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의 청정한 광명은 밝고 맑은 법[br]진흙만 보면 연꽃 향기 고결함 몰라
본래의 청정한 광명은 밝고 맑은 법[br]진흙만 보면 연꽃 향기 고결함 몰라
  • 박상준 원장
  • 승인 2015.07.21 15: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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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좌참한다고 칭할만하다. 우리 법형이신 고매 법사에게 직접 찾아갔는데 법사께서 깊이 법기로 존중하여 일찍이 견백이라는 자를 지어 주었다. 내가 이에 설명을 한다. 불성이 번뇌 속에 있을 때에는 마치 마니주가 변기 속에 떨어져 있는 것과 같고 연꽃이 진흙 속에 있는 것과 같다. 그러면서도 번뇌의 더러움에 마니주의 광명이 어두워지지 않고 오욕의 진흙에 연꽃이 오염되지 않는다.

품은 뜻 가다듬지 않으면
결코 단단해지지 못하고
마음 제대로 씻지 않으면
절대로 밝아지지 않을 것


대개 그 자성이 천연적으로 그러한 것이니 본래 청정한 광명은 밝고 맑은 것이 이와 같다. 그런데 사람들은 더러운 것만 보고 마니주의 광명은 알지 못하며 진흙만 보고 연꽃의 향기가 고결한 것은 알지를 못한다. 이 때문에 번뇌에 푹 빠져들어서 자성이 원만하게 밝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공은 기나긴 번뇌의 속진 세상에 태어나 용감하게도 속진 세계를 벗어나고자 하는 뜻을 품어 마음으로 왕생극락을 기약하면서 생사윤회의 세계를 싫어하여 떠나고자 하였다. 이는 진실로 한 생각이 오롯하게 밝아지자 인연 따라 항상 비추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번뇌의 세계 그 자체에서 불사를 일으키고 예토를 바꾸어 정토가 되게 하는 것이다.

어찌 단순히 견백동이(堅白同異)[중국 전국시대의 공손룡이 주장한 일종의 궤변(詭辯)이다. 단단하고 흰 돌은 눈으로 보아서는 그것이 흰 것을 알 수 있으나 단단한지는 모르며, 손으로 만져 보았을 때에는 그것이 단단한 것인 줄만 알고 빛깔이 희다는 것은 모르므로, 단단하고 흰 돌은 동일(同一)한 물건(物件)이 아니라고 설명(說明)하는 것이다. 역자주]의 학설로만 설명할 수 있겠는가.

비록 그렇긴 하지만 뜻을 가다듬지 않으면 단단해지지 못하고 마음을 씻지 않으면 밝아지지 못한다. 그런데 우리는 뜻을 인욕으로 단단하게 가다듬지 못하고 마음을 계로 밝게 씻어내지 못하고 있다. 만약 인욕이 무생의 경지에 이르고 계가 자성으로 돌아가면 자성이 청정해질 것이니 이른바 갈아도 닳지 않는다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만약 갈아도 닳지 않는다면 검은 물을 들여도 검게 물들지 않을 것이다.[논어 양화편에 나오는 내용이다. 군자는 주변 환경의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다. 연꽃이 진흙에 물들지 않는 것과 상통한다. 역자주] 단단하면 부서지지 않고 희면 물들지 않는다. 부서지지도 않고 물들지도 않으면 실상이 상주하리니 정토무량수의 의미가 여기에 있다고 할 것이다.

공이 정말로 내가 말해주는 것으로 자신의 마음을 관한다면 가슴속에 있는 물건이 저절로 눈앞에 나타날 것이다. 이렇게 해야만 도반을 저버리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을 저버릴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저버리게 된다. 공은 힘쓸지어다. 이것으로 설명하노라.

자성 이야기

일찍이 말하기를 사람이 태어남에 주인노릇을 하는 것은 성품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성은 하나이지만 품은 하나가 아니다. 성인과 현인을 분류하는 경우에도 생이지지(生而知之)와 학이지지(學而知之)와 곤이지지(困而知之)의 다름이 있다[논어 계씨편에 나오는 내용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이 상급이고, 배워서 아는 사람이 그 다음이고, 곤란을 겪은 다음에 배우는 사람은 또 그 다음이다. 곤란을 겪고도 배우지 못하면 사람이 하급이 된다’고 하였다. 역자주]. 이것은 습기의 두터움과 얇음을 말미암는 것이다. 그 때문에 어려움과 쉬움이 있게 되는 것이다.

생이지지의 성인은 실로 세대마다 세상에 나오지 않는다. 학이지지와 곤이지지는 습기의 두텁고 얇음에 달려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논어에서 “사람의 성품은 서로 가깝지만 습관에 따라서 멀리 차이가 난다”고 하였으니 아마도 이것을 두고 말한 것이리라.

박상준 고전연구실 ‘뿌리와 꽃’ 원장  kibasan@hanmail.net
 

[1303호 / 2015년 7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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