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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긍정과 전체 부정

기자명 함돈균

▲ 함돈균 문학평론가

최근에 집중적인 여론 비판의 대상이 된 두 가지 사안이 있었다. 그런데 내가 얘기하려는 것은 그 대상들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이때 나타난 ‘여론 현상’에 관한 것이다. 이 둘을 묶어 이야기 하는 것은 이 여론 현상에서 지금 한국사회 상황과 관련한 공통된 특질을 읽었기 때문이다.

우선 소위 ‘잔혹 동시’ 관련한 여론 현상이다. 이 사건에 관해 SNS(인터넷 사회관계망 서비스) 여론의 절대다수는 ‘잔혹 동시’를 쓴 초등학생 아이를 ‘미친 애’ ‘끔찍한 아이’라는 식으로 몰아붙였다. 아이의 ‘시’는 아예 ‘시’로 분류될 수 없는 ‘이상한 글’로 취급받았다. 논란이 된 지 며칠 되지도 않아서 문제의 시집이 전량 폐기된 것은 그 결과다. 반면 그 시집에 실린 여타의 시들을 읽어 본 어른들이 단 극소수의 댓글 중에는 ‘이 아이는 문학 천재(영재)’라고 붙은 것도 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견해는 모두 ‘극단적’이라는 점에서 비슷한 성향을 띤다. 전자의 경우는 ‘전체 부정’이다. 후자의 경우는 ‘전체 긍정’이다. 큰 화제가 되는 이슈에 관해 한국사회 여론 현상의 일반적 특징은 사실 이와 같은 ‘전체 부정’이나 ‘절대 긍정’ 둘 중 하나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이런 현상은 칭찬과 비판을 하는 방식에 관해 한국사회가 서투르다는 걸 보여주는 일은 아닐까. 존재의 전체를 단 한 번에 긍정하거나 부정할 수 있는 사안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럴 만큼 명백하고 총체적인 판단 근거를 가질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칭찬과 비판이란 부분적인 해당 사안이나 행위에 관련해 이뤄지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관점은 신경숙 표절 사태에도 비슷하게 적용된다. 여론의 비판은 처음에는 표절 논란 당사자였던 작가에게 쏟아지다가, 그 다음에는 ‘문학권력’ 논쟁으로 옮겨가서 관련 출판사, 비평가, 나아가서 한국문단 전체로 확대되었다. 비판의 방식은 ‘표절’에 국한되지 않고 작가에 대한 ‘전체 부정’의 양상으로 나타났다. 표절 사안에 관해 작가의 도덕성이나 그 사과방식에 문제가 분명히 있었지만, 그 사실이 그 자체로 작가 전체를 부정하는 근거가 될 수 있을까. 관련 출판사나 ‘문단’ ‘비평가’ 집단에 쏟아진 비판도 비슷하다. ‘문학권력’에 관한 비판과 그에 기반 한 여론의 공분에 나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관련 출판사들이 이 사안만으로 ‘전체 부정’ 당할 만큼 ‘나쁜 곳’이라는 관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문화에 기여한 바를 따진다면 실보다 공이 더 크다고 생각하는 게 내 관점이다. 문화의 장 안에서 소위 메이저 문학출판사들이 이런 수준의 이미지와 경쟁력을 갖추는 일은, ‘권력’이나 ‘나쁜 상업성’ ‘대중 기만’의 ‘비평적 타락’의 술수만으로는 절대로 가능하지 않다. 마찬가지로 한국문단 전체가 대중의 조롱거리로 전락할 만큼 타락하지도 ‘전체 부정’ 당할 만큼 부패하지도 않았다. ‘한국문단’이라고 불리는 영역은 다양하고, 실제 그 영역의 작가들 작품을 전체 부정할 근거를 가질 만큼 잘 알고 있는 독자들도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 문제 이슈들을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한 사회가 좀 더 건강해지고 성숙해지고, 한 발자국이라도 나아가려면 칭찬과 비판의 방식에도 적절한 ‘윤리’와 ‘지혜’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칭찬이나 비판이나 모두 존재를 살리려는 ‘생명’의 원리에 기반 해 있어야 한다. 칭찬의 방식에 서투르니 늘 모든 영역에서 ‘천재’가 아니면 쳐다보지도 않고, ‘작은 재능’과 미래에 중요한 씨앗이 될 현재의 ‘열정’을 우습게 여긴다. 스포츠에서는 ‘영웅’ 밖에 없고, 정치에서는 ‘메시아’ 같은 구원자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린다. 비판의 방법을 잘 모르니 부분의 과오 때문에 존재의 다른 가능성이나 지금까지의 경험과 노고를 한꺼번에 부정하고 폐기해 버린다.

‘전체 긍정’으로 칭찬받은 존재는 자의식 과잉과 자기 독선에 빠지고, ‘전체 부정’ 당한 존재는 부분적 과오를 시인하고 자기혁신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지 못해서 방어적인 태도를 갖거나 모르쇠 존재가 된다. 칭찬과 비판에도 윤리와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

함돈균 문학평론가 husaing@naver.com

[1303호 / 2015년 7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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