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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중국 오대산 성지순례(하) 백림선사-임제사

두 거탑이 묻는다 ‘넌, 누구냐?’

▲ 조주탑이다. ‘평상심이 도’라는 남전의 가르침에 대오한 조주는 훗날 ‘고불(古佛)’로 칭송 받았다. (왼쪽 사진)
▲ 임제탑이다. 스승 황벽의 뺨도 때려 버린 임제는 그 누구보다 대자유를 만끽하며 한 세상을 풍미했다. (오른쪽 사진)


"부처님 왜 오셨나?
조주·임제, 암수·비수
날리고는 제 갈 길"

달마를 초조로 한 중국의 선은 육조혜능에 이르러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이후 남악회양, 청원행사, 마조도일, 석두희천, 백장회해, 황벽희운, 남전보원, 단하천연 등 50여명(남종선 중심)의 조사들이 연이어 출현하며 중국 대륙에 선풍(禪風)이 휘몰아친다.

하북성 석가장(石家壯) 땅에도 두 거인이 서 있었다. 조현의 조주, 정정현의 임제! 그들이 내뿜는 선기는 그 어느 선사들보다 강력해 하북성을 넘어 산동, 강서, 절강, 안휘성까지 퍼져갔다. 선의 진미 배인 열매 하나 따보려 수많은 납자들이 찾아와 묻고 또 물었다. 그 때의 일을 후학들이 기록으로 남겼으니 그 한 편이 ‘조주록’이요, 또 한 편이 ‘임제록’이다.

두 선사의 법기 어느 정도였던가! 사미 조주는 스승 남전을 만난 첫 자리서 스승을 일러 ‘여래’라 칭했다. 그 사연 엿보자.

“어디서 왔느냐?” “서상원(瑞像院)에서 왔습니다.” “상서로운 모습은 보았는가?” “상서로운 모습은 보지 못했으나 누워있는 여래는 보았습니다.” “너는 스승이 있느냐?” “아직 추운 계절인데 존체 만복하시니 다행입니다.”

육조혜능의 법을 이은 남전 앞이다. 말 한마디 잘못하면 천 길 낭떠러지로 추락할 그 자리서 조주는 제자로 받아 달라 사정하지 않는다. 그냥 ‘당신이 나의 스승’이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있다. 그 때 조주의 나이 14살. 고불(古佛)이라 칭송받을 만한 근기 이미 수승했음이다.

46년 동안 스승을 모신 조주는 남전이 입적하자 세납 60에 만행을 떠났다. 초근목피로 목숨 연명하며 선사들과 법거량 나눈 행각만도 20년. 나이 80에 이르러 조주는 다음 한 마디 던지며 조현 땅으로 발길을 돌린다. “7살 먹은 아이라도 나보다 낫다면 내가 물을 것이요, 100살 먹은 노인이라도 나보다 못하다면 내가 가르치리라.” 그리고 이른 곳이 관음원, 지금의 백림선사(栢林禪寺)다.

▲ 백림선사 관음전 앞에 서 있는 두 그루의 측백나무가 인상적이다. ‘차 한 잔 하라’는 끽다거(喫茶去) 화두도 이 도량에서 시작됐다.

▲ 조주탑에 삼배 올리는 울산 정토사 신도들을 측백나무숲이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

그 유명한 ‘뜰 앞의 측백나무’ 화두를 잉태한 도량답게 성성한 기운 옹골차게 배인 측백나무가 눈길 머문 곳마다 서있다.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조주는 “뜰 앞의 측백나무”라 했다. 달마가 중국에 온 뜻,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 뜻 묻는데 ‘뜰 앞의 측백나무’라니!

중국의 선은 일찍이 그 어느 곳에서도 태동하지 않았던 교법이었다. 이원섭 시인의 말(‘깨침의 미학’, 법보신문사)처럼 관념과 추상을 과감히 걷어치우고 곧바로 사물을 직시하려는 즉물적(卽物的) 성향을 바탕으로 한 가르침이었다. 그렇기에 선사의 말 한 마디는 ‘상대의 미혹을 한 순간에 깨버리는 힘’을 지녀야 했다. 우리 곁에 있는 사물 하나로 선의 진면목을 드러내는 조주의 기봉(機鋒)에 기가 막힐 따름이다. 조주탑 향해 마음 다한 합장 삼배 올린다.

▲ 백림선사에 비해 임제사는 다소 초라하다. 중국의 선불교가 회복되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백림선사로부터 30km 남짓한 거리에 ‘할’ 하나로 당대의 선가를 휘어잡았던 임제가 머무른 임제사(臨濟寺)가 있다. 경율을 통달하고도 “결국 이것은 세간을 구제하는 처방일 뿐 교외별전의 종지는 아니다”라며 황벽문하로 걸어갔던 임제. 그의 법기 또한 처음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스승 황벽에게 ‘불법의 대의’를 세 번 묻다가 세 번 얻어맞았더랬다. 낙심한 제자 안타까워 황벽은 대오에게 가보라 했는데 임제는 거기서 몰록 깨달았다. ‘황벽의 가르침이란 이런 것이구나’라며 대오의 옆구리 쥐어박고는 곧바로 황벽의 뺨까지 후려쳤다. 그리고 그 자리서 곧바로 일성을 내보였다.

“할!” 

천지를 울리고 우주를 관통하는 사자후였다. 분별하려는 자, 고정관념에 매인 자, 부처에 매달린 자, 조사에 의지한 자 모두 그의 ‘할’에 나가 떨어졌다. 그러나 임제의 ‘할’ 꿋꿋하게 이겨내 단 한 음절이라도 자신만의 소리를 낸 사람은 무위진인(無位眞人)만이 누릴 수 있는 대자유를 얻었다. 그 ‘할’ 한반도 땅에 이어져 성성하게 살아 꿈틀대고 있다. 임제탑 향해 정성다한 합장 삼배 올린다.

▲ 조주와 임제의 기운을 받은 듯 융흥사 관세음보살은 남성미를 물씬 풍긴다.

두 거인의 극적인 만남이 있었다. 조주 스님이 임제 스님을 찾았다.(‘임제록’과 달리 ‘조주록’에는 임제가 조주를 찾는다. 전체 상황은 유사하다.) 임제 스님은 마침 발을 씻고 있었다. 조주 스님이 묻는다.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은 무엇입니까?” “마침 노승이 발을 씻고 있습니다.” 조주는 임제 가까이 가서 귀 기울이며 듣는 자세를 취했다. 이에 임제는 발 씻은 물을 버리려 했다. 그러자 조주 스님은 그냥 가버렸다. 서로 암수와 비수 한 번씩 날리고 엄지 척 들어 보이고는 무심히 돌아서며 제 갈 길 가는 두 대장부. 1000년 전의 일, 상상만 해도 멋져 보이지 않는가?

오대산 성지순례를 마친 순례단은 이제 돌아간다. 길 떠났던 처음 그 자리로 돌아가는 우리에게 두 거탑이 묻는다.

‘넌, 누구냐?’

채문기 본지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1304호 / 2015년 7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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