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으로 길러지는 인성
성적으로 길러지는 인성
  • 김형규 기자
  • 승인 2015.06.22 13:34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내가 학교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중학생 딸이 이름표를 부착하지 않아 벌점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아이들이 이름표 부착을 잊을 수도 있지, 주의를 줘도 될 만한 일에 점수까지 매긴다는 생각에 불쾌했다. 그러나 아내는 이런 벌점들이 모여 수능에 영향을 미친다며 아이를 다그쳤다. 성적평가로도 모자라 생활태도까지 점수를 매겨 평가하는 몰인정한 교육에 비애가 느껴졌다. 독재자 빅브라더에 의해 감시당하는 미래사회를 그린 조지오웰의 장편소설 ‘1984’의 모습이 우리의 학교 현장이라는 안타까움이 일었다.

교육부, 인성교육 시행 두고
사교육 시장 벌써부터 들썩

건전한 국민육성 취지 난센스
인성은 평가로 길러지지 않아


그렇지 않아도 힘든 아이들에게 앞으로 더욱 황당한 일이 기다리고 있다. 7월21일부터 인성교육진흥법이 시행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정쟁을 일삼던 국회의원들이 난데없이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법이다. “건전하고 올바른 인성(人性)을 갖춘 국민을 육성하여 국가, 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함”이 법제정 취지다. 건전하고 올바른 인성을 갖춘 국민의 기준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어찌됐든 교사들은 당장 7월부터 학생들의 인성을 평가해 학생부에 인성발달 상황을 기록해야 한다.

그러나 법 시행을 앞두고 벌써부터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대학이나 기업들이 학생부의 인성발달 상황을 중요한 평가요소로 채택하겠다고 밝히면서 사교육 시장이 요동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일선 학교에서는 인성교육을 위한 예산을 편성해 의무적으로 인성교육을 실시해야한다. 사교육업체들이 이런 시장을 노리고 프로그램 개발에 박차를 가하며 교육부 인가를 얻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 따르면 인성관련 자격시험은 지난해 60종에서 올해 120종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아이들이 좋은 인성평가 점수를 얻기 위해 사교육시장의 문을 두드려야 할 시점이 멀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교육부는 인성교육 의무화가 세계 최초라며 자랑하고 있다. 교육부 설명처럼 세계 어디에서도 국가가 학생의 인성을 평가해 점수를 매기는 곳은 없다. 인성평가에 대한 객관적 기준이 없을뿐더러, 이는 양심을 평가하고 재단하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인성평가의 뿌리는 일제강점기로 올라간다. 일제가 순응하는 조선인을 만들기 위해 학적부에 성행(인성)을 기록한 것으로부터 시작됐다. 이후 독재정권에서는 인성교육이라는 미명 아래 국기에 대한 맹세와 국민교육헌장을 낭독케 하며 국가권력에 복종하는 국민을 길러내기 위해 혈안이 됐다. 인성교육진흥법에 대한 우려는 박근혜 대통령이 ‘애국심’을 강조하면서 예견된 일이었다. 정부는 국가조직을 동원해 국기교육을 강화하고 태극기 달기운동을 전개했다. 유치원, 통반장과 이장을 활용한 방안까지 추진해 거센 비판을 받았다. 국가가 인성교육을 통해 국민을 육성한다는 것 자체가 독재적 발상이다. 정책에 대한 비판을 종북이나 좌파로 몰아붙이는 현 정부가 염두에 두고 있는 건전한 국민이 어떤 국민인지 짐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올바른 인성은 법과 제도로 길러지지 않는다. 사회의 품격과 문화적 역량이 인성의 질로 이어진다. 정부의 품격이 국민의 품격이며, 아이들이 갖게 될 인성의 품격이 될 것이다. 비리와 추문으로 얼룩진 사람들이 고위공직자가 되고 법을 어기는 사람이 능력자로 평가받는 부패한 사회로부터 인성평가를 받게 될 아이들도 황당해 할 것이다.

▲ 김형규 부장
승가에는 자신의 허물을 묻거나 스스로 허물을 밝히는 자자와 포살의 전통이 있다. 부처님께서는 입멸에 드시기 전까지도 제자들에게 자신의 허물을 물었다. 올바른 인성은 이렇게 몸과 행동으로 모범을 보일 때 길러지는 것이다. 점수를 매기며 다그치고 학원에서 특별한 과외를 받는다고 길러지지 않는다. 아이들의 인성을 더욱 황폐하게 할 정부의 인성교육을 그래서 반대한다.

김형규 kimh@beopbo.com
 

[1299호 / 2015년 6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 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조선법보 2015-06-26 10:32:16
왜 이번에도 법보신문은 서의현의 재심 판결 사태에 대해 입장을 밝히지 않을까요.
94년 개혁회의를 그렇게 대대적으로 특집으로 다루더니...
동국대 문제도 그렇고, 이번 사건도 그렇고 왜 그리 신문사의 의견을 밝히지 않을까요.
정론도 직필도 자사의 이익에 따라 편중하고 집중하는 신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