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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계가 양성평등에 앞장서야 하는 이유

지난 6월23~30일 인도네시아 욕자카르타에서는 제14회 샤카디타(Sakyadhita)국제컨퍼런스가 열렸다. ‘자비와 사회적 정의’를 주제로 열린 이 대회에는 전 세계 40개국 1000여 명의 여성불자들이 참석했다. 우리나라에서도 50여 명의 비구니 스님과 여성불자들이 이 대회에 참석해 세계 여성불자들과의 교류에 힘을 기울였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 대한 불교계의 관심은 전무하다해도 과언이 아닌듯해 안타까운 심정을 감출 수 없다.

오늘날 여성불자나 수행자들을 주축으로 구성된 단체의 활동은 다방면에 걸쳐 다양한 목적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그 활동의 성과 또한 남성불자나 비구 스님의 그것에 견주어 크게 뒤지지 않는다 할 수 있다. 오히려 복지 등 일부 분야에서는 비구니 스님들의 활약이 비구 스님들의 성과를 넘어서고 있음을 심심치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비구니, 좀 더 나아가 여성 수행자나 종교인에 대한 폄하와 불평등은 어느 종교에서나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또 하나의 모순이기도 하다.

여성의 정체성에 대한 인식의 문제는 오랜 세월동안 시대와 장소, 그리고 상황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되고 이해되어 온 인류 공통의 이슈 가운데 하나다. 간혹 이러한 문제는 유토피아로 통칭되는 이상향의 성격을 규정하는 조건과도 연관돼 다루어지기도 했다. 유토피아에 대한 담론에서 빠질 수 없는 부분이 양성평등에 관한 문제였다는 점이 이 같은 현상을 확인시켜준다.

근대에 접어들어서도 이 문제는 변화와 개혁의 중요한 과제로 인식됐다. 중국의 근대를 대표하는 정치가이자 사상가인 강유위(康有爲. 1858~1927)는 자신의 저서 ‘대동서’에서 중국 사회에 만연해 있는 여성억압에 대해 지적하며 “오랜 세월 동안 현인과 성인, 그리고 철인들이 끊이지 않고 나와서 법을 세우고 이론을 창시했지만 여성들에 대한 부당하고 그릇된 일이 계속해서 이어져 내려왔으며 고등종교라고 하는 불교, 기독교, 유교, 브라만교, 이슬람교 등의 종교가 남자를 중시하고 여자를 경시하고 억압하던 풍속이 이어져왔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강유위는 “여성해방을 통한 남녀평등이 유토피아에 대한 관건”이라고 주장했다.

남녀불평등의 원인을 전적으로 종교에게만 덮어씌우는 것은 다소 침소봉대라는 지적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남녀를 차별했던 당시의 사회적 상황이 이러한 지적을 불러왔음은 분명하다. 물론 이는 중국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었다.

‘숫타니파타’의 ‘천한 사람의 경[Vasala-sutt]’에서 붓다는 “천한 사람을 만드는 것을 알 수 있도록 가르침을 설해달라”는 바라문의 청에 천한 사람이 되는 행위의 구체적인 형태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한다. 붓다는 “출생에 의해 천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오. 행위에 의해 천한 사람이 되고 행위에 의해 브라흐만이 되는 것이오”라고 정의한다. 붓다가 예로 든 기준의 어디에도 태생, 그것도 성별에 의한 차별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불설은 이후 부파시대를 거쳐 대승의 출현과 동양으로 전래 등 여러 주변 요소와 만나며 다양한 해석으로 변화하지만 그것이 남녀 차별의 근거가 될 수는 없을 터이다.

무엇보다 주지해야할 점은 하나의 근본이 되는 원리라 해도 시대와 장소 그리고 상황에 따라서 변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에밀 뒤르껭은 “한 민족이나 국가가 지상에서 사라지면 그 민족이나 국가의 정체성이자 신앙의 대상인 신이나 종교도 역사 속에서 사라진다”고 했다. ‘변화’는 공동체의 위기나 새로운 질서의 도래와 함께 진행되어왔다. 여기에 순응하기 위해 바뀌어 온 규율은 원형적인 것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른 것과 그른 것의 차이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고등종교의 태도일 것이다.

시기적절한 변화는 조화를 도출해 내고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만족감을 줄 수 있다. 양성평등은 모든 분야에서 실현돼야 할 과제이지만 이상세계를 지향하는 종교계에서 선도하고 선행해야 할 문제임이 분명하다.

장재진 동명대 교수 sira113@naver.com

[1301호 / 2015년 7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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