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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된 훈련소도 매순간 수행 기회로 여기니 ‘생애 최고 나날들’

기자명 법보신문

불교방송 사장상 - 송동석

▲ 일러스트=강병호 화백

큰 절을 올렸다. 아스팔트 바닥이 후끈했다. 그리고 내 눈시울도 후끈해져 이내 곧 눈물이 흘러내렸다. 일어나니 부모님과 할머니의 눈시울도 붉어져 있는 게 보였다. 눈물을 보이기 싫은 마음에 연병장으로 달려갔다. 2013년 8월5일, 여름 한가운데 나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건아라면 누구나 가는 육군훈련소에 ‘입대’를 했다.

낯선 훈련소에 긴장했지만
수행 최적화된 곳이라 생각
통제된 생활에도 자유 느껴

불서 등 하루에 한 권 독서
법정 스님 수필에 큰 감명
불침번도 ‘경행’으로 승화

육군사관학교서 군종병 복무
전역 얼마 안 남은 지금까지도
훈련소 수행 추억 진하게 남아

입대 전에는 아주 담담했다. 집에서 출발할 때부터 들어가기 직전까지 지인분들과 전화를 하면서 마음이 가벼웠다. 군대 또한 맡고 싶던 보직을 지원해서 가는 것이기에 거부감은 없었고 도리어 기대감이 부풀었다. 그런데 그때 왜 눈물이 흘렀는지 아직까지 모르겠다. 다만 ‘가족’이라는 두 글자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연병장에서 가족들과 헤어지고 나니 거짓말같이 비가 내렸다. 날씨마저 울게 하는구나 싶었다. 입소를 하게 되면 간단한 신체검사를 받고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보급 받는다. 번호도 부여받는데 나는 138번으로 훈련기간 동안 이름보다는 138번 훈련병이라는 이름으로 더 불리게 된다. 처음 본 낯선 환경, 새 보급품, 그리고 새로 만난 동기들 등 마치 새로 태어난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그 속에서 ‘승가(僧伽)’를 보았다. 법을 구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이곳이 스님들의 생활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님처럼 짧게 밀어버린 머리부터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품만을 보급 받고 사용할 수 있으며 활동복 또한 회색이라서 그런 느낌이 더 들었다. 자의든 타의든 이곳은 외부와 접촉이 차단되었고 식사도 배급을 받는데 정량만을 받기에 금욕생활도 하게 됐고 승가만큼은 아니어도 이곳도 규율이 있고 엄격한 통제 속에 이뤄지는 체계라는 것은 이미 그 배경이 되고도 남았다.

훈련소의 모든 환경이 불만으로 비춰지기보다는 수행을 하기에 최적화된 곳이라는 ‘장점투성이’로 보였다. 그렇게 훈련소에서의 수행이 시작됐다.

입대 후 3일이 지나고 훈련받을 연대로 숙소를 옮겼다. 내가 있었던 곳은 훈련소 내에서도 제일 오래된 막사임에도 ‘수행하는 데에 마가 없기를 바라면 안 되지’ ‘오래된 환경이라고 불편할 것 또한 없지 않은가’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훈련이 힘들지 않았다고 한다면, 마냥 행복하고 즐거웠다고 한다면 누가 믿겠는가? 훈련소 생활은 그동안 지내온 환경과 다르고 자유롭게 살아왔기 때문에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지내보니 신기하게도 통제된 생활임에도 억압되지 않고 자유로움을 느꼈다. 아마 수행을 할 수 있어서였던 것 같다.

이곳에서 만난 큰 선물이 있다. 바로 ‘진중문고’였다. 불서들을 읽고 정법을 공부하게 된 이후로 어느 책이든 정법이 보여서 모든 책이 불서로 보이기도 했지만 확실히 책장에는 불교서적이 많이 있었다. 훈련소의 낙(樂)은 수행 외에도 독서가 생겨서 꼭 하루에 한 권씩 책을 독파했다. 통제되고 정해진 일정 속에서 어떻게 책을 한 권씩 읽느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또한 마음내기 나름이었다. 식사하기 전후나 훈련 나가기 전 시간 등 시간의 틈이 조금이라도 날 때마다 동기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보다는 책을 읽었다. 그러다보니 하루에 한 권씩 읽는 일이 가능해졌다.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책은 법정 스님의 수필집들이었다. 스님의 책들이 한가득 있었는데 법정 스님께서 깊은 산 속 암자에 지내시면서 ‘홀로 사는 즐거움’을 익혔듯이 나도 전방에 깊은 산골에 자리 잡은 법당으로 배치 받아서 그동안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고 대화에서 꽃피는 유쾌함을 즐기던 습관을 잠시 접어두고 법정 스님과 같은 삶을 실천해보고 싶었다.

새 생활관에 온 지 이틀째 되던 한밤중이었다. 동기 한 명이 나를 깨웠다. ‘불침번’ 근무차례가 된 것이었다. 처음에 깨웠을 때는 당황함을 알아차리고 이내 근무를 서야 한다는 생각에 짜증이 올라오려는 것도 알아차렸다. 잠에서 금방 달아나는 데는 일어나자마자 마음자리 알아차리고, 하려는 의도나 행위를 알아차리는 것이 최고다. 군복으로 갈아입는 것을 알아차릴 때쯤에는 정신이 영롱해졌다.

불침번에게는 온도나 습도 등이 쾌적해서 동기들이 잠은 잘 자고 있는지 바깥에 침입자 등은 없는지 확인하는 임무가 있다. 그래서 불침번을 서는 동안 부지런히 복도와 생활관을 돌아다녀야 한다. 하릴없이 무료하기 짝이 없는 시간으로 비춰지겠지만 나는 여기서 또 다른 수행을 발견했다. 바로 ‘경행(徑行)’이다. 경행은 마치 환자처럼 천천히 걸으면서, 걸으려는 의도나 발의 움직임을 알아차리면서 더 나아가 생멸(生滅)을 보는 수행이다. 모두가 자고 있는 가장 고요하고 적막이 흐르는 시간에 새벽 별처럼 맑은 정신으로 경행을 하고 있노라면 불침번을 서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게 지나간다. 그 마음 그대로 취침에 다시 들면 잠 또한 금방 들게 되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다.

훈련 또한 내게는 수행이었다. 가장 처음 받는 사격훈련을 하기 전에 소총을 분해 조립하는 법을 배우게 되는데 그때도 차분히 분해하고 조립하는 법을 익히고 알아차리면서 숙련해나가니 같은 분대 동기들 중에서도 가장 빠른 속도로 익히고 분해 조립할 수 있었다. 여타의 훈련인 행군이라든지, 사격, 수류탄, 화생방 등도 수행이라 여기고 긍정적인 마음을 발판 삼아 하나하나 이겨나갈 수 있었다. 특히 행군이나 화생방은 몸이 무척 괴로운 순간이 찾아오는데, 이 순간 또한 일어났다 사라지는 과정이라고 알아차리며 괴로운 마음을 ‘있는 그대로’ 보려고 노력했다.

주말에는 종교행사를 갈 수 있는데 다른 종교도 눈길이 갔지만 막사에서 가장 멀어도 마음만은 가장 가까이 있는 ‘법당’만 가게 됐다. 그곳에서 나눠주는 초코파이가 얼마나 감질나게 맛있었는지 모른다. 초코파이뿐 만이 아니다. 가족, 친구 등 인간관계에서부터 스마트폰, 컴퓨터, 최신가요 등 늘 가까이 두고 누렸지만 소홀이 여겼던 것들이 소중해지기 시작했다.

마지막 주에는 각개전투라는 마지막 훈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여름이라 훈련이 더 고되고 힘들었다. 하지만 훈련 중에 종교행사를 통해 불교에 관심 갖고 삶의 지침으로 삼게 된 동기들을 만나 내가 배운 가르침을 전하면서 변화해나가는 과정을 볼 때 참 뿌듯하고 기뻤다.

짬짬이 어떤 군법당에서 지내게 될지 생각하며 가서 내가 할 일들을 계획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밖에 있을 때에 비해 시간이 잘 안 갔다. 시간 또한 그저 알아차리고 수료식을 기다리는 것에 매달리는 집착을 놓아버렸다. 그랬더니 수료식이 어느덧 찾아왔다.

고된 훈련과정을 모두 수료하고 이등병 약장도 달고 보고 싶던 가족들을 보는 기쁨을 만끽하는 날이었다. 하지만 비가 내려서 수료식을 연병장에서 할 수가 없게 됐다. 그래서 이례적으로 큰 법당에서 수료식을 진행하게 됐다. 법당에서 부처님 앞에 수료를 받게 되니 더 경건하고 엄숙하면서도 그간 불심으로 인고를 견딘 것들이 싹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부처님께서 수고했다는 격려를 해주는 듯했다. 훈련소 생활이 비교적 고됐지만 힘든 만큼 값지고 보람찬 배움을 찾으려 노력하니 결코 힘들기만 한 시간이 아니었다.

수료식 때 배치된 자대는 전방에 인적 드문 산골짜기 법당을 희망했던 것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정반대의 색깔을 가진 곳인 ‘육군사관학교 화랑호국사’였다. 하지만 평생을 두고 갚을 은혜를 입은 이곳에서 나는 생애 최고의 나날들을 보내게 된다.

지금은 전역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말년병장이 됐다. 군법당에서 경험한 지난날들을 글로 푸는 데는 그간 찬란했던 만큼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만큼 값진 시간의 시초가 됐던 훈련소는 아직도 마음 한편에 진한 추억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어느 곳에 있든 수행이 곧 생활인 삶으로 정진하고 있다.

[1295호 / 2015년 5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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