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5. 아공과 법공

기자명 서광 스님

부처님은 어떻게 최고 의사가 될 수 있었을까

우리는 지난 호에서 아공(我空), 법공(法空), 이사무애(理事無碍), 사사무애(事事無碍), 번뇌장(煩惱障), 소지장(所知障) 등 상당히 전문적인 불교용어와 함께 정서장애, 인지장애 등의 심리학 용어를 많이 접했다. 그래서 보다 명료한 이해를 위해서 약간의 부수적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까 여겨진다.

부처님은 온갖 병 고치는 의왕
치료자로서 늘 무아 입장 견지
마음의 병은 실체 없는 구성물
아공과 법공 성취했기에 가능

부처님은 중생을 구제하는 모습에 따라서 다양한 호칭을 가지고 계신다. 그 가운데 의왕(醫王)이라는 이름도 있는데, 이는 마음의 병을 고치는 최고의 의사라는 의미다. 마음의 병이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거의 모든 병의 원인이고, 가장 고치기 힘든 병이라는 사실은 우리 모두가 익히 알고 있다. 특히 요즘은 의과대학에서도 정신과 분야가 인기가 많고 경쟁력이 높다고 한다. 어쨌든 우리는 어떤 정신치료사를 최고의 치료사라고 생각할까? 당연히 가장 지혜롭고 자비로운 치료사를 가리킬 것이다.

최근의 한 연구에 의하면, 경험이 풍부한 임상 전문가들에게, 지혜롭고 자비로운 치료자가 되는 데 가장 큰 장애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부분의 치료사들이 ‘나’ 자신이라고 응답했다고 한다. 이는 치료자 자신이 효과적인 치료에 가장 큰 장애가 된다는 의미로도 이해될 수 있다. 한마디로 내담자와의 관계에서 자기의 견해, 편견 등의 오염된 색안경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비우고(아공) 무아의 눈으로, 있는 그대로의 내담자를 바라보는 일은(법공) 치료자들에게는 무척 어려운 일인데, 그 원인은 바로 치료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아집과 법집 때문이라는 것이다.

만일 우울증을 호소하는 내담자를 향해서, 치료자가 무아의 태도를 견지할 수 있다면(아공), 치료자는 자신의 편견을 넘어서서 내담자의 본성(불성)과 우울증(현상)을 분리해서 보는 데 큰 어려움(이사무애)을 겪지 않을 것이다. 또 만일 치료자가 우울증이나 불안증, 불면증 등 갖가지 심리현상들이 본질적으로 비어 있음(법공)을 안다면, 그러한 증상들 간의 차이뿐 만이 아니라, 내담자와 치료자 사이에도 본질적으로는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사사무애). 결국 무아를 체득한 치료사라면, 우울증이라는 정신현상도 우리의 자아와 마찬가지로 실체가 없이 다양한 조건들(불면증, 자살충동, 무기력…)로 짜여진 구성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우울증에 대한 어떤 고정된 관념도 갖지 않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제 왜 부처님 앞에서는 우울, 불안, 질투, 미움 등 갖가지 정서적인 장애(번뇌장)와 그릇된 신념, 사고 등의 인지적 장애(소지장)를 가진 사람들의 마음병이 봄눈이 녹듯이 녹아내릴 수 있었는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부처님은 아공(인무아)과 법공(법무아)을 성취하셨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그것 또한 이름일 뿐, 실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시고 아(我)와 무아를 초월하셨기 때문에 판단이나 분석, 진단하려는 태도나 그들의 병을 치료하겠다는 의도가 없었다. 또한 고통 자체를 부정하지 않고 그 모습 그대로 수용하고 공감함으로써 진정한 지혜와 자비의 모습으로 드러났던 것이다.

그러므로 의왕으로서 부처님의 치료행위는 있지만 치료한다는 생각이 없고, 치료행위가 부처님 자신에 의해서 비롯된다는 인식이 없으며, 그냥 상황이나 그 순간의 필요에 의해서 자연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유식에서 말하는 부처님이 성취하신 4가지 지혜 가운데 하나인 성소작지(成所作智), 즉 처한 조건과 상황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행위다. 그야말로 치료하는 자(아공, 인무아)와 치료받는 자(법공, 법무아)가 없이, 오직 치료만 있는(眞我)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왜 40년 동안이나 가르침을 펴시고도 단 하나의 법도 설하신 적이 없다고 하신 것이 아닌가 짐작해 본다.

서광 스님 한국명상심리상담연구원장 seogwang1@hanmail.net

[1302호 / 2015년 7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 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