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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와 인문정신

기자명 함돈균

메르스 사태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자칫 장기화될 경우 한국적 풍토병으로 주저 앉는 게 아니냐는 의학적 예측까지 나오고 있다. 여러 원인 진단이 있지만, ‘정부’가 이 사태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는 점에는 별 이견이 없는 듯하다. ‘인문학’이라기보다는 ‘인문정신’이라는 차원을 강조하는 활동을 많이 하다 보니 한 언론사로부터 좀 특이한 전화인터뷰를 받게 되었다. 이 사태에서 정부의 대응 문제를 ‘인문정신’의 차원에서 얘기해 줄 수 있겠냐는 거다. 그때 충분히 전달하지 못했던 얘기를 이 지면을 통해 전해 보고자 한다.

누구나 지적하는 정부의 초기 대응 실패를 ‘방심’이라는 차원에서 얘기해 보고 싶다. ‘방심’이란 말 그대로 ‘마음을 놓는’ 것이다. 그런데 ‘마음을 놓는다’는 말에서 ‘마음’이라는 모호한 개념을 ‘철학적으로’ 구체화해 보자면 그건 어떤 지성의 문제, 그 중에서도 판단력과 관련한 부분이라고 여겨진다. 그렇다면 ‘방심’이란 지성적 판단력에 작동한 어떤 ‘안이함’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의문은 이렇게 중대한 사태에서 어떻게 그런 ‘안이함’이 발생했을까 하는 것이다. ‘지성적 안이함’은 ‘사고의 자동화’와 다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비상한 사태에 대해 ‘늘 있는’ ‘감기’의 심한 버전 정도라고 ‘자동적으로’ 판단한 것이 아닐까. 사태에 대한 이런 관성적인 ‘자동 판단’은 그 판단에 상응하는 실천을 낳는다. ‘감기’ 정도의 사태 판단은 감기 수준의 대응을 낳는다. 그것은 특별히 아무 조치를 할 필요가 없으니 ‘그대로 생활하라’는 사실상의 ‘무대책’, 실천의 부재다.

‘인간은 악하다’(성악설)거나 ‘인간은 착하다’(성선설)와 같은 고대 동아시아의 인간론이 인간과 그 인간들이 모여 사는 삶에 대해 본의 아니게 심각한 오해를 하게 하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변치 않는 인간성을 지닌 ‘나쁜 인간’이나 ‘착한 인간’이 있거나, 그렇게 태어나는 ‘인간 심성’이란 게 있을까. ‘심성(마음)’이나 ‘인간’이 아니라, ‘나쁜 행위’나 ‘착한 행위’가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나쁜 행위’와 ‘착한 행위’란 어떤 것인가.

그것은 ‘마음’이라는 모호한 개념보다는 어떤 지성적 판단력의 문제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어떤 구체적 상황에서 그 사태에 대한 종합적이고 ‘정확한’ 판단력이 있다면, 그 판단에 맞는 ‘적절한’ 대응과 실천이 뒤따를 것이다. 정확한 사태 판단력에 뒤따르는 적절한 대응과 실천을 ‘좋은 행위’, 그렇지 못하다면 ‘나쁜 행위’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를 판단력과 실천력이 종합된 ‘도덕능력’이라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철학자 칸트가 ‘도덕(윤리)’의 문제를 ‘실천적 이성’이라고 규정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 있다.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 정부의 실패는 판단력과 실천력이 결합된 ‘도덕능력’의 파탄이라는 측면에서 이해된다. 이처럼 중요한 국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이들의 ‘방심’은 ‘도덕능력’의 부재를 그대로 드러내면서 공동체 전체를 위기에 빠뜨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방심’이 세월호 사태의 반복이라는 사실이다. 그때 어떤 여당 정치인이 그 사태를 일상적 ‘교통사고’ 같은 거라고 말하지 않았나. 여기에 작동되고 있는 것 역시 ‘자동화된 사고’다.
‘인문(人文)’이라는 말이나 그에 상응하는 영어 ‘휴머니티즈(humanities)’는 모두 ‘인간’이란 말을 사용하고 있다. 옛날에는 ‘인간’보다 못한 것을 ‘짐승’이라고 불렀지만, 오늘날 인간의 반대편에는 ‘기계’가 있다. 기계의 특징은 늘 이미 입력된 프로그램대로 ‘자동반응’ 하는 것이다. 개별 사태 변화에 따른 판단력과 실천의 부재는 곧 ‘기계적 판단’이고, 그것은 인간 고유의 도덕능력의 부재를 뜻할 수도 있다. ‘인문정신’을 줄기차게 내세운 정부에서 우리가 역설적이게도 일관되게 확인하는 것은 ‘인간 고유의 무늬’ 곧 ‘인문’의 부재다. 참혹한 심정으로 ‘기계 정부’라고 비판한다고 한들 쉽게 반론할 수 있겠는가.

함돈균 문학평론가 husaing@naver.com

[1299호 / 2015년 6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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