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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집착 없는 마음을 내라

기자명 서광 스님

보살행 닦으려면 개념보다 직관에 의지하라

“수보리야, 여래가 옛날에 연등불로부터 법을 얻은 적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야, 보살이 불국토를 장엄한다고 생각하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불국토를 장엄한다는 것은 장엄이 아니라 그 이름이 장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수보리야, 모든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청정한 마음을 내어서 모양에 집착하지 않고 마음을 내고, 소리, 냄새, 맛, 감촉, 마음의 대상에도 집착하지 않고 마음을 내어야 한다. 수보리야, 어떤 사람의 몸이 수미산 같다면 그 몸이 크다고 생각하는가? 수보리가 대답하기를 매우 큽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부처님께서는 몸이 아닌 것을 가리켜서 큰 몸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개념·판단 등은 이원적 수단
느낌·통찰·직관 등이 바람직
그럴 때 주객 경계 사라지고
중생들 깨달음으로 인도 가능

앞에서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취할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는 것이라고 배웠다. 그렇다면 부처님이 전생에 연등불로부터 수기를 받고 설법을 들었다고 했는데, 그게 불법을 취하고 설명한 것이 아니라면 뭔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그에 대해서 해명하시기를, 당시 부처님은 말로써 설명을 들은 것이지 몸으로 체득한 깨달음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아울러서 보살이 불국토를 아름답게 꾸민다는 표현 또한 말로써 설명하자니 그렇다는 것이지 실제로 아름답게 꾸민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꾸미는 자와 꾸며지는 대상, 즉 주객의 경계가 사라진 마당에 누가(주체) 무엇을(객체) 꾸민다는 말이 맞지 않다는 것이다.

영어에 ‘행간을 읽으라(read between the lines)’는 표현이 있다. 이는 말 자체가 아니라 그 말이 의미하는 이면의 뜻을 제대로 파악할 줄 알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예를 들어서 자아에 대한 집착으로(常見) 고통 받는 사람에게 자아는 실체가 없고,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면, 어떤 사람들은 자아는 실체가 없으니 집착하지 말라는 가르침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자아가 없다는 말 자체, 즉 무아라는 개념에 집착하게 된다(斷見). 가끔 필자가 개발한 ‘참나(진아) 만나기’라는 제목의 수행프로그램을 보고, 불교의 핵심사상은 무아(無我)고 공(空)인데 ‘참나/진아’라는 말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원효 스님의 ‘열반종요’에 보면, 외도는 자아에 집착하고 성문은 무아에 집착한다는 구절이 나온다. 원효 스님은 우리가 아(我)에도, 무아(無我)에도 집착하지 않아야 대아(大我), 즉 진아(眞我)를 얻는다고 말한다(中道).

위에서 보살은 청정한 마음을 내어서 모양이나, 소리, 냄새, 맛, 감촉, 마음의 대상 등에 집착하지 않고 마음을 낸다고 했는데, 무슨 의미일까? 마음이 청정하다는 것은 자아의식이 작용하지 않는다는 뜻이고, 이는 인식의 주체와 객체가 하나가 되어, 자아의 기능이 멈추었다는 의미고, 주객이 전체적이고 통합적이고 조화롭게 작용한다는 의미다. 그 결과 우리의 눈, 귀, 코, 혀, 몸, 마음이 모양, 소리, 냄새, 맛, 감촉, 마음의 대상을 생각, 개념, 판단이라는 수단을 사용해서 표상적인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느낌, 감각, 통찰, 직관 등을 수단으로 체화한다는 것이다. 전자는 타자에게 전달될 수 있고 설명될 수 있는 지식이고, 후자는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경험이기 때문에 그야말로 말로 전달되거나 설명될 수 없는 지혜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위의 내용에서 부처님 말씀의 요지는 누구든지 보살행을 닦고자 하는 사람들은 생각이나 개념, 판단이라는 이원적 수단을 사용하는 대신, 느낌, 감각, 통찰, 직관 등의 비이원적 수단에 의지해서 자비심을 실천하라는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그래야만 주객의 경계가 없는 깨끗한 마음을 일으키게 되고,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없기 때문에 수미산처럼 절대평등한 큰 몸이 되어, 한 중생도 빠짐없이 일체중생을 모두 완전한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닌가 짐작해 본다.

서광 스님 한국명상심리상담연구원장 seogwang1@hanmail.net

[1298호 / 2015년 6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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