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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 그리고 출판 권력의 오만

작가 신경숙 씨의 표절 논란이 화제다. 6월16일 시인 겸 소설가 이응준 씨가 “신경숙이 1996년 발표한 단편 ‘전설’의 한 부분이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의 한 부분을 표절한 것”이라는 의혹을 공개적으로 제기하면서다. 그러나 신 씨는 사과나 해명 대신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을 알지 못한다”며 “대응하지 않겠다”고 일축했다. 여기에 ‘전설’을 펴냈던 창작과비평이 “유사한 점이라곤 신혼부부가 등장한다는 정도다. 또한 선남선녀의 결혼과 신혼 때 벌어질 수 있는, 성애에 눈뜨는 장면 묘사는 일상적인 소재인데다가 작품 전체를 좌우할 독창적인 묘사도 아니다”라는 해명을 내놓으면서 비난이 거세졌다.

“대형 상업출판사의 본성을 드러낸 것” “창비가 아니라 창피다” “창작과비평이 아니라 표절과 두둔으로 바꿔라” 등 창비를 향한 날선 비난이 이어졌다. 여기에 더해 일부에서는 “대형 상업출판사로서 주요 작가를 보호하겠다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라며 출판 기득권 세력의 민낯을 드러낸 상황으로 분석하기도 했다.

출판계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갔다. “창비와 문학동네, 문학과지성사 등 대형 출판사들이 주요 작가들을 싹쓸이하면서 만들어진 권력화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 비판은 애초 신경숙의 표절 의혹을 제기한 이응준이 “한국문단은 표절을 저질러도 아무 문제가 없는 곳이다. 책이 많이 팔리거나 문단권력의 비호가 있으면 표절 문제가 제기돼도 약간의 소란 후 평온으로 되돌아갈 뿐”이라고 비판했던 대목과도 상통한다.

사실 표절 논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동안 여러 작가가 표절 논란의 중심에 섰지만, 이응준 씨 말대로 그때마다 거대 출판 권력의 활약(?) 덕분에 유야무야 넘어갔을 뿐이다. 하지만 출판 권력을 거머쥔 쪽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 그들의 오만이 지속될수록 출판가는 더 위축되고 출판시장은 고사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 심정섭 부장
출판 권력의 오만으로 비춰지는 모습은 또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최근 한길사가 펴낸 학담 스님의 ‘한 권으로 읽는 아함경’은 2009년 불교시대사에서 펴낸 홍사성의 ‘한 권으로 읽는 아함경’과 책 제호가 같다. “중복된 제호임을 알았으나 간담회 일정이 촉박해 그대로 진행했다”는 게 한길사의 변이다. 대법원은 이 경우 “영업상의 이익을 침해할 우려가 있음이 분명한 경우에 유사한 제호를 사용하는 행위는 부정경쟁방지법에 의해 금지된다”고 판시한 바 있다. 그러나 소형 출판사인 불교시대사가 6년이나 먼저 출판했음에도 대형 출판사인 한길사가 같은 제호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서는 결국 법적 논쟁을 거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또 다른 출판 권력의 오만이 아닌지 씁쓸할 뿐이다.

심정섭 기자 sjs88@beopbo.com

[1299호 / 2015년 6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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