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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속을 굶기는 지도자는 지도자가 아니다

최근 조계종의 재정에 관한 두 사건이 중앙 일간지의 조명을 받았다. 첫째는 조계종이 ‘사찰재정 공개 의무화’를 천명한 것이다. 지난 4월27일 자승 총무원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종단이 갖고 있는 문제를 그대로 드러내고 근원적으로 치유해 삶과 수행, 생활의 공동체를 회복하려 한다. ‘사부대중 100인 대중공사’의 논의 결과를 바탕으로 사찰재정 투명화를 추진키로 했다”고 말했다.

조계종은 우선 조계사, 봉은사 등 직영사찰 4개와 도선사, 연주암 등 특별분담금사찰 7개, 불국사, 해인사 등 예산 30억원 이상인 4등급 사찰 50여 곳에 대한 재정을 7월부터 공개한다. 이는 종단 전체 사찰 재정의 약 60%에 해당한다. 또 예산 30억원 미만의 사찰에도 단계적으로 재정 공개를 확대할 방침이라고 한다. 만시지탄은 있으나 조계종의 사찰재정 공개 방침은 우리나라 불교진흥에 한 획을 긋는 중요한 조처가 되리라 생각한다. 많은 불자들이 그들의 시주금이 일부 몰지각한 스님들에 의하여 부정하게 사용되지 않나 하는 의구심 때문에 사찰의 발전과 포교활동에 필요한 시주를 꺼려왔던 것이 사실이다. 조계종의 이번 조치는 이러한 의구심을 말끔하게 씻어내는 계기가 되리라 생각한다.

한편 지난 5월9일 동국대에서 열린 ‘수좌(선승) 복지 세미나’에서 조계종의 많은 노 선승들이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는 암울한 현실이 드러났다. 이 세미나를 주최한 선원수좌복지회 대표 의정 스님은 “무소유, 무소유 하지만 ‘집도 절도 없는 신세’가 바로 선승들입니다. 선승들도 병이 나면 입원도 해야 하고 안거철이 끝나면 나머지 3개월 동안은 거처도 필요합니다. 과거 사찰 주지는 수행을 잘 뒷바라지하는 것이 임무의 1순위였습니다. 그런데 절집 풍토가 너무나 많이 바뀌었습니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조계종은 선종을 표방하고 있어 종단의 꽃은 운수납자인 선승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안거철이 끝나면 만행에 나서는데 예전엔 절마다 객실이 있어 며칠씩 거기 머물다 떠날 수 있었는데 최근엔 객승을 꺼리는 분위기가 만연해 결국 집세가 싼 시골에 빈집이나 작은 아파트를 구한다고 한다. 선승들 중에는 사판 소임을 맡지 않아 돈과는 아예 인연이 없다보니 노후에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거나 병이라도 들면 돌보는 사람 없이 쓸쓸히 세상을 떠나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샤를 보들레르의 ‘가을의 노래’는 “이윽고 우리는 차가운 어둠 속에 잠기리니 그럼 잘 가거라. 너무 짧은 여름날의 센 빛이”로 시작한다. ‘평생 일체의 명리를 마다하고 오직 부처님을 쫓아 선수행에만 몰두했던’ 선승이라면 이 구절이 궁핍한 노년에 홀로 남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차갑고 어두운 죽음을 생각할 때 느끼는 회한을 표현한다고 느끼지 않을까?

조지 부시 대통령은 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북한의 지도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자기 국민을 굶주리게 하는 지도자는 지도자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다소 엄격한 잣대일지는 모르지만 같은 논리를 조계종에 적용한다면 종단과 지도자는 출가 수행종단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선승들의 생활과 노후를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

조계종의 ‘사찰재정의 공개’와 ‘선승의 노후 보장’은 서로 맞물려있는 문제다. 종단에서 사찰재정을 투명하게 운영하면 선승들의 노후를 보장할 수 있는 재정적 여유를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비구란 원래 걸사(乞士)를 뜻한다. 하지만 오늘날 일부 출가자들의 호사스런 생활과 일탈로 인해 종단 전체가 매도되고 부처님을 욕되게 하는 안타까운 일들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사태의 근저에는 부정한 사찰재정의 운영 또한 원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의 고위 공직자들은 매년 재산을 공개한다. 공직자로서 개인의 삶 또한 투명해야 함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대중이 함께 하는 사찰의 살림살이 또한 모든 것이 투명하게 공개돼야 하는 것도 당연하다. 이제 종단과 지도자는 선승들의 생활과 노후를 보장하기 위한 여건과 제도 확립을 최우선 과제로 취급해야할 시점이다. 

이기화 서울대 명예교수 kleepl@naver.com

[1298호 / 2015년 6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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