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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과 온실가스

가뭄이 심상치 않다. 땅이 온통 푸석거린다. 정부에 따르면 올해 강우량은 예년의 60% 수준이다. 강원도 춘천 소양강댐의 저수율이 26.8%, 충주댐은 23.3%에 불과하다. 작은 저수지들은 벌써 허연 배를 드러냈다. 가뭄에 따른 농작물 피해도 속출하고 있다. 농업용수가 없어 모내기를 못하거나 모내기를 한 논들도 거북등처럼 갈라지고 있다. 이렇게 전국의 논 2181ha, 밭 2766ha가 말라붙었다. 여의도 면적의 20배에 이르는 규모다.

강우량 예년의 60% 불과
농작물 피해 갈수록 확산
환경파괴 따른 재앙임에도
정부, 성장외치며 환경양보

최근 오대산 월정사에서 기우제가 열렸다. 부처님의 위신력에 기대서라도 극심한 가뭄을 해결해야 할 만큼 지금 대지는 타들어가고 있다. 가뭄 때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열리는 기우제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중생의 아픔을 내 일처럼 여기는 불교계로서는 기우제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을 것이다. 기록에 따르면 당나라의 현수법장 스님은 기우제를 잘 지내기로 유명했다. 당나라 측천무후는 가뭄이 들 때마다 법장 스님에게 기우제를 부탁했고 법장 스님이 기우제를 지내고 나면 반드시 비가 내렸다. 유교주의를 표방했던 조선도 예외는 아니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태종이 장원삼 스님에게 기도를 부탁한 대목이 나온다. 왕까지 나서 여러 차례 기우제를 지냈으나 비가 내리지 않자 스님에게 부탁해 흥천사에서 기우제를 지냈고 이내 비가 내렸다고 한다. 사찰에서 기우제를 지내는 것은 가뭄으로 절망에 빠진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부처님의 자비에 기대어 국난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아마도 가뭄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그 간절함이 우주의 흐름 또한 바꾸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가뭄은 과거와 달리 일상화되고 있다. 심각해지는 환경오염에 따른 기후변화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산업시설과 차량에서 쏟아지는 온실가스가 대기를 달궈 몬순지대였던 한반도가 점차 아열대성지대로 바뀌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래서 가뭄과 집중호우가 번갈아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상화되는 가뭄을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 스스로 환경을 보호하고 온실가스를 줄이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최근 정부는 이에 역행하는 환경정책을 발표했다. 이명박 정부시절 내놓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를 하향조정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경제와 성장을 포기할 수 없다는 현실적인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가뭄과 같은 기후변화에 따른 피해가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상식이다. 가뭄은 단순한 가뭄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메르스 사태로 사람들이 시장이나 가게에 잘 가지 않았는데도 가뭄에 따른 작황불황으로 감자와 배추 등 주요 채소가격이 평년보다 40~50%가량 급등했다. 가뭄에 따른 피해가 경제전반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런 식으로 가뭄이 계속되면 농산물뿐만 아니라 수력발전과 바이오산업 등 모든 분야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돌이켜보면 가장 크게 우리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는 것은 정부의 무능이었다. 경제에 엄청난 타격을 입힌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는 온전하게 정부의 잘못이다. 남북긴장에 따른 리스크와 정치권의 정쟁에 따른 사회적 비용도 경제성장을 가로막는 요인이다. 이런 근본원인은 그대로 둔 채 환경을 양보해서라도 온실가스 감축에 따른 기업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경제성장의 해법이라고 생각하는 정부의 인식이 안타까울 뿐이다.

▲ 김형규 부장
사실 우리에게 가뭄은 단순히 비가 오지 않는다는 물리적 개념만은 아니다. 둘러보면 주변이 온통 가물다. 해갈 기미가 없는 남북관계와 정쟁으로 뜨거운 정치권, 메르스에 대한 무능한 대처로 국민을 열 받게 하는 정부. 어느 것 하나 가물지 않은 것이 없다. 그래서 국민의 마음이 온통 타들어가고 있다. 지금의 가뭄은 국민의 심정인지도 모른다. 정말 기우제라도 지내고 싶다.

김형규 kimh@beopbo.com

 

[1298호 / 2015년 6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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