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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권성업 증평수행불자회 고문

부처님 가피로 새 삶 얻었으니 다음생도 전법의 길 걸어야죠

▲ 권성업 고문은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미래를 의심하지 않으며 현재에 충실하다면 본래의 마음자리로 돌아갈 것”이라며 “그것이 불자의 길이자 행복한 삶의 비법”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어떤 종교에 귀의하여 신앙생활을 하는 그 자체만으로는 별다른 의미가 없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웃과 따뜻한 마음을 나누고, 자신의 행위를 안으로 살피면서 보다 성숙한 삶으로 한 층 한 층 쌓아올릴 때 의미를 갖게 됩니다.”

우연히 ‘법화경’ 접하고 불법 귀의
생사의 기로, 수행으로 극복해
불은 갚기 위해 전법의 길 서원
생 다할 때까지 포교·수행 정진

무소유의 삶을 살다간 법정 스님의 가르침이다. 스님은 이 글을 통해 스스로 정진하며 실천하는 불자의 삶을 강조했다. 성숙한 삶으로 완성한 하루가 365일 1년이 되고 다시 켜켜이 쌓기를 십년, 그런 세월은 그 사람의 맑은 도량이리라.

충북 증평에서 삼화당한약방을 운영하는 권성업(80·반야) 포교사의 일상도 그러하다. 법정 스님이 말씀한 이웃과 나누는 따뜻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닦아왔다. 그의 하루는 새벽 4시 알아차림으로 시작된다.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예를 갖춘 뒤 좌복 위의 앉는 일은 그의 일상이다. 한약방 한켠 책꽂이에 빽빽이 놓인 불서는 어느 것 하나 그의 손때 묻지 않은 게 없다. 이제는 한가로이 쉴 법도 한데 노거사의 매월은 하루만큼이나 분주하고 빠듯하다. 증평수행불자회와 증평지역불자연합회 회원들과 정기적으로 만나 함께 기도하며 도반이 되는 일 또한 놓을 수 없는 소임이다. 그는 그 모임에서 밝은 눈으로 부처님 세계로 인도하는 안내자 역할을 맡고 있다.

“권성업이 증평불교이고, 증평불교가 권성업”이라는 말이 그냥 듣기 좋으라 하는 말이 아니다. 김선탁 전 증평군의회 의장은 권성업 포교사를 ‘지역 대표, 대표 불자’라고 소개했다.

“증평불교 전체입니다. 그 분 아니면 불자모임이 안됩니다. 어르신께서 어찌나 바지런하신지 젊은 불자들도 배워야 합니다. 라이온스클럽 등 나눔을 실천하는 자리에도 빠짐없이 동참해 불교계는 물론 지역사회로부터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습니다.”

김재숙 증평수행불자회장이 본 권 포교사는 살아있는 증평불교 역사다.

“불자모임 회장, 고문 등을 맡아 증평불교를 40여년간 이끌어 왔으니 살아있는 역사라는 평가에 누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겠어요. 불자모임에 있는 돈 없는 돈 모아 보시하고 부처님 가르침을 재미있고 구수하게 이야기하듯이 설명해주시니 불자들이 그냥 아이들처럼 옹기종기 모여들어요. 말이 쉽지 실천에는 법사님이 최고입니다.”

증평은 충청지역 내에서도 유난히 기독교세가 드센 곳이다. 시골마을이라도 최소 1곳 이상의 교회가 있고, 인근 지역에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대형병원이 있으니 사찰보다는 교회를 만나기가 훨씬 쉽고 자연스러운 지역이다. 그 역시 유년시절엔 친구들과 어울려 교회를 다니고 성서를 공부했다. 불상에 엎드려 절을 하고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는 불교는 우상을 숭배하는 미신이라는 말을 교회에서 귀가 따갑게 들었다. 그런 그에게 불교는 운명처럼 다가왔다. 1971년 35살이던 해 우연히 찾은 청주의 한 책방에서 만난 ‘법화경’은 그의 생각을 180도 바꿔놓았다.

“청주 육거리 뒷골목에 있던 헌책방에 들렀지요. 수북이 쌓인 책 가운데 성서가 먼저 눈에 들어오더군요. 반가운 마음에 책장을 넘기는데 첫 시작인 천지창조 대목부터 턱 걸리는 겁니다. 신앙심이 부족했던 탓도 있었겠지만 고등교육까지 마친 입장에서 곧이곧대로 읽히지 않더군요. 그러다 그 옆 먼저 쌓인 ‘법화경’을 보게 됐어요. 일본학자가 쓴 해설서를 이법화 스님이 번역한 책이었는데 우선 불교에도 이러한 책이 있다는 게 흥미로웠습니다. 그리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절대자에 의지해야 구원받을 수 있다는 지금까지의 믿음과 달리 스스로의 정진을 통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내용 그 자체가 신선하고 놀라웠습니다. 눈도 마음도 번쩍 했습니다. 순간 안심입명(安心立命)할 수 있는 길이 불교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자연스럽게 경전을 읽기 시작했다. ‘금강경’, ‘아미타경’, ‘약사경’, ‘육조단경’ 등 경전은 물론 불서를 닥치는 대로 구입해 탐독했다. 책방 이곳저곳을 찾아 불교서적은 종류에 상관없이 구입할 테니 꼭 구해달라고 부탁했다. 경전과 마주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는 부처님 가르침 속으로 깊숙이 빠져들었다. 우연한 기회에 불서를 통해 부처님을 친견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매료되면서 전생의 인연이라는 확신이 섰다.
그 즈음 그는 중등교사가 되기를 발원했다. 서류 더미에 속에서 여생을 보내는 것보다 아이들에게 지혜를 나누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삶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마침 한적한 시골마을로 발령이 나 그토록 원했던 중등교사 시험과 불교공부를 병행할 수 있는 행운도 찾아왔다. 그러나 삶이란 바다와 같아서 고요할 때가 있는가 하면, 거센 풍랑이 일기도 하는 법. 그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행복한 미래를 위해 걸음을 옮기던 그의 삶에 어둠의 그림자가 덮쳤다. 이유 없이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나고 호흡곤란 증세가 나타났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병세는 시간이 갈수록 악화되더니 목숨마저 위협하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병세가 완연해 스스로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어요. 원인을 알 수 없으니 치료법마저 찾을 방도가 없었지요. 문득 이왕 벌어진 일, 운명은 하늘에 맡기고 수행이나 실컷해보자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불교공부에 한참 빠져있을 때이니 경전 말씀을 확인하고 싶었어요. ‘법화경’의 무일불성불(無一不成佛, 성불하지 못할 사람은 없다)과 ‘논어’의 조문도석사가의(朝聞道夕死可矣, 아침에 도를 얻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는 구절이 사무치게 다가왔습니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일념으로 아미타불을 관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위기가 찾아왔지만 그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그렇게 며칠을 보냈을까? 문득 환한 빛이 비추더니 따뜻한 기운이 온몸을 휘감았다. 이적(異蹟)이 일어난 것이다. 이 일을 경험한 후 그의 육신은 더디지만 완만하게 회복되어 갔다. 틀림없는 부처님 가피였다. 그렇기에 정진의 고삐를 늦출 수 없었다. 다시 태어난 환희를 만끽하며 그는 하심하는 삶과 수행하는 일상, 전법의 길을 다시 발원했다.

1973년 11월, 그렇게 염원하던 중등교사 시험에 합격했다. 이듬해 옥천 청산중·고등학교를 시작으로 괴산고와 증평여고 등에서 학생들을 지도했다. 교직생활은 그의 내면의 폭을 넓히고 깊이를 더해 주었다. 수업이 없을 때면 학교도서관을 찾아 불서를 읽고 명상을 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몸과 마음으로 익혔다. 전법의 길에 나선 것도 이즈음이다. 불교학생회를 조직해 학생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 지역 사찰을 순례하며 신심을 굳건히 했다.

“당시에는 남학생과 여학생이 한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낼 때입니다. 그렇지만 불교학생회 만큼은 예외였어요. 불교학생회에 동참했던 아이들은 학교에서 모범생으로 통했습니다. 부처님 가르침 속에서 심성이 맑고 밝게 자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불교학생회에서 활동했던 아이들은 이제 성년이 되어 제가 걸어가는 전법의 길에 가장 든든한 후원자가 되고 있습니다. 이 또한 부처님 가피입니다.”

교편을 잡은 지 10년이 되던 해 그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의료인이 되기 위한 출발선에 선 것이다. 약사여래 12대원에 깊은 감명을 받은 그는 어린 시절 꿈꾸었던 의사로서의 삶을 다시 희망하게 됐다. 오랜 준비 끝에 한약업사 시험에 응시했고 당당히 합격의 영예를 안았다. 한편으로 그의 도전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불법을 전하고 자비를 실천하기 위한 방편이다. 그는 환자가 찾아오면 약으로 육체의 병을 치료하고 부처님 가르침과 명상으로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전한다. 실력을 믿고 찾아오는 만큼 포교 효과 또한 만점이라는 게 권 포교사의 설명이다.

그의 전법행은 찾아오는 이들에게만 머물지 않았다. 1985년 조계종 포교사 자격을 취득한 그는 사찰 신도회를 규합해 연합모임을 만드는가 하면, 공부모임을 꾸려 초보불자들을 위한 공부와 수행 지도에 나섰다. 또 문서포교에 뜻을 두고 2001년 문단에 등단, 수필집 ‘선지식을 찾아서’, ‘지식과 깨달음의 양 날개’를 내놓는 등 재가전법사의 길을 묵묵히 걷고 있다. 마흔을 앞두고 생사의 기로에서 부처님 가피로 건강을 되찾은 후 부처님과 약속한 하심하는 삶, 수행하는 일상, 전법의 길은 그렇게 지켜져 왔다.

“세월은 흘러갈 뿐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현재에 안주하거나 타인에 의지하지 말며 새로운 미래를 향해 부단히 연구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한 걸음 한 걸음 걷다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한 자신을 발견할 것입니다. 생각에 머물러서는 이룰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미래를 의심하지 않으며 현재에 충실하다면 평온한 본래의 마음자리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것이 불자의 길이자 행복한 삶의 비법입니다.”

생이 다하는 날까지 그는 사람들을 부처님의 세계로 안내하기를 발원한다. 부처님께서 다음 생에 대해 생각하지도 바라지도 말라하셨던 까닭은 오늘 하루하루가 그 만큼 소중하고 절실한 날이기 때문이다. 또한 중생의 과욕을 경계하기 위한 말씀이기도 하다. 때문에 그는 다음 생에도 불법을 따르고 보살행을 실천하는 불제자가 되기를 지극하게 서원한다. 팔순의 나이에도 경전을 펼치고 좌복 위에 앉으며 대중이 모인 곳에서 불법을 전하고 자비와 나눔을 실천하는 이유다. 향을 싼 종이에는 향내가 난다. 향기로운 삶을 살아가는 그에겐 푸른 법향(法香)만이 가득하다.

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1296호 / 2015년 5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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