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설법 배경
11. 설법 배경
  • 이제열
  • 승인 2015.06.30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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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느끼는 인간계가 경전 설할 최적의 장소

▲ 광복호국선사 소장 아미타팔대보살도.

앞서 대승경전의 여시아문에 대한 배경을 설명하고 왜 대승경전을 불설로 인정해야하는지 밝혔다. 다음은 아미타경의 설법배경에 관한 설명이다. 대승불교에서 법회가 열리기 위해서는 세 가지 요건들을 충족해야 한다. 불교용어로 삼화(三化))라고 하는데 삼화는 능화(能化)·소화(所化)·화처(化處)로 능화는 설법의 주체이신 부처님, 소화는 설법을 들을 중생, 화처는 설법이 행해지는 장소를 의미한다. 이런 측면에서 아미타경의 능화는 부처님이며 소화는 장로 수보리를 비롯한 비구들과 대보살 및 천인들이며 화처는 기원정사이다.

부처님 설법 이뤄진 장소는
인간계·천상계·자내증의 세계
경전은 중생의 근기에 따라
시간과 장소를 정해 이뤄져

어느 경전이든 시작부분에는 여시아문에 이어 항상 일시(一時) 라는 말로 설법한 시간을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그 시간은 아침이나 저녁처럼 구체적인 시간이 아니라 그냥 뭉뚱그려 ‘한때’라고 표현한다. 이는 아마 경전을 편찬하는데 있어 구체적인 시간까지 표현할 경우 구성이 매끄럽지 못할 것이라고 여긴 이유도 있을 것이고 한편으로 부처님은 늘 쉬지 않고 법을 설하고 계신 분이라 뚜렷한 시간을 표시하기가 어려워서였을 것이다. 사실 대승불교 입장에서 부처님의 설법은 과거현재미래에 걸쳐 항상 하며 세상 어느 곳에서나 행해지고 있기 때문에 시간은 의미가 없다. 부처님의 설법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세상에 계시건 계시지 않건 이미 세상에 설해졌으며 지금도 설해지고 있고 미래에도 끝없이 설해질 것이라고 대승불교는 설명하고 있다.

본래 부처님의 깨달음 입장에서 본다면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부처님이 성취한 깨달음은 과거현재미래와 같은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나 있다. 불교의 관점에서 시간은 중생의식(意識)이 만든 허구이다. 즉 중생들의 마음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꺼짐으로  인해 마치 시간이 실재하여 흐르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간은 마음밖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안에 존재하는 것이며 그 시간은 모든 중생에 따라 각기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부처님 말씀에 따르면 인간계의 백년이 장수천에서는 하루이며 인간계에서의 백년이 지옥에서는 하루라는 가르침이 있다. 이는 시간은 고정적인 것이 아니며 중생의 업을 따라 각기 다르게 나타난다는 의미다. 만약 시간이 중생의 마음 밖에 존재한다면 중생은 시간을 인식할 수 없게 된다. 바로 여기에 근거해 부처님의 경지에서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깨달음에는 일체의 의식의 흐름은 존재하지 않기에 시간 또한 발생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경전의 한 때라는 시간은 부처님 입장에서 말하는 것이 아닌 중생의 입장에서 시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은 이 아미타경을 설하신 부처님에 관한 부분이다. 불교에 있어 모든 경전은 당연히 석가모니 부처님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간혹 제자들의 가르침이나 부처님의 가르침에 버금가는 사람들의 말도 경전에 들어 있지만 이것 역시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에 근거한 내용들이다. 이 점은 아미타경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장소가 기원정사라면 당연히 아미타경의 부처님은 석가모니 부처님이다. 별개의 얘기지만 대승불교의 가르침을 깊게 살펴보면 간혹 모든 설법의 주체가 석가모니 부처님이 아닌 경우도 있다. 어떤 경전은 부처님이 등장하지만 석가모니 부처님의 분위기가 거의 나지 않는다. 어쩌면 다른 부처님에 의해 경전이 설해지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 예로 원각경·해심밀경·능가경·밀엄경 같은 경전들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연상시키는 내용이 발견되지 않는다. 대승불교에서는 모든 가르침의 연원을 석가모니 부처님에게 두지만 법을 설하는 인물이 반드시 석가모니 부처님일 필요는 없다고 여긴다. 누구든지 진리와 하나 되어 완전한 깨달음을 얻고 경전을 편찬하였다면 이는 곧 불설이다. 따라서 석가모니 부처님의 말씀인지 아닌지에 대한 시비는 무용하다. 핵심은 깨달음에 있지 석가모니라는 한 인물에 있지 않다고 보는 것이 대승불교에서의 불(佛)이다.

다음은 설법한 장소에 대해서이다. 아미타경은 역시 많은 경전들처럼 기원정사에서 행해진다. 기원정사는 부처님 일생 가운데에 가장 오랫동안 머무르며 법이 설해지던 장소이다. 부호 수닷타 장자의 신심에 의해 세워진 기원정사에서 부처님은 25년을 지내시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베푸셨다.

부처님의 설법에 따라 법이 설해지는 장소도 다르겠지만 대개 부처님이 설법한 장소는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그 하나는 우리가 사는 인간계이고 또 하나는 인간계보다 차원이 월등한 천상계이며 마지막 하나는 인간도 천상도 아닌 부처님의 자내증(自內證)의 세계, 즉 부처님이 스스로 증득하신 깨달음의 자리이다. 당연히 아미타경은 기원정사에서 가르침을 설하였으므로 인간계에서 설하신 말씀이다. 만약 아미타경이 인간계가 아닌 천상계나 자내증의 세계에서 설해졌다면 어떠했을까? 아마 경전내용과 전혀 합치되지 않았을 것이다. 아미타경 설법에 천인들이 모여들었다고는 하지만 즐거움만 있고 괴로움이 없는 천인들에게 극락이야기 해본들 무슨 설득력 있겠으며 부처님의 자내증 속에서 혼자 설하시고 들을 수 있겠는가? 아미타경을 비롯한 정토경이 설해질 수 있는 최적의 장소는 인간계이다. 고통과 좌절로 점철되고 죽음을 당하며 내세의 안락을 바라는 이곳이 정토경을 설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인 것이다.

유마경에 보면 보살은 교화 받을 중생을 따라 정토를 취한다고 하였듯 부처님 설법 또한 제도 받을 중생의 근기에 맞춰 시기를 선택하고 장소를 선택한다. 시공의 개념이 끊어진 절대경지에서 한 때를 정하고 기원정사라는 장소를 통해 경전을 설하는 것이 모두 부처님의 교화방편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제열 불교경전연구원장 yoomalee@hanmail.net


[1300호 / 2015년 7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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