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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얻는다는 마음이 없음

기자명 서광 스님

얻었다는 마음이 있다면 지혜 아닌 망상

“수보리야,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과를 얻은 성인들이 각자 자신이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의 경지를 얻었다고 생각하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그것은 이름으로 존재할 뿐 실제로 그렇게 불릴 만한 대상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들이 그러한 경지를 얻었다고 생각한다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저를 욕망을 떠나 다툼이 없는 삼매를 얻은 사람 가운데 제일가는 아라한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만일 ‘나는 욕망을 떠난 아라한의 경지를 얻었다’고 생각한다면 세존께서 ‘수보리는 열반의 고요하고 맑음을 즐기는 자’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앞에서(18~19회) 부처님의 가르침은 자아에 대한 집착이 없는 무아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배우는 이들의 수준과 조건에 따라서 다양하게 가르쳐진다고 했다(무위법). 따라서 불법은 일정하고 고정된 형태가 없어서 움켜잡을 수도 없고, 말로 설명될 수도 없다는 의미에서 불법이, 불법이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불성의 실현을 강조하는 대승불교와는 달리 초기불교는 중생의 깨달음을 장애하는 번뇌를 제거하는 정도에 따라서 수행을 4단계(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로 분류하고 있다. 수행자들은 이 4단계의 과정을 통해서 법을 성취하고 수행의 열매를 얻는다(修行四果)고 하는데, 그렇다면 거기에는 성취할 법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위의 내용은 그러한 의문을 해소해 주고 있다. 한마디로 이들 성자들의 영적 수준에서는 몸과 정신현상을 자아로 착각하지 않기 때문에 자기가 깨달음의 단계를 얻었다는 의식이 없을뿐더러 수행의 열매가 고정된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 이름이 수다원이고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이라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는 욕심을 떠나서 다툼이 없는 삼매를 얻은 최고의 아라한이라고 말씀하시지만, 수보리 존자 자신은 스스로에 대해서 그러한 의식이 없기 때문에 최고의 아라한이라고 불린다는 것이다.
아라한과 같은 성자들은 왜 수행을 통해서 얻었다는 마음이 없고, 만일 있다면 그것이 왜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에 집착하는 것인가? 육조 혜능대사는 얻은 것이 있다는 마음에는 다툼이 있고, 다툼이 있기 때문에 청정하지 않다고 했다. 왜인가? 무엇을 얻는다는 마음은 인식의 대상을 취하는 것이어서 얻는 주체와 얻는 대상간의 주객 이원성을 낳기 때문이다.

대상을 얻는 행위는 주체의식, 즉 아상을 강화시키게 되고, 아상은 다시 대상에 대한 소유의식인 인상을 강화시키기 때문이다. 주체의식과 대상의식의 만남은 다양한 형태의 계산을 유발하여 갖가지 갈등과 다툼이 있는 중생상을 낳고, 그와 같은 조작적인 계산 자체가 수자상을 유지시키고 강화시키게 된다.

앞으로도 계속 보게 되겠지만 우리는 불교공부를 하면서 끊임없이 뭔가를 얻었다는 느낌을 갖고 싶어 하는데, 부처님께서는 정반대로 얻은 것이 있다는 의식을 갖지 말라고 하신다. 얻었다는 마음이 있다면 그건 지혜가 아니라 또 다른 모양의 번뇌와 망상을 보탠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마음수행은 탐욕, 화, 어리석음의 세 가지 독성을 해독하는 과정(번뇌제거)이므로 무엇을 얻었다거나 성취했다는 표현은 맞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보다는 독성에 중독된 마음이 해독되면서 정화되고, 깨끗해진다는 표현이 수행의 의미에 더 부합된다는 것이다(자성청정). 즉 탐욕과 화, 어리석음에 의해서 생겨난 천만가지 들끓는 감정과 생각들이 수행을 통해서 누그러지고 사라지면서 중독되기 이전의 상태인 본래부터 맑고 깨끗한 마음이 드러난다는 의미다. 마치 감정과 생각의 먹구름이 사라지면서 그 속에 가려졌던 태양이 빛나듯이 말이다.

서광 스님 한국명상심리상담연구원장 seogwang1@hanmail.net

[1297호 / 2015년 6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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