다. 대답이 없자 또 물었다. 그러자 편도나무가 꽃을 활짝 피웠다. 카잔차키스가 말 못하는 편도나무에게 거창한 질문인 신을 물은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그러나 거듭되는 질문에 신은 활짝 핀 꽃으로 대답했다. 이것은 언어와 사유가 배제된 어리석은 선문답과 같다. 천재는 묻고 또 어리석게 물어 더 이상 물을 기력도 없는 막장에 존재한다. 이 막장이 ‘금강경’의 일합상(一合相)이고 선의 타성일편(打成一片)이고 정토의 염불삼매(念佛三昧)이다. 천재는 막장까지 밀고 가는 수정처럼 순수한 영혼과 대책 없는 뱃심의 소유자이다.

일찍이 인간의 전생(轉生)을 깨달아 입명한 헨리 포드는 “천재는 많은 생을 살며 오랫동안 경험해온 결과이다”라고 말했다. 천재는 단 하나의 생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천재는 수많은 생을 통한 끝없는 물음과 정진 속에서 피는 우담바라이다.

이기화 서울대 명예교수 kleepl@naver.com

[1294호 / 2015년 5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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