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경쟁 통해 성장만을 추구하다 공동체 화합 정신 상실

법보신문·화쟁문화아카데미 공동 주관
대립과 갈등의 시대 화쟁과 소통을 말하다

▲ 법보신문과 화쟁문화아카데미는 5월13일 화쟁과 소통 주제로 좌담회를 가졌다. 왼쪽부터 토론자로 참석한 정념 스님, 홍석현 회장, 이병남 원장, 사회자 조성택 교수.
2016년은 신라시대 백가쟁명으로 쏟아지던 논쟁들을 화쟁(和諍)사상으로 회통시켰던 원효 스님의 탄신 1400년이 되는 해다. 원효 스님은 화쟁사상을 통해 당시의 사상적 대립뿐 아니라 삼국통일 과정에서 생긴 시대의 분열을 해소하기 위한 방향을 제시했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나와 생각이 다르면 적이나 악으로 규정해 반목하는 불협화음으로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다. 그러나 화쟁사상은 모든 견해가 다 옳을 수도, 다 틀릴 수도 있다는 열린 마음을 주문하고 있다. 그래서 화쟁은 곧 소통의 길이기도 하다. 법보신문은 불기2559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화쟁문화아카데미와 공동으로 ‘대립과 갈등의 시대 화쟁과 소통을 말하다’라는 주제로 좌담회를 마련했다. 5월13일 화쟁문화아카데미 세미나실에서 열린 좌담회에는 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 홍석현 중앙일보·JTBC 회장, 이병남 LG인화원 원장, 화쟁문화아카데미 대표 조성택 고려대 교수가 참석했다. 조성택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좌담회에서 참석자들은 우리사회에서 일고 있는 극한 대립과 무한 투쟁의 원인들을 살펴보고 화쟁과 소통의 관점에서 이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했다. 편집자

정념 스님
부정적인 심리 팽배한 이유는
우리 삶이 평화롭지 않기 때문
아이들을 경쟁으로 몰아붙여
사교육 시장만 비상식적 성장
경쟁만을 요구하는 교육환경
따뜻한 인성교육으로 전환필요

홍석현 회장
정치 리더십이 약하기 때문에
사회적 혼란들이 갈수록 심화
‘노블레스오블리주’ 서구정신
성장만 외치고 돌아보지 않아
내 권리만큼 남 권리 인정하는
성숙된 시민의식만이 해결책

이병남 원장
승자독식·적자생존 외치지만
생태계에는 승자독식 없어
정교한 먹이사슬 유지되기에
다양한 생명체의 공존도 가능
시비보다 이익이 중요한 사회
한솥밥 먹는 공공성 회복 필요


조성택 교수
내가 옳으면 상대방 틀리고
상대방 옳으면 내가 틀렸다는
분별의 이분법적 태도가
우리사회 갈등과 혼란의 원인
‘민주’의 개인자유 중요하지만
‘공화’라는 함께 사는 삶도 소중

조성택 교수:제가 미국에 있는 동안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미국 수도 워싱턴 D.C에 있는 국립인문진흥재단(NEH)의 설립취지문이었다. “민주주의는 시민의 지혜를 요구한다”는 내용인데 쉽게 와 닿지는 않았다. 우리는 1970~80년대 민주화 과정을 겪으며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을 수없이 듣고 자랐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민주주의는 시민의 지혜가 없이는 지탱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우리사회의 갈등과 반목은 내가 옳으면 상대방이 틀리고, 상대방이 옳으면 내가 틀리다는 이분법적인 태도에서 비롯됐다. 이런 생각은 시민의 지혜가 부족한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이런 문제를 중심으로 한국사회의 문제와 여기서 더 나아가 남북통일의 문제까지, 두 가지 큰 주제를 중심으로 살펴봤으면 한다.

이병남 원장:해외에 나가보면 우리 기업의 브랜드가 많이 보인다. 대기업들이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부의 축적과정이 정당했느냐에 대한 의문도 갖는다. 이런 대비되는 정서를 어떻게 미래지향적이고 발전적인 에토스(e- thos·특성)로 전환시킬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한다. 기업은 필연적으로 이윤극대화를 추구한다. 그러나 기업이 이윤극대화에만 머물러 있으면 꿈과 희망을 줄 수 없다.

조성택 교수:경쟁도 중요하지만 공동체 의식도 중요하다는 말씀으로 들린다. 민주공화국으로 설명한다면 민주(民主)라는 개인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공화(共和)라는 더불어 살아가는 가치도 함께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병남 원장:헌법에 명시된 민주공화국이라는 개념은 우리의 지향점이다. 우리는 민주화에 관해 상당한 성과를 이뤘다. 하지만 공공성에 대해서는 대단히 부족하다. 헌법정신을 구현하기 위한 우리의 갈 길이 아직 멀다.

조성택 교수:홍석현 회장은 언론사를 운영하고 있고 미국 대사도 했다. 우리사회의 갈등과 분열, 분쟁을 어떤 관점에서 보고 있는지 궁금하다.

홍석현 회장:해외에 나가면 한국사회의 갈등에 대해 좀 더 폭넓게 보게 된다. 해외에서는 우리를 무척 높게 평가한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오면 우리에 대한 평가는 야속할 정도로 박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정치의 리더십이 국가가 갖는 위상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 정치는 다른 분야에 비해 유독 뒤떨어져 있다. 세계 어디나 문제가 없는 곳은 없다. 그런데도 유별나게 우리만 안과 밖의 평가가 극명하게 갈린다. 원인은 리더들의 잘못에 있다. 리더들이 분열과 대립을 통합적으로 보려는 노력이 부족하다. 한국과 일본은 리더십(leadership)과 팔로우십(followership)이 매우 다르다. 일본은 리더십이 약한 대신 팔로우십이 강하다. 남한테 폐를 끼치지 않으려 하고 참을성도 강하다. 좋은 리더가 나오면 크게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명치유신(明治維新)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나쁜 리더가 나오면 실패할 가능성도 높다. 그런 점에서 일본 아베 총리의 행보는 우려스럽다. 대조적으로 우리는 팔로우십이 약하다. 국민들의 개성이 강하고 잘 승복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가 시끄러운 것은 그나마 강점이었던 좋은 리더십이 사라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팔로우십이 약한데 좋은 리더십까지 부재하다보니 사회가 혼란스럽다. 우리사회의 대립과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서로 화쟁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나의 권리만큼 남의 권리도 이해하려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이것을 이끌어내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리더십이다. 세월호와 강정마을, 밀양송전탑 등 갈등의 표출 정도로만 보면 굉장한 문제들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지역명이 첨예한 갈등의 대명사가 된 것은 그것을 둘러싼 대립을 담아낼 리더들의 그릇이 작았기 때문이다.

조성택 교수:갈등이나 분쟁이 없는 나라는 없다. 그래서 갈등과 분쟁은 더 큰 발전을 위한 에너지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지도자의 리더십과 일반 국민들의 팔로우십이 잘 맞아 떨어져야 한다. 정치인의 리더십 하면 오바마 대통령이 떠오른다. 오바마 대통령이 민주당 대선후보가 됐을 때 무슬림이라는 오해와 진짜 미국인이 맞느냐는 의심을 함께 받았다. 기자들은 이라크 전쟁에 대해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를 물었다. 그때마다 오바마는 이라크 전쟁에 찬성하는 사람도, 반대하는 사람도 모두 미국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맞받아쳤다. 미국과 이라크가 전쟁할 때 과연 하느님이 미국편이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도 있었다. 이에 대한 오바마 대통령의 대답은 감탄을 자아냈다. “하느님이 과연 우리 편이었는지 물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하느님 편에 서 있었는지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고 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이런 다각적인 사고가 미국의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사회 현상에 대한 정념 스님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하다. 오대산에 계시지만 늘 세상문제를 걱정하고 있다고 들었다.

정념 스님:사회전반에 걸쳐 부정적인 심리가 팽배해 있는 것은 우리 삶이 평화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계에 유래가 없을 만큼 짧은 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뤄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기도 하다. 분단은 근원적인 차원에서 우리의삶을 위협한다. 끊임없이 이분법적인 사고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분법적인 사고는 부정적인 논리의 확장을 불러온다. 짧은 기간에 일궈낸 산업화의 성과는 자랑스럽지만 이에 따른 부정적인 결과들도 함께 따라왔다. 과도한 경쟁, 1등이 아니면 살아남기 힘든 사회적 분위기가 그것이다. 급속한 성장으로 한국의 위상은 높아졌지만 거기에 상응하는 정치제도는 짧은 민주화의 역사가 말해주듯이 신자유주의 물결 속에서 미완의 모습으로 멈춰 서 버렸다.

조성택 교수:우리는 모든 문제를 피해자와 가해자로 구분한다. 소위 갑(甲)과 을(乙)로 구분해 보는 사고다. 국가전체가 반성해야하는 세월호 참사도 어느 순간 피해자와 가해자의 문제로 치환돼 버렸다. 이런 이분법적인 사고가 문제다. 모든 문제를 가해자와 피해자,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으로 나눈다. 세월호가 과연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눌 수 있는 문제인가. 이런 인식이 안타깝다.

홍석현 회장: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에도 미국은 여러 전쟁에 참여했다. 그러나 가장 유의미한 전쟁이 한국전쟁이었다. 비긴 전쟁이지만 대한민국은 단시일 내에 전쟁의 폐허를 극복하고 엄청난 발전을 일궈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모든 것이 충분히 익을 수 있는 느긋한 시간을 갖지 못했다. 몸집은 커졌는데 인격은 자라지 못한 것이다. 서구의 자본주의는 수백년에 걸쳐 일궈낸 결과물이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는 가치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정신적인 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성장만을 외쳤고, 그러다보니 아이들에게도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것이 용서가 되는 그런 잘못된 교육을 하고 있다. 성공만을 지향하다보니 본인보다 잘 하는 사람이 있으면 질투를 하고 적개심을 갖게 됐다. 이기적인 사고가 사회 전반에 팽배해 있다. 세월호도 그런 관점에서 봐야한다. 세월호 참사는 얼마든지 터질 수 있는 일이었다. 승객을 버리고 도망쳐버린 선장의 모습은 바로 우리의 모습이었다. 우리사회의 물질적 풍요와 성공이 압축적으로 이뤄지다보니 익어가는 과정을 넉넉하게 갖질 못했다. 시민의식의 성숙과 시민 스스로 변화하고자 하는 노력이 가장 확실한 해결책이다.

조성택 교수:세월호 참사의 원인은 우리사회 일상성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횡단보도에서 일단 정지를 하고 난 뒤 지나가야 되는데 차들은 그냥 지나가버린다. 학교 앞 도로에서는 서행해야 하는데 잘 지켜지지 않는다. 압축성장의 과정 속에서 체화되지 못한 공공의식, 이런 것들이 바로 세월호 참사의 원인이다. 훌륭한 사람이 되기보다 경쟁에서 이기는 사람이 우리의 절대가치가 돼 버렸다.

이병남 원장:우리사회는 진정한 의미의 민주공화국이라고 할 수 없다. 우리사회가 가진 공공성이 매우 후진적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 생태주의적인 관점을 갖는 게 도움이 될 것 같다. 우리사회는 생명경시라고 말하는 것조차 부족할 정도로 OECD 자살률 세계 1위인 그런 사회다. 사람들은 승자독식, 적자생존 이런 표현을 즐겨 쓴다. 그러나 생태계에는 승자독식이 존재하지 않는다. 승자독식이면 생태계는 망가진다. 생태계는 아주 정교한 먹이사슬로 스스로를 유지해 왔다. 그래서 다양한 생명체의 공존이 가능했던 것이다. 1997년 우리나라에 외환위기가 왔다. 그때를 계기로 우리 사회는 승자독식에 노출됐다. 과거와 달리 자본이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끊임없는 자기증식이 가능해졌다. 어디든지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으면 자본이 간다. 정의, 공공성, 가족애 이런 것들은 사라진 지 오래다. 우리사회는 생명경시, 공공성의 결여 등 여러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수단방법 가리지 말고 무조건 이겨라. 우리는 이렇게 교육하고 있다. 시비(是非)는 사라지고 이해만 남았다. 옳고 그름이 없다. 오직 나의 이익만이 있을 뿐이다.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 화(和)라는 것이 벼화(禾)에 입구(口)가 합쳐진 것이다. 한 솥밥 먹는 것이 사회고 그게 공동체다.

▲ 법보신문과 화쟁문화아카데미가 공동 주관한 좌담회에서 참석자들은 우리사회의 대립과 갈등을 해소하고 남북통일의 길을 열기 위해서는 이분법적인 부정의 시각 대신 원효 스님의 화쟁사상에 입각한 통합적 긍정적 사고로의 인식전환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념 스님:세월호 사건은 우리사회의 총체적인 문제를 보여줬다. 안타까운 것은 정파적인 진영논리로 세월호를 바라보면서 참회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제는 정말로 새로운 패러다임이나 비전이 제시돼야 한다. 우리사회는 자기가 옳다고 믿는 것 외에 나머지는 모두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무한경쟁과 배금주의, 물질적 세계관이 팽배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현상에 대한 책임은 일차적으로 정부의 교육정책에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교육은 세상을 평화롭고 따뜻하게 하는 그런 인성교육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경쟁으로만 몰아붙이다보니 사교육시장이 비정상적으로 커져버렸다.

“분단은 우리의 문제 진영 논리 떠나 끊임없이 대화해야”

정념 스님
정부 통일대박론은 경제적 관점
민족 염원에 대한 철학이 빈약
원효 화쟁 같은 담대한 담론으로
남북통일에 대한 활로를 열어야

홍석현 회장
남북문제는 6자회담 고집말고
우리가 스스로 대화 주체돼야
월북한 홍명희 문학상 제정에서
우리의 열린 마음은 시작될 것

이병남 원장
보수와 진보의 첨예한 갈등은
대부분 분단 상황이 초래해
서로 가해와 피해 관념 벗어나
민족관점에서 중도지혜 찾아야

조성택 교수
남북분단 해소되지 않으면
남한은 대륙과 괴리된 ‘섬’
현재의 남북경색은 위험상황
대화로 화학적 결합 이뤄내야
 

조성택 교수:우리를 둘러싼 주변상황이 19세기 구한말 같다는 말이 나온다. 남북경색도 위험한 상황이다. 남북관계를 어떻게 풀어야 한민족 공동체가 더욱 번영할 수 있을지 화쟁의 관점에서 말해 달라.

홍석현 회장:미국 ‘허핑턴포스트’ 창업자가 나를 찾아왔다. 내 방에 청담 스님의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가 걸려있으니 불자인 것을 직감한 것 같다. 그래서 언론에 대해 말하지 않고 불교 이야기만 하다 돌아갔다. 그는 마지막에 허핑턴포스트 독자들을 위해 불교에 관해 글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지난해 말 ‘부처님이라면 북한 문제를 어떻게 다뤘을까’라는 주제로 글을 썼다. 국제정치라는 게 19세기 이후로 기본적인 틀이 세력균형이다. 1극 체제, 2극 체제 이야기를 하지만 이제는 다극체제로 갈 수밖에 없다. 그게 불교적인 방식이기도 하다. 다원주의로 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소수자의 의견도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대가 됐다. 북은 정상적인 국가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고 망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느냐, 그건 아니다. 우리는 한 민족이다. 북한의 사회 구성원들이 겪고 있는 아픔을 우리의 아픔으로 인식해야 한다. ‘허핑턴포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계속해서 대화하고 도울 수 있는 건 도와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전쟁으로 가지 않은 이상 접촉의 수위를 높여가는 것이 좋다. 남북의 문제는 우리의 문제다. 그런데 자꾸만 6자회담의 틀에 의존하는지 알 수가 없다. 남북 주도로 가야 한다. 물론 북이 정상적인 국가는 아니다. 그래도 대화는 계속돼야 한다. 책임 있는 남북의 당사자들이 지속적으로 만나 대화를 통해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면 보수진영에서 공격한다. 홍 회장은 태생이 보수인데 왜 친북을 하느냐. 북이 훌륭한 대화 파트너라는 말은 아니다. 대화를 하면 그 속에서 묘안이 도출돼 바로 통일이 된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만나다 보면 변화가 생기고 돌파구가 열릴 수 있다는 의미다. 일각에서는 북핵 문제가 풀리기 전에는 어떤 것도 할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핵이 있다는데 어떻게 하겠는가. 결국 만나서 대화하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주장하면 무척 불편해한다. 이상주의자라는 비판도 받는다. 그러나 남북의 문제를 진영의 논리로 봐서는 안 된다. 아마도 부처님이 보시면 꾸짖을 것이다. 유럽이나 미국에 나가 이야기를 하다 보면 서양인들 모두가 굉장한 우월감을 갖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서양인들에게는 세 가지 콤플렉스가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둑이다. 서양의 체스는 굉장히 차가운데 바둑에는 상생의 개념이 있다. 따듯하다. 강자 독식의 문화에 익숙해 있던 서양인들이 바둑에서 상생의 가르침을 배우고 있다. 두 번째 콤플렉스는 서예다. 서예는 예술적인 감각이 빼어난 ‘쟁이’가 하는 거다. 우리의 선비문화에는 시서화(詩書畵)가 있지 않은가. 마지막 콤플렉스는 참선이다. 명상 수행에는 서구의 기독교인들도 자연스럽게 참여하고 있다.

조성택 교수:오대산 월정사에서는 상생과 화합, 특히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문화프로그램들을 많이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정념 스님:불평등을 극복하고 상생의 문화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결국 남북의 통일을 위한 교류와 통합이 절실하다. 우리 민족은 통일을 통해 대륙의 기운을 받아들일 수 있으며 대륙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만들 수 있다. 남북의 갈등을 전향적으로 풀 수만 있다면 경제협력과 남북의 소통을 함께 이끌어 낼 수 있다. 남북통일에 민족의 활로가 있다. 우리 모두는 분단 이후 초등학생 때부터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부르면서 자랐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통일에 대한 열망도, 관심도 급격하게 감소되었다. 젊은 세대가 민족의 미래를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통일문제에 대한 이해가 대단히 부족한 상황이다. 남쪽의 정치인들은 남북문제를 경제적 관점에서, 이해관계에 염두를 두고 접근하고 있다. 통일에 관한 담론도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이야기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통일대박 이야기를 했는데 이 역시 경제적인 관점이다. 그러나 민족의 통일에 관한, 한반도가 하나가 되는 문제인데 품격이 없어 보인다. 그러하기에 통일을 말하려면 통일대박 정도가 아니라 더욱 담대하고 확장된 통일담론, 통일철학이 필요하다. 원효의 화쟁사상 등 민족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거대 담론과 이론을 바탕으로 북한을 바라볼 때 성숙한 통일담론을 제시할 수 있다.

조성택 교수:정념 스님께서 일관되게 말씀하신 핵심은 자꾸 경제적인 관점에서 통일비용이다, 통일대박이다 하는 식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좀 더 근원적인 상생과 생명의 가치가 깃들어 있는 철학, 함께 공존하고 상생할 수 있는 이론을 바탕으로 한 통일담론과 통일철학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이병남 원장:지금 말씀하신 대목이 바로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이분법적인 사고의 문제와도 연관이 돼 있다. 이분법적 사고 중 가장 대표적인 대목이 남북문제다. 보수와 진보의 많은 갈등들은 분단상황에서 초래된 것들이다. 여전히 우리는 피해자, 저쪽은 가해자라는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홍 회장께서 말씀하신 “왜 우리 문제인데 우리 스스로 남북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느냐”는 대목이 참으로 와 닿는다. 지정학적, 국제 정치학적인 원인들이 많이 있겠지만 우리 민족 스스로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결국 우리의 의지가 문제해결의 핵심이다. 이분법적인 사고라는 게 양극단으로 가는 것이다. 피해자와 가해자, 이러한 인식으로는 결코 중도(中道)적인 지혜를 갖을 수가 없다.

조성택 교수:남북분단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남한은 한 마디로 대륙과 괴리되어 있는 ‘섬’이라고 할 수 있다. 인식론적으로 보면 섬처럼 분리된 상황이다. 이것을 탈피하기 위해 대륙으로 연결돼야 하고 대륙과 연결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남북이 통일되어야 한다.

홍석현 회장:우리가 과거사 문제를 가지고 말하는데, 남남갈등의 뿌리는 한국전쟁이 하나의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36년간 일제강점기의 아픔 속에서 생긴 민족 반역행위, 즉 친일문제가 있다. 독립운동에 관한 역사정리가 제대로 안된 것도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이다. 진보세력이 볼 때 남쪽은 친일 수구세력들이 이승만 정권으로부터 내려왔다고 일관되게 말하고 있다. 북쪽은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세습세력만 남아 있고 다른 세력은 다 죽었다고 단언한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은 위안부 문제까지 포함해 실증적인 역사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남북이 함께하면 더 없이 좋을듯하다. 우선 남쪽의 경우 진보와 보수 학자들이 정부의 도움을 받아 독립 운동사를 기록해야 한다. 특히 청일전쟁(1894년 6월∼1895년 4월) 때부터 기록을 했으면 좋겠다. 남과 북, 진영의 논리를 떠나 독립에 기여한 모든 분들의 흔적을 찾아 기록했으면 좋겠다.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이 공산주의자건 무정부주의자건 보수우익이건 지주계급이건 기록을 하자. 우리의 현재 기록은 1945년 전에 있었던 역사 부분을 제외한 것이다. 우리가 기록한 사실은 남쪽의 경우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운동을 한 30%, 북쪽에서는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 계열 30%에 관한 것이다. 그 외 40%에 대한 실존적 기록이 아예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재의 기록들은 북에서도, 남에서도 인정받지 못한다. 사회주의 계열은 남쪽에서 인정하지 않고 북에서는 김일성을 제외한 다른 세력의 독립운동을 인정하지 않는다. 기실 민중민주(PD, People’s Democracy)와 민족해방(NL, National Liberation)의 뿌리도 바로 거기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 문제를 직접 대면하지 않고 회피해 왔다. 두 세력의 뿌리는 그렇게 시작됐고 여전히 싸우고 있다. 그런데 그것을 해소하려면 적나라하게 사실을 드러내야 한다. 보는 관점이 다를 수도 있겠으나 이분들 모두 훌륭하고 평가받을 만한 대목이 많다. 그렇게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으로 역사 발굴을 해야 한다. 공산주의자면 어떻고 지주계급이면 어떤가. 나라를 위해서 일한 대목만큼은 긍정적으로 기록해야 한다. 기록되지 못한 40%의 역사는 우리민족의 비극이다. 그분들의 후손들은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나.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을 실증적으로 연구했으면 한다. 그리고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그 시대 대학 가서 공부 잘해서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했다면 모두가 친일에 해당된다. 그렇게 친일로 몰아붙이면 친일에 대한 기준은 무엇인가. 친일에 대해서도 더욱 철저히 연구하고 조사해야 한다. 공칠과삼(功七過三), 공이 70%라면 30%의 허물은 용서할 수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조성택 교수:일제강점기 당시를 대표했던 작가인 이광수, 최남선에 대해서도 친일행각이 일부 있었지만 그 의도가 어디에 있었는가 반드시 살펴야 한다. 일제로부터 조선의 자치를 얻기 위한 전략적인 계산도 있었지 않았나 한다.

홍석현 회장:이광수와 함께 소설 ‘임꺽정’을 쓰고 북한에 가서 부수상까지 역임한 홍명희 선생의 문학상이 남한에서 제정돼야 한다고 본다. 대표적인 친일·친북 인사의 문학도 인정하고 그분들의 애국에 대해서도 인정해야 한다. 그분이 북한에 갔을 때는 북이 나쁘다고만 말할 수도 없는 시기다. 위대한 통일 대한민국의 모습, 그 이전에 남쪽에서 홍명희 선생 문학상을 제정했으면 한다. 이광수 선생 문학상도 제정하고 싶다. 우리의 대문호를 왜 우리가 버려야 하는가.

이병남 원장:홍석현 회장께서 두 가지 문학상 이야기를 했는데 우리사회가 이러한 부분을 받아들이려면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다. 그러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내면적으로 자기중심성이 탄탄해야 한다. 이제 자기중심성을 찾아내고 강화했으면 한다. 그러한 작업은 우리 모두가 함께 해야 한다.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대화하고 소통했으면 한다. 진정한 대화는 상대와 대화를 통해 내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전제한 것이다. 우리가 보수다 진보다 갈등하지 않고 과거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날 수 있으려면 그 속에서 그러한 대화가 진행되어 새로운 비전을 찾아내야 한다.

조성택 교수:논쟁은 민주사회에서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그리고 논쟁은 반드시 대화로 이어져야 한다. 그것이 민주사회다. 대화는 상대방이 왜 옳은지를 밝혀내는 과정이고 상대방 눈에 비친 ‘나’를 보는 과정이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만 ‘새로운 화학적 결합’을 이뤄낼 수 있고 결국 새로운 단계로 올라설 수 있다.

정념 스님:
근대사 정리문제에 대해 그 동안 부단히 정리한다고 했지만 그 문제는 여전히 우리사회에서 이데올로기적 갈등으로 남아 있다. 보수다 진보다 해서 정권마다 사람과 시대를 다른 관점으로 평가해 왔다. 교과서의 내용도 진보정권과 보수정권에 따라 다르게 보았다.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들이 이렇게 정치적 지형에 따라 다르다 보니 교육의 내용까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지성인들의, 사회 지도층들의 화쟁과 상생을 위한 노력들이 부단히 이어진다면 변화할 수 있다. 그러한 노력은 역사를 바로 세우고 모순을 조금씩 치유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남북문제를 풀어가는 데에도 결국 ‘화해와 상생의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힘의 원천이 될 수 있다.

정리=김형규 부장 kimh@beopbo.com 

[1295호 / 2015년 5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