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로에 선 과학-상

“불교와 과학의 공통점은 ‘절대적 존재’에 의문 갖는 것”

▲ 티베트의 수도 라싸의 전경. 포탈라궁에서 내려다 본 라싸는 불자들의 이상향인 만다라 형상을 하고 있어 그 장엄함을 더한다.

"불교와 과학 모두는 우주 및 생명의 진화, 발생을 원인과 결과라는 자연 법칙의 복잡한 상호관계에 의해 설명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방법론적 측면에서 보면 양쪽 모두 경험주의의 역할을 강조해 왔습니다."

지난 수십년 동안 인간의 두뇌와 신체를 하나의 전체로 인식하는 과학적 이해에 있어서 엄청난 진보가 확인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유전학의 출현과 더불어 생물학적 유기체의 작용에 대한 신경과학의 지식은 이제 개별 유전자의 매우 세밀한 수준에까지 이르렀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바로 그 생명체의 유전 코드를 조작할 수 있는, 예측하지 못한 기술적인 가능성을 초래했습니다. 그럼으로써 인류 전체에 완전히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가능성을 낳았습니다. 오늘날 더 넓은 인간 영역과 과학의 접촉에 관한 문제는 더 이상, 단지 학문적 관심 사항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인간 존재의 운명에 대해 관심을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 이 질문은 절박성을 갖게 합니다. 그래서 신경과학과 사회 간의 대화는 깊은 유익함을 가져올 수 있다고 느낍니다. 이는 인간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다른 생명체와 공유하고 있는 자연계에 대한 우리의 책임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를 깊게 해주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측면에서 “그렇다”라고 답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확대된 접촉의 일환으로써 일부 신경과학자들 사이에서 불교적 명상 수련과의 깊은 대화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관심이 증대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기쁩니다.

비록 티베트에서 성장하던, 가만히 있지 못하는 어린 소년의 호기심에서 ‘나’ 자신의 과학에 대한 흥미는 비롯되었지만 점차로 현대 세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과학이 엄청나게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구체적인 과학적 사실들을 이해하는 것 뿐만 아니라 과학이 가져온 인간의 지식과 기술력의 새로운 진보가 갖는 광범위한 영향에 대한 탐구를 시도하는 것도 추구했습니다.

수년 동안 주로 탐구한 과학 분야는 아원자(亞原子) 물리학, 우주론, 생물학 그리고, 심리학 등이 있습니다. 이 분야에 대해 비록 제한적으로 이해하고 있지만 저의 이해는 칼 폰 바이츠제커(Carl von Weizsacker)와 고(故) 데이비드 봄(David Bohm)이 할애해 준 넉넉한 시간에 큰 빚을 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양자 역학에 대해 저의 스승이 되어 주었습니다.

생물학, 특히 신경과학에 있어서는 고(故) 로버트 리빙스턴(Robert Living stone)과 프란시스코 바렐라(Francisco Varela)가 그 역할을 해 주었습니다. 저는 ‘마음과 삶 연구소(Mind and Life Institute)’의 후원을 통해 수많은 저명한 과학자들과 대화할 수 있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그 과학자들에게도 또한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 연구소는 제가 머무르고 있는 인도 다람살라에서 1987년 ‘마음과 삶’이란 주제로 콘퍼런스를 시작했습니다. 이런 대화는 수년 동안 계속되었고 최근의 마음과 삶 대화는 이곳 워싱턴에서 끝을 맺었습니다.

혹자는 의아해 할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질문을 던질 것입니다.

“불교 승려가 과학에 대해 그런 깊은 관심을 갖다니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 고대 인도의 철학적, 정신적 문화 전통인 불교와 현대과학 사이에 대체 무슨 관련이 있는가? 신경과학과  같은 특정 과학분야가 불교의 명상 문화와 대화를 한다고 해서 무슨 이로움이 있을 수 있겠는가?”

불교의 명상 전통과 현대과학은 서로 다른 역사적, 지적 그리고, 문화적 뿌리에서 발달되어왔습니다. 그렇지만 근본에 있어서 그들은, 특히 기본적인 철학관 및 방법론에 있어서 중대한 공통성을 공유하고 있다고 봅니다. 철학적 측면에서 보면 비록 초월자로, 영혼과 같은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근본 요소로, 또는 존재의 궁극적 구성 요소 등으로 개념화 되었을지라도, 불교와 현대과학 모두 어떤 종류이든 ‘절대적인 것’이라는 관념에 대해서 깊이 의문을 제기합니다. 불교와 과학 모두는 우주 및 생명의 진화, 발생을 원인과 결과라는 자연 법칙의 복잡한 상호관계에 의해서 설명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방법론적 측면에서 보면 양쪽 모두 경험주의의 역할을 강조해 왔습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불교의 조사 및 연구적 전통에서는 지식의 세 가지 원천으로 경험과 추론, 증언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경험적 증거가 우선되고 추론이 그 다음이고 증언이 마지막 단계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는 실상에 대한 추구에 있어서 불교는 최소한, 원칙적으로는 아무리 경전이 숭배되어도 경험적 증거가 그 경전의 권위를 능가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논리나 추론을 통해 얻어진 지식일지라도 그 지식의 유효성은 궁극적으로는 경험에 의해 관찰된 사실들에 근거합니다. 이런 방법론적인 견지 때문에 경험적으로 검증된 현대 우주론과 천문학의 통찰력이 고대 불교경전에 주장되는 전통적인 우주론의 여러 사실들을 수정하거나 경우에 따라서 거부하도록 우리를 몰아붙여야 한다고 불자 도반들에게 종종 말하곤 합니다.

실상에 대한 불교적 궁구(窮究) 저변에 깔려있는 일차적 동기는 고통을 극복하고 인간의 상태를 온전히 하고자 하는 근본적인 추구이기 때문에 불교의 탐구적 경향의 기본 방향은 인간의 마음과 그 마음의 여러 작용을 이해하는 곳으로 향해 있었습니다. 인간 심리에 대해 보다 깊은 통찰을 함으로써 우리의 사고와 감정 그리고, 그 밑에 놓여있는 근본적인 성향을 변화시키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좀 더 건전하게 성취하는 존재 방식을 찾아낼 수 있다고 가정하고 있습니다.

불교가 심리 상태를 세밀히 분류하고, 특정 심리 특질을 연마하는 명상 기술을 고안해 낸 것은 이런 맥락에서였습니다. 마음과 관련된 광범위한 이슈에 대해 불교 및 과학이 축적한 지식과 경험을 실질적으로 서로 교류하는 것은 심히 흥미롭고 또한 잠재적으로 유익합니다. 그 이슈의 범위는 인식 작용과 감정 그리고, 변화를 수용하는 선천적 능력의 이해를 포함합니다. 긍정적 감정과 부정적 감정의 속성과 역할, 주의 집중, 형상화 그리고, 두뇌의 가소성 등과 같은 주제에 대한 신경과학자 및 심리학자와의 대화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저는 깊이 풍부해졌다고 느꼈습니다. 생후 최초 몇 주간의 단순한 신체적 접촉이 유아 뇌의 신체적 성장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신경과학 및 의학계의 강력한 증거는 자비와 인간 행복의 밀접한 관계를 절실히 느끼게 합니다.

내재된 심리 변혁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 불교는 오랫동안 옹호해 왔습니다. 이 때문에 불교는 다양한 사유 기법 또는 명상 수행법을 발달시켜 왔습니다. 그것은 특히 자비심의 함양과 존재의 본질에 대한 통찰력 연마라는 두 가지 목적을 목표로 했고, 이는 자비와 지혜의 합일이라고 일컬어집니다. 이런 명상 수련의 핵심에는 두 가지 중요한 기술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 첫 째는 주의 집중의 고도화 및 이의 일관된 유지 그리고, 다른 하나는 감정의 통제와 승화입니다. 이 두 가지 경우 불교명상 전통과 신경과학의 공동연구에 관한 잠재력이 매우 큽니다. 예를 들면 현대 신경과학은 주의 집중 및 감정에 관한 뇌의 메커니즘에 대해 폭넓은 이해를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정신 수련에 오랫동안 관심을 기울여온 불교의 명상 전통은 ‘주의 집중 수련’과 ‘감정의 통제 및 승화’를 위한 실용 기법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대 신경과학과 불교명상 수련법의 만남은 의지적 정신 활동이 뇌 회로에 주는 영향에 대해 연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줍니다. 뇌 회로는 세부 심리작용 과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최소한 학제간의 접촉은 많은 중요 영역에 결정적인 의문을 제기하도록 도와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개인들은 자신의 감정과 주의를 통제하는 데 고정된 역량만을 가지고 있는가, 아니면 불교가 주장하듯이 △이런 통제 작용과 관련해서 행동 체계 및 뇌 체계가 보여주는 뛰어난 적응력과 유사한 수준으로 그 능력도 변화에 상응해서 매우 수용적인가 등 자비심 함양을 위해 발달시켜온 실용 기법은 불교의 명상 전통이 중요하게 기여할 수 있는 분야입니다.

위 글은 2005년 11월12일 미국 워싱턴 DC에서 개최된 ‘신경과학학회 연차 총회’에서 달라이라마가 설한 법문입니다. 저작권 ‘2005 마음과 삶 연구소’, 미국 콜로라도주.

<출처=달라이라마오피스 홈페이지>
번역=백영일 번역전문위원


[1300호 / 2015년 7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 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