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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라기도-중

고통 속 ‘거짓 나’ 꿰뚫어 비로자나불과 공명하다

▲ ‘L’자 형태의 장궤합장으로 비로자나 법신진언을 부르짖는 일은 고통 또 고통이다. 3시간 같은 30분이 지나고 나서 장궤합장 푸는 순간 고통은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108번 엎드리고 일어났던 가야산이 멈춰 섰다. 적광전, 관음전, 고심원, 장경각, 좌선실, 정념당…. 해인사 백련암이 “옴 아비라 훔 캄 스바하” 법신진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108배·법신진언·능엄주 1독
3가지 수행 1품으로 총 24품
첫날 5품 이어 8·8·3품 정진

3박4일간 3200여배 참회절
새벽부터 밤까지 진언 염송
‘옴 아비라 훔 캄 스바하…’

발가락·무릎·허리 고통 극심
“등 기대고 눕는 순간 헛것”

윤흥근(61, 추운) 거사는 아비라기도가 힘들다. 이번이 세 번째 기도지만 극심한 고통을 이겨내기 어렵다. 성철 스님은 1년에 4번씩, 3년은 해야 틀이 잡힌다고 했다. 그러면 모래 위에 집을 지을 수도 있다고 했다. 그에게 늘 고비가 온다. 15분마다 자세가 흐트러졌다. 무릎 꿇고 ‘L’자 모양으로 허리 곧게 펴고, 힘을 줘 안쪽으로 말아 오므린 발가락에 실린 무게가 허리까지 통증을 가져왔다. 장궤합장으로 30분 동안 진언을 합송하는 일은 고통 그 자체였다. 주저앉고 싶은 마음이  솟았다. 유혹은 번뇌였다. 30분 뒤 사라지고 없을 그 고통이 불변의 실체이자 ‘참 나’로 느껴지면 쉬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자기라고 믿는 ‘거짓 나’에게 속아 넘어가고 있었다. “자신을 속이지 말라”는 성철 스님 일갈 ‘불기자심(不欺自心)’이 무색했다. 고통은 강렬했다.

아비라기도는 절과 진언합송, 능엄주 독송을 아우른 종합기도이자 수행이다. 예불대참회문을 따라 108배 참회를 한 뒤 장궤합장으로 30분 동안 법신진언을 합송한다. 합송 뒤엔 앉아서 능엄주를 1독 한다. 이렇게 1시간 동안 세 가지를 마쳐야 1품이 끝난다. 3박4일 동안 입재 당일 5품을 시작으로 8품, 8품, 3품 등 총 24품을 마쳐야 한다.

 
장궤합장으로 진언을 합송하는 것만 고통이 따르는 게 아니다. 입재날 새벽 300배는 시작이었다. 이후 3일간 사시예불마다 108배, 아비라기도 1품에 108배 등 다해서 3200여번의 절을 올려야 했다.

김상훈(40)씨 무릎에는 불이 붙었다. 타들어가는 무릎이 아예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도망치고 싶었다. 굳이 이런 고행을 할 필요가 없다는 마음까지 일자 진언은 사라지고 고통만 남았다. 고통 속에 갇혀 “옴 아비라 훔 캄 스바하, 옴 아비라 훔 캄 스바하, 옴 아비라 훔 캄 스바하…” 법신진언이 마음에서 멀어졌다. 놓치기 일쑤였고, 마음은 고통에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애써 외면하려던 시계 쪽으로 시선이 갔다. 한 번 시계를 보면 1분이 1시간처럼 더디 흘렀다. 법신진언 합송 때 오는 고통은 몸 받아 입과 마음, 알게 모르게 지은 업장이라고 했다. 통증으로 온몸이 뜨거워지면 화탕 지옥을 경험하면서 업장을 녹여낸다고 위로도 해봤다. 나무뿌리처럼 땅에 박힌 무릎은 끊임없이 고통만 빨아들였다.

법신진언이 빨라졌다. ‘옴 아비라 훔’은 강하고 절도 있는 소리였다. ‘캄 스바하’는 내뱉는 숨에 합송하고, ‘옴’에서 우주의 기운을 받아들인 뒤 ‘훔’에서 나쁜 기운을 뺀다. 그런데 진언이 빨라지더니 대중의 소리가 엇나기도 했다. 고통으로 쏠리는 마음을 진언으로 돌리고자 소리치는 악다구니였다. 구참자들은 이런 현상에서 남은 시간을 정확히 추측했다. 5분 전이었다.

▲ 고심원 아래 장경각서 정진 중인 거사 수행자들.

장경각 입승인 백련거사림 회장 윤영암 거사의 죽비소리는 반가웠다. 20분 휴식은 꿀맛이었다. 앉아 눈을 감거나 의자 등받이에 지친 몸을 기대기도 했다. 그러나 휴식에도 긴장의 끈 놓치면 끝이다. 윤 거사는 경책했다. “등 기대고 바닥에 눕는 순간, 이제껏 해온 기도는 말짱 도루묵이다.” 그랬다. ‘참 나’를 돌아보지 못하고 외부 자극에 끌려다니기만 하는 피동적 삶이 되기 십상이다. ‘참 나’와 행복한 삶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업과 탐욕의 노예를 면키 어렵다. 장경각에서 펴낸 ‘부처님을 찾아가는 길-해인사 편’에 기술된 ‘기도하는 마음가짐’은 그의 말을 부연하고 있었다.

“부처님 가르침대로 올바로 살아가고자 원을 세우고, 이를 성취하고자 자신의 잘못된 생각과 행동을 소멸하며, 법에 대한 믿음과 정진력을 키우는 것이 기도다. 그러나 무수한 세월 지어온 탐내고 분노하고 어리석은 죄업을 소멸하고 살아오면서 길들여진 삿된 가치관과 습관을 떨쳐내는 것이 쉽지 않다. (…중략…) 자신의 잘못된 현재 상황에 대한 인정과 참회,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고 실천하고자 하는 바른 의지 표현이 바로 기도다.”

윤 거사는 초심자들 고통을 눈치챘다. 아비라기도 셋째 날, 18품과 19품에 들어가기 전 수행자들을 독려했다.

“고통과 희열은 같이 온다. 그러나 우리는 고통만 느낀다. 고통은 신경작용에 의한 현상일 뿐이다. 주저앉지 마라. 몸이 아픈 거지 ‘참 나’가 아픈 게 아니다.”

구참자 이철영(61, 회영) 거사는 고통보다 땀이 신경 쓰였다. 아리아리한 무릎 고통 조복시킨지 오래다. 처음 아비라기도를 접한 뒤 희열보다는 고통에 대한 기억이 강해 2년간 참가하지 않았던 그였다. 이후 꾸준한 수행으로 ‘거짓 나’에 속지 않았지만 땀이 많았다. 초여름인데도 법당엔 불을 뗐다. 진땀이 흘렀다. 8만4000개 땀구멍이 모조리 아우성이었다.

▲ 어둠 속에서도 수행자들의 정진을 지켜보는 성철 스님.

법신진언이 가야산에 드리운 새벽어둠 밀어내고 저녁어둠 내려앉혔다. 어둠 속에서도 ‘가야산 호랑이’는 형형한 눈빛을 감추지 않았다. 성철 스님은 고심원에서 수행자들의 정진을 지켜보고 있었다.
가야산 해인사 백련암이 법신 비로자나불과 공명했다.

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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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뇌 이겨내는 극기심 키우는 자기 수행”

해인사 백련암 감원 원택 스님

 
성철 스님이 당부했던 아비라기도는 50년 가까이 계속되고 있다. 본당격인 해인사 백련암에서도 마찬가지다. 성철 스님 입적 후에도 여전하다. 해인사 백련암 감원 원택 스님에게 이유를 물었다.

“아비라기도를 하고 나가면 너무 고통스러워 다신 안온다고들 합니다. 한데 3개월마다 왜 오느냐고 물으면 좀이 쑤신다고 합니다. 대중기도의 힘이 세속 삶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는 말씀을 하시는데, 몸만 괴로웠으면 왜 다시 올까요?”

아비라기도가 ‘거짓 나’를 이겨내는 힘을 키운다고 했다. 우선 온갖 번뇌와 고통들과 싸우면서 ‘내가 이렇게 복잡한 사람이었구나’ 깨닫고, 버려야 한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이다. 온전히 자신을 들여다보는데 마음 기울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스스로 기도하고 절하고 참회하면서 마음을 청정하게 만든다고 했다. 고통스러운 순간에 일어나는 온갖 번뇌들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경험에서 번뇌는 ‘거짓 나’라는 점을 깨우치기도 한단다.

“번뇌망상은 억지로 막을 수 없지요. 108배, 법신진언 염송, 능엄주 독송 때도 마음은 사방대로 날뛰고 별의별 번뇌가 들어옵니다. 그럴 바엔 3박4일 집중적인 아비라기도로 번뇌를 이겨내는 극기심을 기르자는 성철 스님의 뜻이 담긴 셈입니다.”

아비라기도는 궁극적인 깨달음을 위한 과정이었다. 아비라기도로 얻는 힘이 바로 참선 잘하는 몸과 마음으로 가다듬어 가는 수행이었다. 108배, 법신진언, 능엄주 독송 등 마음을 한 곳으로 모아 몰입하면 화두 붙드는 힘이 생긴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몸에서 일어나는 고통의 번민들을 이겨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3000배는 2500, 2800배가 고비입니다. 죽겠다는 마음이 해보리라는 마음보다 강해 주저앉고 맙니다. 그래서 대중기도를 합니다. 도반들의 응원과 격려로 발심을 다잡아서 이겨내야 합니다. ‘거짓 나’에 속지 않는 것이 자기 기도와 수행의 첫발입니다.”

[1299호 / 2015년 6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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