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전체에 걸쳐 그는 “변화와 창조는 중심부가 아닌 변방에서” 이루어지지만, 변방이 “중심부에 대한 콤플렉스가 없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강조한다. 이는 따로 ‘변방을 찾아서’라는 책을 낼 정도로 신영복의 사유와 성찰의 근본자리가 ‘중심이 아닌 변방’임을 확실히 드러내는 것이다.
저자는 젊은 학생들에게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문사철(文史哲)과 시서화(詩書畵)를 함께, 추상력과 상상력을 함께 연마하는 것이 진짜 공부’라고 적극 권한다. 그리고 그 공부의 바탕은 고전에 있다고 말한다.
‘왜 고리타분해 보이는 고전을 읽어야 할까, 고전 대목 하나를 두고 깊은 생각을 해야 할까,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이 시대에 그것이 필요할까?’라는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에 대한 저자의 답은 이렇다. “고전은 ‘오래된 미래’입니다. 현재 속에는 과거가 있고, 그리고 미래는 이 현재가 변화함으로써 다가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전을 공부하는 까닭은 장기 지속의 구조를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일반인들이 점(占)치는 책으로 연상하는 ‘주역’에서 그가 발견한 최고의 덕목은 겸손이다. 그리고 ‘논어’에서는 ‘전쟁을 통한 합병을 반대하고 큰 나라 작은 나라, 강한 나라 약한 나라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계’에 대한 공자의 주장인 ‘화동(和同) 담론’에 주목한다. 이 연장에서 “‘통일은 대박’이라는 관념은 경제주의적 발상이고 근본은 [화(和)가 아닌] 동(同)의 논리”라고 비판하고, 그래서 “그것이 대박처럼 갑자기 다가올 때가 오히려 파탄이고 충격”이며 “통일(統一)이 아니라 통일(通一)로서 충분”하다고 말한다.
신영복을 통해 만나는 공자의 진면목은, ‘군자는 본래 궁한 법(君子固窮)’이라는 인식이다. 궁할 때에도 흐트러지지 않는 자부심, 그것이 군자이냐 아니냐를 가르는 분기점이라는 것이니 이 기준을 갖고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얼마나 많은 군자를 만날 수 있을까 자못 궁금해진다.
또한 동아시아 전근대사회에서 공자 다음으로 존경을 받았던 맹자에 대해서 “개인의 의지도 중요하지만 그 개인이 처한 사회적 조건도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승인”하는 ‘사회적 관점’에 특히 주목한다.
저자는 중국 사상사는 “인본(人本), 문화(文化), 성장(成長) 패러다임”이었던 유가사상과 무위(無爲)와 더불어 “근본으로 되돌아가는 귀(歸)”를 기본 구조로 하는 노자·장자와 묵자 등의 두 흐름이 모순관계가 아니라 긴장관계를 이루며 ‘서로 좋은 반려자’로 발전해왔고, 이 점에서 종교와 과학이 대립하며 서로 피해를 주고받았던 서양의 경우와 크게 다르다고 본다.
전반부의 고전 강의에 이어지는 2부 ‘인간 이해와 자기 성찰’은 저자가 사형수에서 무기수를 거쳐 출옥하기까지, 자신의 말로는 “사회학 교실, 역사학 교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인간학’의 교실”이었다고 하는 20년 감옥 생활에서 응축된 세상과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담고 있어서 어떤 점에서는 고전 강의보다 더 진한 감동이 되어 우리 가슴을 울린다.
특히 남한산성 육군교도소에서 겪은, 동료를 사살하고 자신도 자살을 기도했던 죄수를 병원으로 데려가 “기어이 살려내서 기어이 사형시켰다”는 이야기는 나를 한참 동안 멍하게 하였다. 그러다 이마를 ‘탁’ 쳤다. ‘이게 권력이고 그 권력을 유지하는 법(法)이지. 법과 권력에 의하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마음대로 죽이거나 죽을 수 없지 않은가. 이게 권력의 속성이지.’
이병두 대한불교진흥원 사무국장
[1303호 / 2015년 7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