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래라는 것은 제법의 여여한 의미[br]마음 자체와 모든 존재가 본래 진여
여래라는 것은 제법의 여여한 의미[br]마음 자체와 모든 존재가 본래 진여
  • 박상준 원장
  • 승인 2015.07.07 11: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몸이 이루어지자 망상이 영욕과 근심과 기쁨과 호오와 희노애락과 질병과 재앙으로 흘러다니고 생사가 교대로 뒤바뀌는 데에까지 흐르면서 갖가지로 변화를 일으켜 본성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된다. 이것은 자체는 본래 진여인데 지금은 여여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초목과 미세한 먼지까지
모습가진 모든 것이 진여
생사윤회를 벗어나는데
뜻을 두면 응당 여여해야


이 때문에 선사께서 본래 지니고 있는 것에 의지해 인도해주면서 “그대는 마땅히 진여이어야 한다”고 하면서 자를 응여(應如)라고 지어준 것이다. 이 뜻을 말해보자면 본래는 자체가 진여인데 지금 현재는 진여가 아니라는 것이다. 본래 지니고 있는 것을 회복하고자 한다면 꼭 밖에서 구할 필요가 없으니, 다만 여여하게 되면 될 뿐이다. 진실로 본래의 진여대로 여여하게 된다면 다시 무슨 진여가 따로 있겠는가. 이를 통해서 우리가 성인이 되고 범부가 되는 것은 간격이 없음을 알 수 있으니 다만 미혹한 상태인가 깨달은 상태인가 하는 것과 여여한가 여여하지 못한가 하는 사이에 간격이 있을 뿐이다. 여여하지 못하면 범부이고 여여하면 성인이다.

반야경에서 말하기를 “이른바 여래라고 하는 것은 제법의 여여한 의미이다”라고 하였다. 이를 통해서 관해보면 마음 자체가 본래 진여일 뿐만 아니라 모든 존재가 그러하다. 가까이로 몸에서 취해보면 사대와 육근이 진여이고 미세하게 분석해보면 36가지 물건이 안에 있든 밖에 있든 모두 진여이다.[36가지 물건은 감각기관인 6근에 인식대상으로 들어오는 6경을 곱해서 36이라고 한 것이니 사실은 우주 전체이다. 역자주]

멀리 모든 천지만물에서 취해보면 산하대지와 어류·패류·날짐승·길짐승과 초목과 미세한 티끌 먼지까지와 끝까지 추구해보면 세상에 모습을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다 진여 아닌 것이 없다. 그러므로 “푸르고 푸른 비취빛 대나무가 모두 진여이고 울울하게 핀 황화가 반야 아닌 것이 없다”고 말한 것이다. 이 관점을 가지고 관해보면 모든 존재가 본래 여여한 것이다. 모든 존재가 여여하다면 또 무엇 때문에 좋다 나쁘다 하는 생각이 감정에 부딪혀서 취사선택을 하면서 생사윤회의 업에 붙들려서 장애를 받겠는가. 이른바 “만 가지 대상경계가 본래 한가로운데 사람들 제 스스로 시끄럽게 미쳐 돌아간다”고 하는 것이다.

만약에 사람이 만물을 운전할 수 있으면 여래와 같아지고 만물을 운전할 수 있게 되면 마음과 경계가 모두 여여해진다. 그리하여 만물과 나를 모두 잊어버려서 성인과 범부가 평등해진다. 생사윤회가 오락가락하는 것이 꿈같고 허깨비 같은 것이니 우리의 신령스럽게 알아차리는 본체와 무슨 교섭관계가 있으리오. 이 때문에 우리가 생사윤회를 벗어나는데 뜻을 둔다면 응당 여여하게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응여라고 한 것이니 그대는 마음에 새길지어다.

하생의 희유라는 자 이야기
하생(何生)의 자는 희유(希有)이다. 돈독하게 도를 지향한다는 뜻이다. 사람이 도를 지향하는 것은 실로 희유한 일이다. 만약에 진짜로 도를 볼 수 있다면 더더욱 희유한 것이다. 내가 일찍이 ‘금강경’을 읽었다. 공생(空生)이 세존을 찬탄하면서 “희유하십니다” 한 대목에 이르러[공생은 공의 이치를 가장 훌륭하게 이해한 수보리존자이다. 역자주] 나는 크게 의심이 일어났다. 찬탄하기 이전의 내용을 검토해보니 뭐 크게 기특한 말도 없고 현묘한 말도 없었다. 그저 세존께서 가사를 수하시고 발우를 들고 탁발을 한 다음 공양을 하고 경행을 마치고 발을 씻고 자리에 앉으셨을 뿐이다.

그러니 특별하게 기특한 것이 없는데 공생은 무엇을 보았길래 이와 같이 찬탄을 한 것일까. 이 말은 천년을 위아래로 보아도 불조의 주해가 꿰뚫지 못한 것인데 홀연히 공생에게 세존의 행리처가 간파를 당한 것이다. 나는 모르는 결에 아 소리도 내지 못하였다.

하생의 자가 희유이다. 과연 무엇을 보았길래 희유한 것인가.

박상준 고전연구실 ‘뿌리와 꽃’ 원장 kibasan@hanmail.net

[1301호 / 2015년 7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 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