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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불가취 불가설

기자명 서광 스님

성자는 오직 상황과 조건에 맞춰 행동할 뿐

“수보리야, 여래가 가장 높고(깊고) 넓은 올바른 깨달음을 얻었다고 할 만한 법이 있는가? 또 여래가 그러한 법을 가르쳤는가? 수보리가 대답하기를, 제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기로는 여래께서 가장 높고(깊고) 넓은 올바른 깨달음을 얻었다고 할 만한 그 어떤 법도 없으며, 여래가 그러한 법을 가르치지도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가르치신 법은 붙잡을 수도 없고, 말로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그것은 법도 아니고 법이 아닌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모든 성자들은 다 무위법으로써 차별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고정관념으론 불법 설명 불가능
말과 문구에 사로잡힐 것 염려
불법은 순간적인 울림으로 생멸
오직 경험적으로 묘사될 수 있어

앞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항상 뗏목처럼 여기라고 말씀하신 부분을 좀 더 깊이 있게 풀어서 설명하고 있다. 이는 우리들로 하여금 당신의 가르침을 고통의 이 언덕에서 행복의 저 언덕으로 건너가기 위한 뗏목(수단/도구/방편)으로 사용하지 않고, 가르침 그 자체에 집착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당신의 가르침을 가슴으로 이해하고 느끼고 경험하면서 몸으로 실천하지 않고, 말이나 문구에 매달려서 고정관념에 사로잡힐 것을 염려한 것이다.

선의 가르침을 성격장애와 자살충동 치료에 적용해 온 마샤 리네한(Marsha Linehan)은 구체적인 도움을 제공하지 않는 자비심은 마치 소방대원이 불이 난 건물 창문까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는 창문을 부수고 안으로 들어가서 사람을 구해내는 것이 아니라 그냥 창문 밖에서 불에 타서 죽어가는 사람을 보면서 연민심을 느끼는 것과도 같다고 했다.

그런데 깨달음이라고 할 만한 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가르친 적도 없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또 여래께서 가르치신 법은 붙잡을 수도 없고, 말로 설명할 수도 없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나루터에 도착해서 배를 발견했으면 타고 건너가면서 노를 젓고, 풍랑과 파도를 다루는 법을 경험하는 것이지 배를 타지도 않고 논의만 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즉 불법은 나누고 봉사하는 실제 행위를 통해서 자신과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그 마음을 보고 닦고 적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법은 상황과 조건에 따라서 중생을 제도하고 이롭게 하는 방식이나 모양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가 있다. 뿐만 아니라 심지어 서로 상반된 형태로 드러날 수도 있기 때문에 고정된 개념이나 관념에 근거해서 불법을 설명할 수 없다는 뜻이다.

부처님과 같은 성자들은 자아에 대한 집착이 없기 때문에 오직 상황과 조건에 맞추어서 행동할 뿐이다. 이 말은 삶이나 인간관계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려고 애쓰거나(아집), 반대로 자아는 존재하지 않는다(무아)는 관념에 매달려서 무아를 일종의 고정관념, 신념, 생각으로 붙잡고 있지 않다는 의미다. 그래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상황이나 조건을 인위적으로 조작하려는 의지가 없고, 단지 인연하는 상대와 상황, 조건에 따라서(무위법) 다양한 방식으로 가르쳐진다는 의미다. 이를테면 생각을 지나치게 많이 하는 사람에게는 생각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생각 좀 하라고 가르친다. 부산에서 서울에 가는 사람에게는 북쪽으로 가라고 하고, 강릉에서 서울에 가는 사람에게는 서쪽으로 가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부처님의 깨달음은 머리를 넘어서 몸으로 아는 체화된 앎(embodied cognition)이고, 대상과의 역동적인 관계 안에서 결정되는 앎(enactive knowing)이고, 행위와 분리되지 않는 상황적 앎(situated cognition)이기 때문이다.


불법은 무아(無我)나 무상(無常), 공(空) 등과 같은 개념 자체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들이 울고, 웃고, 사랑하고 미워하는 순간순간의 경험과 함께 생멸하는 일종의 파도, 울림으로 현존할 뿐이다. 그것은 영혼의 순간적 울림으로서 생멸하기 때문에 붙잡을 수도 말로 표현할 수도 없다. 오직 경험 속에서 경험적으로 묘사될 뿐이다. 

서광 스님 한국명상심리상담연구원장 seogwang1@hanmail.net

[1294호 / 2015년 5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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