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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초기교단에서 재가불자 의미와 역할

출가자에 대한 물질적 지원…파계 지적도 재가자 몫

▲ 기원정사를 보시하고 있는 수닷타 장자. 발우에 가득 들어있는 것은 기원정사 터를 살 금화로 보인다. 간다라(2~3세기).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박물관 소장. 유근자 박사 제공

재가불자는 불교교단의 큰 축이다. 재가불자가 없는 교단은 존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재가불자의 정체성은 지극히 모호하다. 오계를 지키지 않아도, 절에 나가지 않아도 불교에 호감이 있으면 모두 ‘재가불자’가 되고는 한다. 재가불자라는 이름으로 승단에 대한 극단적인 옹호나 비판으로 치닫는 일들도 늘고 있다. 법보신문은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부터 재가불자의 개념과 역할, 역사, 방향 등에 대해 들어보았다.  편집자주

재가자는 교단의 필수적인 존재
재가자 신분 폄하하는 일 없어
붓다에 귀의한 첫 제자도 우바새

출가자 이간질해 화합 깨거나
근거 없는 비난은 엄격히 경계

계율과 견실한 믿음을 통해
현실 개선하는 게 재가자 역할

불교교단은 출가수행자와 재가불자로 구성된다. 남녀 출가수행자는 각각 비구·비구니, 남녀 재가불자는 각각 우바새·우바이라 불린다. 사중(四衆)이라 표현되는 이들은 교단을 지탱하는 네 개의 기둥과도 같다. 비구라는 말이 ‘걸식하다’ ‘구하다’ 등의 의미를 지니는 √bhiks. 라는 말에서 파생된 명사인 빅슈(bhiks. u)의 음사어로 ‘걸식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지닌다면, 우바새는 ‘가까이 앉다’ ‘따르다’ ‘돌보다’ ‘존경하다’ 등의 의미를 지니는 upa-√a- s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인 우파사카(upa- saka)의 음사어로 [출가자를] 가까이에서 돌보며 보호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비구니와 우바이는 각각 그 여성형에 해당한다. 비구와 우바새는 용어 자체의 의미에서 이미 드러나듯이 상호 보완적인 관계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소부경전 가운데 하나인 ‘이티붓타카’의 기술을 보면 보다 명확히 드러난다. “비구들아, 바라문과 가장들은 너희들에게 큰 도움을 준다. 그들은 의복, 먹거리, 와좌구, 의약을 공급해 준다. 비구들아, 너희 또한 바라문과 가장들에게 큰 도움을 준다. 너희들은 그들을 위해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고, 이치와 문장을 겸비한, 비할 바 없는 원만한 청정한 행(범행)을 가르친다. 이렇게 해서 너희들 서로의 도움으로 폭류를 건너기 위해, 올바르게 괴로움을 멸하기 위해, 범행에 머무는 것이다. 재가자와 출가자는 서로 의지하며 더할 나위 없는 안온한 정법을 번영시킨다. 출가자들은 의복과 자구, 와좌구, 위험의 피난을 재가자로부터 제공받으며, 재가자들은 선서(善逝)에 의지하고, 아라한을 믿고, 성스러운 지혜에 의해 삼매에 들어가고, 이 세상에서 선취(善趣)에의 길인 법을 닦고, 천계를 즐기고, 바람[願]을 품고, 스스로 기뻐하는 것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재가자는 출가자에게 재시(財施)를 베푸는 존재이다. 가까이에서 돌보며 보호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지니는 우바새라는 말이 재가불자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 것은 이 때문이다. 한편, 출가자는 재가자에게 법시(法施)를 베푸는 존재이다. 재가자로부터 의식주 전반에 걸쳐 원조를 받음으로써 출가자는 수행에 전념할 수 있으며 그 보답으로 법을 설하여 재가자의 정신세계를 풍요롭게 해 주는 것이다. 이렇듯 출가자와 재가자가 서로 필요한 것을 교환하며 돕는 행위를 통해 출세간과 세간이라는 서로 다른 가치를 지닌 두 개의 세계가 서로 분리되는 일 없이 종교적으로 가치를 지니는 또 하나의 완전한 세계로서 존재하게 된다.

출가하여 수행하는 사람이 없다면 재가자는 그들로부터 법을 듣고 정신세계를 풍요롭게 하거나 공덕을 쌓을 기회를 잃게 되는 것이며, 만약 재가자가 없다면 출가자는 의식주를 해결하지 못하여 수행에 전념할 수 없으므로 당연히 수행 생활을 지속할 수 없다. 따라서 이 양자는 서로의 도움으로 폭류를 건너고, 올바르게 괴로움을 멸할 수 있는 두 개의 톱니바퀴와도 같은 존재이다.

이처럼 초기교단에 있어 재가불자는 교단 유지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불도 수행의 최종 목표가 깨달음의 획득이라는 점에서 출가수행이 장려되는 분위기이기는 하지만, 이로 인해 재가자라는 신분이 폄하되는 일은 결코 없었다. 우바새가 교단에서 지니는 위치는 부처님의 정각 후 사중 가운데 우바새가 가장 먼저 부처님께 귀의를 표명하고 제자가 되었다는 전승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율장 대품 ‘대건도’에 의하면 깨달음을 얻은 부처님이 해탈의 기쁨 속에서 삼매를 즐기며 한동안 보리수 주변을 떠나지 못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정각 후 20일이 조금 지났을 무렵, 마침 그 곳을 지나던 타풋사와 발리카라는 두 상인이 부처님을 찾아온다. 전생에 혈연 관계였던 한 수신(樹神)에게서 깨달음을 얻은 세존이 이곳에 머물고 있으니 가서 공양을 올리고 공덕을 쌓으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부처님을 찾은 그들은 예를 올린 후 이렇게 말한다. “세존이시여, 부디 저희들을 위해 보리과자와 꿀 경단을 받아 주십시오. 저희로 하여금 오랫동안 이익과 안락을 얻도록 해 주십시오.” 그러자 부처님은 사천왕이 마련해준 석발우로 그들의 공양물을 받았다. 부처님이 식사를 마치자 그들은 “세존과 법에 귀의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을 우바새로 받아 주십시오. 오늘부터 평생 귀의하겠습니다”라며 귀의의 뜻을 표명한다. 이것이 불교교단의 중요 구성원 가운데 하나인 우바새의 탄생에 관한 초기문헌의 설명이다. 최초의 출가 제자인 5비구의 귀의로 승가가 형성되기 전이므로 이들은 불·법 이귀의의 우바새라 불린다.

이 전승에서는 붓다라는 훌륭한 수행자의 등장과 이러한 훌륭한 수행자를 공경하고 보살핌으로써 자신의 공덕을 쌓고 싶어 하는 우바새라는 두 존재의 만남을 볼 수 있다.

붓다의 등장과 더불어 곧이어 우바새가 나타나 존경의 뜻을 표하며 귀의를 표명하는 이 전승은 수행자에게 있어 우바새가 얼마나 필수적인 존재인가를 보여준다. 여기서 출가수행자는 단지 먹을 것을 구걸하는 사람이 아니다. 법을 추구하는 훌륭한 자로서 재가자의 귀의를 받고, 또한 물질적인 원조를 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 한편 재가자에게 있어 이는 자신의 공덕을 쌓을 수 있는 대상이자 좋은 가르침을 주는 공경할 만한 대상인 것이다. 붓다의 정각 직후에 확인되는 출가자와 재가자의 관계는 이후 초기교단에서 변함없이 유지된다.

한편 출가자를 가까이에서 돌보고 보호한다고 하는 우바새의 역할은 물질적인 지원에만 그치지 않고, 나아가 출가자의 범계 행위를 지적하거나 미연에 차단시켜 주는 역할까지 함으로써 수행 생활을 적극적으로 보조하는데까지 미친 것으로 보인다. 율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익혀 출가자와의 만남 속에서 자신들의 부주의한 행동이 범계 상황을 만들어내지 않도록 배려함은 물론이거니와, 때로는 적극적인 보조자의 역할도 한다. 예를 들어, 비구에게 옷값 등으로 금전이 보시되었을 경우에는 우바새가 이를 보관하고 있다가 비구가 옷 등이 필요해지면 사다주기도 하고, 정사 등을 지을 때 비구 대신 땅을 파거나 초목을 베어주기도 하였다. 생활 속에서 불가피하게 할 수밖에 없지만 율에서 금지된 행위를 우바새가 대신 해줌으로써 출가자가 수행에 전념할 수 있도록 보조해 준 것이다.

▲ 수닷타의 기원정사 보시. 기원전 2세기경. 인도 콜카타국립박물관. 유근자 박사 제공

이처럼 초기교단에서 우바새의 역할은 출가자를 돌보고 다양한 면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바새가 불법승 삼보를 비난하거나, 출가자들을 이간질하여 화합을 깨거나, 출가자를 근거 없이 비방하거나, 출가자가 보시를 얻지 못하게 하거나 거주처를 얻지 못하게 도모하는 것은 결코 용납되지 않았다. 이 경우에는 승가가 복발(覆鉢)갈마를 실행하게 되는데, 복발이란 발우를 엎어버리는 것이다. 즉 그들이 주는 보시물을 일절 받지 않음으로써 공덕을 쌓을 기회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것이자 그들과의 교류를 끊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것을 말한다.

출가와 재가는 명확히 신분의 차이가 있으며, 그로 인해 역할 차이도 분명하게 존재할 수밖에 없다. 출가자가 집을 떠나 모든 세속적 욕망을 버리고 수행에 전념하는 길을 선택한 사람들이라면, 재가불자는 집에 머물러 가정생활을 영위하면서 불법을 따르는 삶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초기교단에서는 이러한 양자의 차이를 현실적으로 인정하며 양자의 상호보완적인 관계 속에서 교단의 유지·발전이 가능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 이자랑 교수
초기경전에는 우바새 가운데도 출가자를 능가할 정도의 수행 능력을 가진 자들이 적지 않았고, 실제로 이들이 높은 성자의 경지에 오르는 경우도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불법승 삼보에 대해 견실한 믿음을 갖고 지계를 통해 올바른 생활을 삶 속에서 실현하려는 노력은 근기와는 상관없이 모든 재가불자에게 강조되었고 또한 실천되었다. 삼귀의와 오계, 혹은 나아가 팔재계의 실천이 결코 도외시되지 않았던 것이다. 부처님과 부처님이 설하신 진리를 믿고, 또한 이 둘을 나침판으로 삼아 열심히 수행하는 출가자들의 공동체인 승가를 믿고 보호하며, 오계와 팔재계의 수행을 통해 현실의 삶을 보다 행복하게 개선해 나가는 것, 이것이 바로 초기교단이 지향하는 재가불자의 모습이었다고 생각된다.

이자랑 동국대 불교학술원 HK연구교수

[1295호 / 2015년 5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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