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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법공

기자명 서광 스님

현상과 현상 사이에 걸림이 없는 방편적 지혜

“수보리야, 만약 어떤 선한 사람이 항하강의 모래숫자 만큼 많은 목숨을 보시한다고 해도, 이 경의 몇 구절을 마음에 새겨서 다른 사람을 위해서 가르쳐주는 복이 더 많으니라. 이때 수보리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깊이 그 뜻을 깨달아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경이로우십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지금까지 얻은 혜안으로는 이처럼 깊이 있는 가르침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어떤 사람이 이 경을 듣고 믿음이 청정해져서 곧바로 실상(實相, 궁극적 지혜)이 생겨난다면 그 사람은 가장 경이로운 공덕을 성취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실상은 실상이 아니기 때문에 실상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지금 이 같은 말씀을 듣고 믿고 이해하고 마음에 새기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오백년이 지난 미래에도 어떤 중생이 이 경의 가르침을 듣고 믿고 이해해서 마음에 간직한다면 그 사람은 참으로 경이로운 사람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없기 때문이며, 모든 상을 떠난 사람을 우리는 부처님이라 부르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그러하다. 수보리야! 또한 만약 어떤 사람이 이 경을 듣고 놀래거나 겁내지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는다면 그 사람은 정말로 경이로운 자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여래가 설한 최고의 바라밀은 최고의 바라밀이 아니라 그 이름이 최고의 바라밀이기 때문이다.”

수보리 최고 아라한이었지만
법이 공하다는 가르침은 몰라
부처님 법공 가르침 들은 뒤
현상도 실체가 없음 깨달아

위에서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면서 부처님을 찬탄하는 장면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부처님의 어떤 가르침이 수보리 존자를 그토록 감격스럽게 했을까? 수보리 존자는 지금껏 이렇게 깊은 가르침은 배운 적이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전에 배웠던 가르침은 무엇이며, 이 ‘금강경’에서 새롭게 배운 것은 무엇인가? 이전에 배운 것은 아공(我空), 즉 인무아(人無我)고 새롭게 배운 것은 법공(法空), 법무아(法無我)다.

수보리 존자는 이미 부처님으로부터 욕망을 떠나 다툼이 없는 삼매(무쟁삼매)를 얻은 사람 가운데 제일 가는 아라한으로 인정받았다. 이는 수보리 존자에게서는 자아의식이 작용하지 않기 때문에 욕심이 없고, 중생의 번뇌를 자극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러나 수보리 존자는 ‘나’라고 하는 정신·신체적 존재가 영원하지도 않고 절대적인 실체가 아니라 온갖 인연화합물이라는 사실(我空)을 깨달았을 뿐이다. 아직 현상 또한 영원하지 않고 절대적인 실체가 아니라는 사실(法空)을 깨닫지는 못했다. 그래서 자아는 공(空)하지만 법(法)이 공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여전히 절대적이고 영원한 진리, 진여, 깨달음의 세계를 추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공에 대한 깨달음은 자신과 타인의 번뇌장(정서장애)을 제거하지만, 소지장(인지장애)은 법공을 깨달아야만 제거되기 때문에 아공을 깨친 것만으로는 궁극적 지혜라고 부르지 않는다. 아공은 본질과 현상 사이에 걸림이 없는 지혜를 얻게 하고(理事無碍智), 법공은 다른 사람들의 깨달음을 돕는 현상과 현상 사이에 걸림이 없는 방편적 지혜(事事無碍智)를 얻게 한다. 그러니까 수보리는 지금까지 자아로부터는 해방되었지만(아공), 타자, 즉 자아 이외의 현상으로부터는 자유롭지 못하다가, 현상 또한 실체가 없다(법공)는 가르침을 듣고 감격의 눈물을 흘린 것이다.

부처님으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으면서 수행을 해 온 수보리 존자 자신도 이제야 자아와 현상의 무아를 깨우쳤는데, 오늘날 우리들 가운데 이 ‘금강경’의 가르침을 듣고 놀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깊이 이해하고 깨닫는 사람이 있다면 어찌 놀랍고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있겠는가? 그 사람은 필시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없어서 ‘금강경’의 핵심 가르침인 아공과 법공을 깨달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그러한 사람을 바로 부처님이라 부른다고 말씀하신다.

서광 스님 한국명상심리상담연구원장 seogwang1@hanmail.net

[1301호 / 2015년 7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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