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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기관의 불법사찰 악몽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이 있다. 이 말에는 과학적 지식이 숨어있다. 소리는 온도에 민감해서 낮에는 위로 올라가고 저녁에는 밑으로 내려온다고 한다. 옛 조상들이 이런 과학적 지식을 알고 속담을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어찌됐든 “말조심해야 한다”는 인생의 큰 교훈 하나는 후손들에게 던져 준 셈이다.

혈세로 해킹 프로그램 구입해
불법적으로 국민 도감청 의혹

2010년엔 불교계도 불법사찰
감시 사실이라면 추악한 범죄

최근 이 속담이 주목을 받고 있다. 국정원이 이탈리아의 해킹업체로부터 불법 도감청 프로그램을 들여와 국민들을 감시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국민들의 불안이 증폭되고 있다. 국정원은 2012년부터 2015년까지 6차례에 걸쳐 국민의 혈세를 들여 프로그램을 구입했다. 이병호 국정원장은 문제가 심각해지자 국회에 출석해 해외 북한 공작원 감청을 위해 구입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정원이 들여온 해킹 프로그램은 국민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삼성핸드폰을 해킹하고 모바일 백신을 무력화시키는 방법들이다. 특히 국민의 대다수가 사용하는 카카오톡에 대한 해킹이 포함됐다. 국정원의 해명과 달리 감시대상이 우리 국민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해킹 프로그램 도입 시기도 논란거리다. 대통령 선거가 이뤄졌던 2012년 1월과 7월에 해당 프로그램을 구입했고 지방선거가 있었던 2014년 6월에도 국민들이 가장 많이 쓰는 안드로이드 폰을 공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요구했다. 국정원이 정권의 사설정보업체를 자임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불교계는 정부의 불법사찰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지난 2008년 장로인 이명박 대통령의 종교편향에 항의해 20만 불자들이 모여 서울시청에서 범불교대회를 개최한 적이 있다. 이명박 정부의 종교편향을 규탄하고 장로가 아닌 국민의 대통령으로 돌아가라고 외쳤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유감’의 뜻을 밝혔다. 그러나 그로부터 2년 뒤 불교계는 이 대통령의 뒤끝을 확인해야 했다. 2010년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불법사찰 재수사 과정에서 당시 총무원장 지관 스님과 종회의장, 상임분과위원 스님들을 대거 불법 사찰한 증거가 드러난 것이다.

국정원은 국익과 안보를 위해 해킹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국정원의 과거는 자랑보다는 낯 뜨거움으로 가득하다. 2011년 호텔방에 들어가 방한한 인도네시아 특사단 컴퓨터를 열어보다 들켜 망신을 당하기도하고, 2012년 대선 당시에는 댓글조작으로 선거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나 당시 국정원장이 감옥에 수감된 상태다.

컴퓨터와 핸드폰에는 개인의 사생활이 모두 들어있다. 해킹프로그램을 통해 이를 들여다보고 심지어 조작까지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등골이 오싹하다. 과거 암울한 시절 우리는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교훈처럼 듣고 살았다. 술 한 잔 걸치고 내뱉은 푸념마저도 정부의 비위에 거슬리면 멀쩡한 사람이 간첩으로 둔갑하고 불순분자로 몰리기도 했다. 이제는 우리도 민주주의를 일궈냈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과거 군부독재보다 더욱 무서운 세상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든다. 과거는 말만 삼가면 됐지만 해킹프로그램의 등장으로 이제는 숨 쉬는 것까지도 조심해야 한다.

▲ 김형규 부장
국정원은 최근 해킹프로그램 사용내역을 전부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신뢰가 가지 않는다. 국정원은 그동안 자신들의 범죄를 스스로 인정한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2013년 미국 국가안보국의 국민 감시와 감청이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로 세상에 공개된 바 있다. 미국은 수많은 논쟁 끝에 6월2일 상원에서 무분별한 국민감시를 방지하는 일명 미국자유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에 따라 국민들의 통신기록은 통신회사만이 보유할 수 있고 정부는 법원의 영장을 발부받아야 개인의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 미국자유법은 안보와 개인자유 사이에서의 고민의 결과물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정부의 불법감시라는 범죄와의 싸움을 벌어야할지도 모를 상황에 처해있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살풍경한 현실이다.

김형규 kimh@beopbo.com
 

[1303호 / 2015년 7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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