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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배-상

뼛속 번뇌까지 도려낸 절로 확연히 드러난 부처님 보라

▲ 여러 번 멍한 상태로 하는 절은 헛것이다. 단 한 번이라도 자신의 부처님 만나려는 맑은 마음으로 접족례 올리는 절이 진짜였다.

물러설 곳은 없었다. 문 잠기고 창 닫혔다. 대구 법왕정사에 한 여름 밤공기가 끈적하게 눌러 앉았다. 제대로 절 한 번 하겠다고 온 20대 여성, 공포로 얼룩졌던 직장생활을 청산하고 새로운 꿈을 실현하겠노라 앉은 직장인, 새엄마를 향한 원망의 찌꺼기를 씻고 싶은 50대 주부, 또 한 번 철야정진으로 몸과 정신을 맑게 만들려는 중년남성 등등. 80여명이 품고 온 저마다의 발원도 좌복 위에 눌러 붙었다.

2001년에 시작…15년째 철야
매월 마지막주 토·일요일 정진
접족례·호흡 절 교육부터 시작

예불 올린 뒤 자정부터 수행
쉼없이  절·고성염불·명상
신구의 삼업 참회하며 땀범벅
청견 스님, 소참법문으로 독려

대중은 자신과 마주하기 전 부처님에게 예불을 올렸다. 1박2일 철야 3000배에 앞서 몸과 마음을 온전히 맑게 하는 과정이었다. 예불은 독경, 절, ‘부처님 크신 은혜 고맙습니다’ 고성염불, 감사명상, 참회명상, 내려놓기명상, 미소명상이 한 세트다. 틱낫한 스님이 제안한 수행자 오계, 일아 스님이 한글로 번역한 ‘한 권으로 읽는 빠알리 경전’에서 발췌한 내용 등을 엮은 예불문을 봉독했다.

▲ 자세, 호흡 등 초심자를 위한 절 교육.

절은 부처님을 향한 예경은 물론 부처님 앞에서 신구의(身口意) 삼업을 정화시키기 위해 번뇌덩어리인 자신의 몸을 던지는 행위다. 그래서 바른 자세가 중요했다. 철야정진에 앞서 초심자는 절하는 방법부터 배웠다. 손목이 꺾이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합장자세를 경계했다. 팔꿈치를 자연스럽게 몸에 붙이면 어깨에 힘이 빠지고 손목도 꺾여 않았다. 몸에 힘이 들어가면 고통이 수반되고 곧 번뇌로 연결되기에 법왕정사는 ‘자연스러운 절’을 강조했다.

▲ 호흡 고르며 명상에 잠기는 순간인 고두례.

절은 구분동작으로 가르쳤다. 무릎을 좌복에 내리면서 발뒤꿈치를 벌리는 동시에 발뒤꿈치를 엉덩이에 댄다. 손바닥을 좌복에 대면서 엉덩이를 떼고, 좌복 위 팔꿈치는 무릎과 주먹 하나 들어갈 정도 간격을 두면 됐다. 접족례를 하고 앞선 과정을 반대로 하면서 일어나면 됐다. 마지막 절에서는 고두례를 해야 했다. 아무리 절을 많이 한다고 해도 예경의 마음을 모두 표현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머리를 한 번 더 조아린다. 일어서지 않고 이마 앞에 합장을 한다. 이 때 놓치지 말아야할 포인트는 코 끝에 마음 두고 절하는 자신을 관찰해야 한다. 수없이 일어나는 번뇌에 끄달리지 말고 알아차려야 한다는 것.

청견 스님은 “절할 때 부처님처럼 환한 미소로 반짝 웃으면서 가슴, 어깨, 허리를 활짝 펴고 하라”며 “절하면서도 언제나 자기를 꿰뚫어보는 알아차림의 힘을 기르는 게 수행”이라고 강조했다.

공기가 달라졌다. 지도법사 청견 스님이 죽비 들자 발원들 일제히 일어섰다. 분명 3000배 철야정진인데 숫자를 헤아리지 않았다. 그마저 번뇌였다. 그냥 절을 할 뿐이었다. 절하는 자신을 관찰하면서 마음에서 일어나는 번뇌를 알아차려야 했다. 침묵 속 죽비소리가 외로웠다. 간혹 법복이 스치는 소리와 가느다란 숨소리가 들렸다. 간간이 들리는 소리가 없다면, 절하는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면 절은 화두참구 같았다. 절하는 속도가 일정했다. 법왕정사 절은 기계적이라는 오해를 사는 대목이기도 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절 한 번을 위한 적당한 속도감에 지나지 않았다.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법당은 찜통이었다. 목도리, 장갑, 양말까지 모두 착용한 상태에서 느끼는 더위는 절에서 오는 고통보다 컸다. 10분 지나자 8만4000개 땀구멍에서 땀이 배어나왔다. 진땀을 속아내는 환경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무 번뇌도 일지 않는다. 고통도 더위도 숨을 죽였다. 딱! 죽비가 침묵을 깼다. 소참법문이 이어졌다.

“포기해야지, 그만둬야지, 너 때문이야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버려야합니다. 몸과 마음을 바꿔 좌절에너지(번뇌)를 비우고 기쁨과 환희의 에너지로 가득 찬 사람이 깨달음으로 갈 용기가 있습니다. 자신이 본래 부처님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면 타인도 부처님이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압니다. 해코지 하거나 몸과 말과 뜻으로 삼업을 짓지 않습니다. 수행은 중생심에 물들지 않고 부처님 계신 곳으로 안내하는 길잡이입니다.”

몸이 차가웠던 김희영(51, 보현)씨에게 온기가 생겼다. 생기가 돌았다. 절 한 번 절 한 번에 얼마나 간절함을 실었던가. 생전 처음 비 오듯 땀 흘리니 몸과 마음이 후련했다. 빨랫줄에 속살같이 부끄러운 딸 속옷만 남긴 새엄마, 아이를 낳았을 때 손님처럼 병원을 찾던 새엄마를 향한 원망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황수경(27, 정예)씨도 직장에서 느꼈던 공포를 이겨내고 있었다. 새벽 3시반에 일어나 출근해 저녁 8시까지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 선배, 환자, 보호자들에게 질질 끌려 다녔던 삶. 매일 도망치고 싶었다. 극단적인 생각은 사망보험금을 확인하게 했고 어머니 암 발병 소식을 차라리 부럽게 만들었다. 그랬던 지난 아픔이 마음에서 빠져나가고 있었다. 처음 3000배 철야에 동참한 박미래(22, 가명)씨는 원력이 단단해지고 있었다. 2박3일 안에 1만배 회향도 가능하리라는 믿음이 여물기 시작했다. 무릎에 아릿한 통증만 빼면. 무수히 일어나는 번뇌와 상처들이 지나가버린 과거에 불과하다는 작은 깨달음이 그를 격려했다.
채워야하는 숫자에 대한 집착이 사라졌다. 조급함도 없었다. 하룻밤 사이 박제된 3000배는 죽었다. 번뇌 죽자 웃음 피었다. 누군가 속삭였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부처님.”

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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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로만 헤아리는 절은 고통만 남겨”

절수행 지도법사 청견 스님

 
“한 번이라도 완벽하고 제대로 절해야 한다.”

‘절 고수’ 청견 스님의 첫 마디는 낯설었다. 수도 없이 많은 절을 해왔기 때문이다. 1985년 조계사에서 1000일 동안 매일 3000배씩 총 300만배, 봉정암과 홍련암 그리고 보리암 등을 순례하며 100개 사찰에서 1만배씩 총 100만배 등등. 스님을 따라다니는 절 숫자만 계산해도 1000만 단위가 훌쩍 넘어선다. 그런데도 스님은 절을 숫자로만 했노라 고백했다. 스님은 “숫자로만 헤아리는 절은 고통만 남긴다”고 강조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경험이다. 스님은 15년째 매월 한 차례도 거르지 않고 대중을 이끌며 3000배 철야정진을 지도했다. 333배씩 10번, 3333배로 정진을 하던 시절도 있었다. 후유증이 컸다. 탈락자가 많았고 회향하면 일상으로 돌아가기 힘들어했다. 운전하다 다리에 쥐가 나 큰 사고를 겪을 뻔했다는 소식도 들렸다. 몸과 마음을 청정하게 만들려고 했던 3000배가 오히려 독이 된 셈이다.

스님은 “고통으로만 기억된 절은 수행과 불교, 부처님 모두를 멀어지게 한다”며 “거부감을 없애고 환희심을 채워야 생활 속에서도 절수행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해서 스님은 3000배 철야정진 타이틀에 ‘깨달은’을 붙였다. 따로 숫자를 헤아리지도 않는다. 다만 철저한 절교육과 호흡으로 ‘부처님 고맙습니다’를 염하게 한다.

“자세와 호흡을 올바르게 하고 절하는 자신까지 관찰하는 1배가 돼야 합니다. 호흡도 거칠어지지 않고 상기도 되지 않지요. 웃으면서 ‘부처님 크신 은혜 고맙습니다’가 절하면서 절로 나옵니다. 환희심으로 벅차오르는 절 한 번이 중요하지요. 스스로가 본래 부처라는 사실을 지극한 절 한 번에 계속 일깨워줘야 합니다.”

스님은 숫자 채우기에 급급하지 말고, 환희심 가득한 절 한 번이면 충분하다는 당부를 전했다.

[1303호 / 2015년 7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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