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대법회 의미
‘광화문’ 대법회 의미
  • 문광 스님
  • 승인 2015.05.26 20:00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광화문 광장에서 세계평화와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간화선 대법회가 열리기 일주일 전, 나는 서울 도성의 사신사(四神砂)인 북악산, 인왕산, 낙산, 남산을 차례로 돌며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1700년 한국불교 역사에 유례가 없는 광화문 광장의 대법석이 아무런 사고 없이 무사히 치러지길 간절히 발원했다. 인왕산의 경우엔 선바위에서 기도를 올렸는데 ‘선바위’라 하면 흔히들 입석(立石)을 떠올리겠지만 선석(禪石)의 의미로 스님이 장삼을 입고 서 있는 모습에서 유래했다. 조선왕조가 개국하면서 이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는데 무학대사는 도성 안에 두자 했고 정도전은 도성 밖에 두자 했다. 결국 선바위는 도성 밖으로 밀려났고 무학대사는 ‘이제 스님들이 선비들의 보따리나 들어주는 처지가 되겠구나’ 하고 탄식했다한다. 조선 오백년 동안 승려의 도성출입은 제한되었고 억불정책의 기조는 유지되었다.

일제 강점기 때엔 경복궁엔 조선총독부가, 남산엔 신사가 들어서서 우리의 민족정기를 짓밟았다. 지금도 광화문의 좌측 자리엔 미국대사관이 들어서 있고 우측의 덕수궁 곁에는 영국대사관이 차지하고 있다. 예나 지금에나 노른자 땅은 외세의 차지이고 우리의 전통과 불교는 배척되어 있다. 조부의 이름을 한자로는 쓰지 못해도 오직 영어를 위해 영미권으로 조기유학을 떠나고 박사학위를 취득하고자 토플점수를 따는 지금의 한국인 삶은 한국의 중심 광화문의 기운과 무관하지 않다. 인걸(人傑)은 지령(地靈)이라 했듯이 땅 생긴 모양대로 땅이 배치된 기운대로 사람이 그대로 닮아서 산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중국 북경의 도심을 보면 우리의 경복궁과 광화문에 해당하는 자금성과 천안문 광장의 주변에 중국의 전통과 문화 이외의 것을 찾아볼 수 없다. 좌측엔 고궁박물관이, 우측엔 우리의 국회격인 인민대회당이 있으며 그 주변엔 외국문자가 눈에 띄지 않는다. 북경에서 가장 부러웠던 것은 바로 중화민족의 눈부신 주체성이었다. 내 정신과 내 힘이 있고 난 뒤에야 이타행도 가능하고 동등한 지위에서의 대화도 가능하다는 민족정신이 미국과 세계최강을 겨루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광화문 광장에서 펼쳐졌던 간화선 무차대법회는 유사 이래 최고의 대법석으로 조선조 오백년간 억눌렸던 불교계의 모든 한을 일거에 제거하고 칠통을 타파하는 통쾌함을 주기에 충분했다. 1700년 한국불교의 전통은 법고와 타종, 죽비와 목탁을 통해 예불과 반야심경, 10분간의 선정삼매와 종정스님의 법어로 여지없이 드러났다. 수많은 법난과 종교적 억압의 기억을 이날 운집한 30만 불자는 연등행렬과 상경행렬로 일거에 승화시켰다.

실낱같이 전해진 불조의 정법안장을 오늘날까지 소중히 이어 내려온 진제 종정 예하의 사자후에서는 한국불교사의 유장하고 거룩한 흐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불교가 중심이 되어 세계불교계를 대표하는 고승대덕들과 이웃 종교지도자가 함께 원탁에 마주하여 세계평화기원문을 채택한 것 역시 큰 의미 있는 일이었다.

모두가 노력했고 한마음으로 발원한 결과였다.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의 준비에도 차질 없이 모든 행사가 잘 마무리 되었고 수많은 불자가 운집했음에도 성숙한 질서의식과 차분함이 시종일관 유지됐으며 포교사를 비롯한 4000여명의 자원봉사자의 활약은 빛을 발했다. 지방에서 새벽부터 올라오신 노보살님들은 내 생에 이런 큰 법회를 언제 다시 볼 수 있겠느냐며 불편을 감수해 주셨다.

가장 감동적이었던 것은 우리 청년 불자들의 열정과 밝고 긍정적인 불심을 확인할 수 있었던 점이다. 3주일간의 휴가를 내어 통역 자원봉사를 하러 호주 시드니에서 왔다는 젊은 불자도 있었고, 자정이 넘은 시간에 행사를 마친 광화문에서 장엄등을 끌고 조계사까지 이동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던 청년법우들도 있었다. 모든 것이 불심(佛心)의 광화(光化)였다. 긍정은 항상 부정의 상위개념이다. 행하는 자를 행하지 않는 자가 나무랄 수는 없다. 광화문 광장에서의 대법회는 잊지 못할 또 하나의 불연(佛緣)의 추억이 될 것이다.

문광 스님 탄허기념박물관 연구실장 naksanbosal@daum.net

[1296호 / 2015년 5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 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불자 2015-05-30 23:02:07
따뜻하고 부드러운 글 감사합니다. 스님의 마음이 글에서 보이네요.
그리고 행하는 자를 행하지 않는 자가 나무랄 수는 없다는 말씀 깊이 간직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