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빠사나명상센터 호두마을 - 하
위빠사나명상센터 호두마을 - 하
  • 최호승 기자
  • 승인 2015.05.11 13: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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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파리만 떼지 말고 ‘나’라는 번뇌뿌리 뽑아라”

▲ 매일 아침 지도법사와 수행자 사이에 수행인터뷰가 진행된다. 그룹인터뷰는 수행에서 만나는 장애와 경계를 해소하는 법석이다.

“나의 이 작은 몸 안에 모든 가르침이 다 있다. 그 안에 고통이, 고통의 원인이, 그리고 모든 고통의 종식이 들어있다.”

답답하거나 통증 수반한 정진
고통 탓에 사띠 놓치기 일쑤
의도 살피며 매순간 알아차림
1주일 집중수행에 심신 평안
지도법사 인터뷰로 경계 점검

“벼 하나 익는데 수개월 걸려
농사 같은 수행…조바심 금물”


호두마을 대수행홀 통로에 붙은 글귀가 수행자들 시선을 사로잡았다. 좌선이든 경행이든 답답하거나 통증이 엄습했다. 이 글귀를 새기고 새겨도 좀처럼 와 닿지 않았다. 지도법사 아신 빤딧짜 스님과 아침마다 수행인터뷰로 점검받고 실참하면서 몸과 마음은 조금씩 고통 종식으로 기울었다. 빤딧짜 스님은 늘 수행의 기본자세를 강조했다.

“몸과 마음이 편해야 수행의 기본자세가 된다. 어떤 현상이 있는지 몸 구석구석 느껴보고 살펴라. 앉아서 하는 게 힘들면 경행하고 마음이 약해 갖은 번뇌가 일어나면 자애명상이 좋다. 자애로운 말을 자주 하라. ‘내가 건강하고 평화롭고 행복하기를….’ 자꾸 하다보면 소리가 꺼져 들어가는 곳이 있다. 거기에 마음 두고 살펴라. 말을 하지 않으면 온갖 생각이 일어난다. 수없이 스쳐가는 짧은 생각들, 그 번뇌들은 자애로운 말을 자주하면 내려간다. 마음과 소리는 연결돼 있다. 30분이 고비다. 명칭을 붙이고 동사까지 말하라. 왼발, 걷다. 오른발, 걷다. 마음이 명확해지고 방향이 잡힌다. 행동하고 있는 몸을 확실하게 알고 나서 명칭을 붙여라. 춥거나 덥고, 딱딱하거나 말랑말랑한 느낌도 그렇다.”

몸에 힘이 들어갔던 심미정(가명)씨는 거짓말처럼 편안해졌다. 빤딧짜 스님 권유대로 경행과 자애로운 말을 읽고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변화가 생겼다. 좌선할 때 힘 빼려는 의도와 달리 몸 곳곳에 힘이 들어갔었다. 경행으로 바꾸니 무릎 쪽에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자애경’을 30분씩 읽자 마음에 없던 자애로움이 차올랐다. 빤딧짜 스님은 경계했다. 수행 중에 오는 여러 변화 중 하나라며 그의 들뜬 마음을 가라앉혔다. 어떤 느낌이 생길 때 그 현상을 싫어하거나 좋아하는 마음도 함께 바라보는 힘을 길러야 한다고 했다.

그러자 그에게 슬그머니 의구심이 고개 들었다. ‘관찰하는 마음이 중립적이지 않은 것 같다. 왜 같이 화내고 슬퍼하나.’ 스님에게 질문했다. 스님은 짧은 법문으로 경책했다. 법문은 집중수행 기간 도중 호두마을에서 실시한 단기출가 결정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아상’이 개입했다. 수행도 농사다. 벼 하나 익는데도 수개월이 필요하다. 어떤 바람이나 기대가 있다면 수행이 익지 않는다. 무슨 생각이든 관찰하라. 조바심 내지 말라. 그리고 수행처 밖에서 생활하던 습관대로 살고자 한다면 수행효과는 바라지 말라. 수행 전후의 삶이 조금씩 바뀌어야 한다. 사띠로 물질과 정신의 본질을 봐야 한다. 나무 이파리만 하나씩 떼면 다시 자란다. 뿌리를 제거해야 한다. 끊임없이 변하는 ‘나’를 고정된 실체로 여기고 제거하려고 하니 어렵다. 없애야할 고정된 실체가 없는데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나’라고 착각하는 물질과 정신의 본질을 보는 것이다. ‘나’는 고정된 실체가 아님을 늘 자각하라.”

▲ 일상에서도 마음에서 일어나는 작용을 알아차릴 수 있길 기원한다.

몸도 마음도 계속 변하고 있다는 점을 양정우(40)씨는 여실히 깨달았다. 호흡을 관찰하면서 번뇌가 일어나는 현상이 뚜렷하게 보였다. 몇 차례 번뇌가 끊기는 경험도 했다. 매일 한 시간씩 걷고 50분씩 좌선하며 사띠(관찰이나 알아차림)를 챙기고 싶어졌다. 또 친절 속에 감춰졌던 적의를 발견했다. 상대를 향한 언행을 직시하는 힘을 길렀다. 금연도 결심했다. 제일 길었던 금연 시간이 23시간50분이었다. 33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피워댔던 담배다. 빤딧짜 스님이 사띠하는 방식을 알려주며 격려했다. 3분 정도 담배를 피우고 싶은 마음과 몸의 증상을 관찰하라고 했다.

“위빠사나는 욕망을 없애거나 세속적 행복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욕망의 본성을 이해하고 세밀히 관찰해 이에 대한 바른 지혜를 가져 욕망과 집착, 고통이 스스로 사라지게 하는 수행이다. 일상 속에서 인연 따라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자기 생각과 감정을 알아차려야 한다. 관념을 만들어 그것을 붙잡고 있는 것은 수행이 아니다. 순간에 깨어있는 마음이 영원으로 통하기 때문에 시비와 분별을 일으키지 말고, 지금 있는 그대로를 알아차리는 데 집중해야 한다. 알아차리면 부처가 되고 못하면 중생이 된다.”

해외에서 거주하는 이주(40·가명)씨는 ‘내꺼’라는 생각이 컸다. 화도 우울도 기쁨도 슬픔도 ‘자기 것’이었다. 억눌러서 쌓였고 결국 터졌다. 빤딧짜 스님 집중수행을 두 차례 지내고 나니 달라졌다. 번뇌가 계속해서 일어나진 않았다. 몸 전체를 두루 보게 됐다. 왼쪽 몸에 쌓였던 긴장감도 풀렸다. 번뇌가 줄어 집중됐나 생각했다. 그러나 대수행홀을 나서면 금방 번뇌가 일었다. 평소에 참 생각이 많았다는 사실을 덤으로 깨달았다. 수행에 믿음이 생겼다. 사띠가 몸에 익을 때까지 정진할 계획이다.

명치가 답답했던 김가윤(29·가명)씨는 갑갑함이 조금 가셨다. 묵직함을 지켜보면 사라지긴 했다. 그러나 금세 다른 부위에서 나타나곤 했다. 집중수행 며칠이 지나자 경행하는 순간 작은 떨림이 몸과 마음을 휩쓸고 지나갔다. 양쪽 뺨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묵직함은 말랑말랑해졌다. 짧았다. 1초였나 싶었다. 놀랍게도 자신이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소름이 돋았다. 두려워 눈을 떴다. 빤딧짜 스님은 자애로운 말로 다독였다. “걱정 말라. 앞으로도 자주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이다. 희열이 오기도 한다. 그 때 일어난 느낌과 마음의 변화를 알아차리는 게 핵심이다.”

박소정(64·가명)씨는 행복했다. 3박4일 동참에 그쳤지만 충분했다. 남편에게 기대했던 점들을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버지이자 친구, 애인같은 남편을 바랐다. 기대들이 무너지면 올라오던 화를 주시하고 관찰할 힘이 생겼다고 했다. 적어도 세 번은 기다리면서 마음을 살필 수 있게 됐다.

수행자들은 마음속에 그득한 번뇌가 탈출할 출구를 희미하게나마 찾았다. 위빠사나로 마음을 올바로 바라보는 힘이 주는 효과였다. 자비희사가 탈출구였다. 자(慈)는 남에게 즐거움을 주려는 마음, 비(悲)는 남의 괴로움을 덜어 주려는 마음, 희(喜)는 남이 괴로움을 떠나 즐거움을 얻으면 기뻐하려는 마음, 사(捨)는 남을 평등하게 대하려는 마음이다.

자신의 마음 흐름이 어떤 것인지 살피는 사띠는 적의와 원한이라는 선하지 못한 마음에 자애를 계발해 탈출구를 만들었다. 상대가 고통 받길 바라는 마음, 즉 상대를 위한다는 잔인한 자기합리화로 상처를 주는 마음의 출구는 연민이었다. 시기와 질투의 탈출구는 다른 존재의 행복을 기뻐하는 마음이었다. 이 세 가지 탈출구에서 얻는 공덕에 자칫 생길 수 있는 ‘아상’을 버리는 게 네 번째 출구였다.

체로금풍(體露金風)이다. 잎사귀 다 떨군 앙상한 나무에게서 있는 그대로의 본체와 마주한다. 호두마을 떠나며 일상에서도 정진을 발원한 수행자들 마음이 입을 닫았다. 번뇌가 마음속으로 잠기기 시작했다. 호두마을서 멀어지는 발걸음 하나, 둘. 마음이 번뇌를 떨군다.

최호승 time@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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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바라보는 힘 생겨…수행인터뷰 인상적

직접 체험해보니

좌선·경행 등 30분 고비
잠·저림에 끄달리며 고통

▲ 호두마을 경내엔 수행자들을 경책하는 문구들이 곳곳에 있다.

30분이 고비였다. 좌선이든 경행이든 마찬가지였다. 쏟아지는 잠은 마음에서 이는 작용을 보려는 시도를 방해했다. 들숨날숨에 몰입하기도 어려웠다. 새벽 4시부터 시작하는 예불과 수행법문, 수행 일정은 일상에 길들여진 탓에 적응하기 힘들었다.

결가부좌를 하지 않았는데도 다리가 저리는 현상은 끝내 사라지지 않았다. 지도법사는 저리는 곳에 마음을 두고 관찰하다보면 번뇌의 뿌리가 어렴풋이 보인다고 했다. 다리가 불편하다는 느낌이 ‘싫다’는 의도를 보라 했다. 1주일 동안 그 의도까지 알아차리는 것은 요원한 일이었다.

좌선이 어렵다고 토로하자 지도법사는 경행을 권했다. 그랬더니 마음을 알아차리는 게 훨씬 편해졌다. 발바닥에서 일어나는 느낌과 이에 따른 마음작용을 살피니 빗소리나 새소리에 ‘좋다’ 혹은 ‘싫다’는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번뇌도 그냥 흘러갔다. 그러나 그런 마음상태에 젖어 ‘이것도 집착’이라는 마음에 그만 통제하고 멈추는 경우도 잦았다.

초심자를 위한 그룹 인터뷰는 인상적이었다. 각종 경계를 꺼내놓으면 지도법사가 친절하게 세세히 바로잡는 법을 알려준다. 다음 날 다시 그 부분을 먼저 묻고, 수행자는 답을 한다. 제대로 수행하지 않으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집중수행은 새벽 4시부터 오후 9시 잠을 청할 때까지 일정이 만만찮다. 반면 자유롭다. 스스로 수행하고 경계를 점검받도록 한다. 일정에 빠져도 잔소리가 없다. 웬만한 원력을 갖고 임하지 않으면 게을러지기 십상이다. 그러나 오후불식은 몸을 가뿐하게 했다. 한국테라와다불교로 출가한 스님들과 공양하고 스님들의 탁발현장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수행자 스스로를 경책할 수 있는 수행환경은 안성맞춤이었다.

[1294호 / 2015년 5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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