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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연자비 땅에서 ‘평화의 꽃’ 피어 난다

기자명 법보신문
  • 사설
  • 입력 2015.05.19 09:53
  • 댓글 0

불기 2559년 부처님오신날에 부쳐

꽃과 녹음으로 장엄된 봄산의 정취가 가득한 5월 서울 연등축제가 화려하게 펼쳐졌다. 운집한 인파만도 30만. 이제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축제로 자리매김 했다는 연등축제의 위상을 실감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불자뿐 아니라 시민들과 외국인들도 연등을 밝히며 부처님오신날의 뜻을 새겼기에 축제는 더더욱 의미 깊었다. 이제 곧 부처님오신 날, 사월초파일이다. 올해 봉축 메시지는 ‘평화로운 마음, 향기로운 세상’이다.

평화에 관한 한 인류는 아이러니한 행보를 걷고 있다. 70억 인구 중 평화를 원치 않는 사람은 없을 터인데, 인류 문명사가 곧 전쟁의 역사라 할 만큼 인류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살아왔고 또 지금도 살고 있다. 세계대전이 발발했던 20세기를 지나 21세기에 접어들었지만 우리는 안온한 삶을 영위하기 보다는 전쟁의 공포에 떨어야 했다. 아랍과 미국의 전쟁, 종교간 갈등으로 촉발된 이슬람과 힌두교, 이슬람과 기독교의 충돌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그렇다면 평화란 무엇인가? 누구든 원하지만 누구도 온전히 실현시키지 못한 그 평화란 무엇일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전쟁 부재’, 즉 전쟁 없는 세상이 곧 평화로운 세상이라는 인식이다. 지난해 여름 발발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무력 충돌 사건을 보자. 유엔(UN)보고서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무차별 공습으로 팔레스타인 2200여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그 중 1486명은 민간인이었고 대부분 아이와 여성이었다. 가자지구에서 벌어진 전쟁의 참혹함을 연상한다면 전쟁 없는 시대가 곧 평화의 시대다. 그러나 ‘전쟁 부재’가 곧 ‘평화’라는 건 좁은 의미에서의 평화규정이다. 여기서의 평화는 군사력을 토대로 한 잠정적이고도 제한적인 평화이기 때문이다. 이웃 국가로부터 침범을 받지 않으려면 자국의 군사력은 강력해야 한다. 비판적 관점에서 말한다면 이는 곧 평화라는 미명 아래 약소국의 정당한 저항마저 억누르는 또 하나의 폭력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평화의 개념을 전쟁부재에서 좀 더 확대해야 한다.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왕국은 카필라국이었고, 마야부인은 콜리국 출신이었다. 카필라국과 콜리국은 동맹국이었는데 국경지대에 ‘로히니’ 강이 흐르고 있었다. 가뭄이 극심해 지자 농사짓는 사람들은 더 많은 물을 가지려 싸우기 시작했고 급기야 양국의 분쟁으로까지 치달았다. 전운이 감도는 일촉즉발 상태에서 양국은 대치하고 있었다.

2600여년 전의 이 상황은 지금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세계인구의 약 14%에 해당하는 10억 인구가 극심한 물 부족에 신음하고 있다. 유프라테스강, 메콩강, 나일강 주변국은 ‘물 전쟁’ 중이다. 2050년에는 세계인구 중 40%가 물 부족에 시달릴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물 한 방울 때문이라도 전쟁은 언제든지 발발할 수 있다. 부처님께서 로히니 강으로 가 양쪽의 이야기를 듣고는 물으셨다. “농사지을 물과 사람의 목숨 중 어느 것이 소중합니까?”‘진정한 평화’로 향한 길을 찾는 나침반은 부처님말씀 한 마디에 있다. ‘생명’이다. 고귀한 생명을 우선할 때 평화의 문은 열린다. 평화는 결국 ‘서로 이해하고 용서하며 나눌 줄’ 알아야, 나아가 그렇게 실천할 때 유지되는 것이다. 나와 이웃, 내 나라와 이웃 나라 사이에 양보나 사랑 같은 덕목이 흘러야 평화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기에 평화는 나로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자비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홀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서로 깊은 관계 속에서 함께 존재한다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나와 남, 나와 자연은 서로 ‘하나’로 더불어 존재한다는 뜻이다. 어떤 자비를 펼쳐야 할까? ‘불심(佛心)은 무연자비심(無緣慈悲心)’이라고 했다. 내 가족, 내 친구, 내 이웃이 아니어도 별다른 인연이 없어 보이는 사람에게도 자비를 베푸는 게 부처님 마음이라는 뜻이다. 물론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자비를 나누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한다. 부처님은 자신과 상관 없는 우리를 제도하려 이 땅에 오시지 않았는가!

자비 행은 우리의 생생한 삶의 현장에서 실행되어야 한다. 그래야 평화로운 세상이 조성된다. 자비심이 펼쳐지면 평화고 끊어지면 전쟁이다. 그 땅에서는 항상 맑은 향기만이 퍼질 것이다. 우리가 일궈야 할 세상임을 부처님오신 날 깊이 새겨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1295호 / 2015년 5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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