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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비밀주의는 재앙만 키울 뿐

재난은 언제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 가능하면 엉뚱한 재난에 휘말리지 않도록 조심하고, 재난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비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재난이 전혀 없을 수는 없다. 우리 인간사가 그렇듯 피할 수 없는 재난이 있기 마련이기에 ‘고해’라고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오죽하면 장자는 “사람의 삶이란 태양을 쏘아 떨어뜨렸던 명궁인 예(羿)가 활을 겨누는 앞을 오락가락 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을까? 화살에 안 맞는 것이 이상한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환란과 재앙을 당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무너지는 담장 밑에 있다 화를 당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예방하는 것과 재난을 당했을 때 그 피해를 최소화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일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개인적인 재난의 경우뿐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재난의 경우도 똑같다고 할 수 있다. 재난을 예방하는 체제를 충분히 갖추고 있어야 하며, 재난이 발생했을 때 그것을 적절하게 구조하여 커다란 사회적 환란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하는 위기관리 체제가 확고하게 수립되어 있어야 한다.

이번에 ‘메르스’와 관련된 사태를 지켜보면서 우리 사회의 재난 예방 시스템과 위기관리 시스템에 대해 전반적으로 불신이 팽배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메르스 감염자가 생기게 된 시점부터 그 뒤의 대책에 이르기까지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안이하고도 무원칙한 대응이 계속되고 있다. 그 구체적인 사례들을 일일이 따지는 것은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이 논하기에 부적절한 일일 수 있다.

그럼에도 메르스 대책 가운데 원론적으로 옳고 그름을  따져봐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정부의 비밀주의다. 정부가 철저하게 대응을 하고 있으니 국민들은 굳이 메르스에 관한 정보를 알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또한 언론들도 쓸데없이 메르스에 관한 정보를 알림으로써 국민들의 불안을 증폭시키고 사회적 혼란을 조성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것이 가능한 대책인가부터 생각해 보자. 현대의 발달한 정보망이 이런 정부의 통제에 막힐 수 있을 것인가? 환자는 발생한다. 그 환자의 주변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있고, 그들을 일일이 돌아 다니면서 정보를 틀어막지 않는 한 결국 어떤 식으로든 알려질 수밖에 없다. 또 환자를 중심으로 한 어떤 조치를 취할 때마다 정보가 전해질 수밖에 없다. 웬만큼 강력한 통제를 하지 않는 한 비밀주의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또한 국민의 알 권리를 무조건 막는 강력한 통제는 근본적으로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리고 통제를 통해 비밀을 유지하려 했던 것이 실패로 끝나게 되면 그것은 애초에 시작하지 않았던 것 보다 훨씬 더 나쁜 결과를 낳게 마련이다. 통제 가운데 전해진 불완전한 정보는 ‘유언비어’성을 띄게 마련이며, 공신력 있는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유언비어 성의 정보가 여기저기서 날뛰게 되면 그야말로 혼란은 극에 달하게 된다. 어느 것도 믿을 수 없기에 불안은 증폭된다. 혼란을 막기 위한 비밀주의와 통제가 더 큰 혼란을 부추길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지금 메르스를 둘러싼 상황이 바로 이런 양상이다.

혼란과 불안은 정확하고도 신속한 대처를 통해 극복되어야 한다. 그것에 힘쓰기보다는 환자발생 병원과 환자발생 지역에서 일어나게 될 혼란과 불이익을 막아야 한다는 명분으로 정보를 통제한다는 것은 본말이 어긋난 발상이다. 메르스의 확산과 국민적 불안이 폭증하게 된 데는 이런 잘못된 원칙에 바탕한 비밀주의가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사실을 사실대로 밝히고, 한 두 곳 병원이나 지역이 겪을 수 있는 불이익에 대한 우려는 신속한 정부대책을 통해 최소화하는 것이 정당한 길이다. 사실을 감추면서 “믿어 달라” “불안해하지 말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모르는 것인가? 사실을 감춘다는 것이 바로 불신의 근원이며, 불안을 증폭시킨다는 것을 바로 보아야 한다. 사실을 밝히고 진정성을 보이면 국민은 믿고 호응할 수 있다. 이런 국민에 대한 믿음이 모든 대책의 근본이어야 한다.

성태용 건국대 철학과 교수 

[1297호 / 2015년 6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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