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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정혜쌍수, 정혜와 자성

기자명 인경 스님

우리는 본래적으로 부족함이 없다

자성(自性)이란 사물의 본래적인 스스로의 성품을 의미한다. 본래적인 성품이란 의미로 본성(本性)이라고도 하고 진정한 성품이란 의미에서 진성(眞性)이란 표현도 사용한다. 다른 사물과 구분되는, 그것을 그것이 되게 하는 본래적 성질로서 본질(本質)이다. 예를 들면 불의 본질은 ‘태움’이다. 무엇인가를 태울 수 없으면 불이라고 부를 수가 없다. 물의 본질은 ‘젖음’이다. 무엇인가를 젖게 하는 것이 없으면 물이라고 부를 수가 없다.

자성, 본래적 성품 의미
마음은 청정·고요하지만
잡초두면 계속 자라기에
끊임없는 수행이 요구돼

그러면 마음의 본성은 무엇일까? 무엇을 마음의 본질, 자성이라고 할까? 마음을 마음이라고 부를 수 있게 하는 본질적인 성질은 무엇일까? 그것이 있기에 다른 사물과 구분되는 오직 마음에게만 존재하는 성품은 무엇일까? 모든 중생은 마음을 가졌다. 물론 중생마다의 차이는 있지만 그들의 공통된 본질은 무엇일까? 다양한 형태의 물이 존재한다. 짠 바다도, 아침에 마시는 물도, 여름날 쏟아지는 소낙비도 물이다. 이들의 공통된 점은 ‘젖음’이다.

그러면 마음의 본래적 특성, 그 본성은 무엇일까? 그것은 ‘알아차림’이다. 마음이 존재하는 곳에는 알아차림이 있다. 나무나 바위는 알아차림이 없다. 하지만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 수준의 차이가 있지만, 모든 마음, 의식의 본질은 ‘알아차림’이다. 마음이 가지는 스스로의 성품[自性]은 바로 알아차림이다. 이것을 확대하여 ‘수심결’에서는 ‘계정혜(戒定慧)’ 삼학으로 설명한다.

삼학, 계정혜는 ‘자성의 계’이고, ‘자성의 정’이고, ‘자성의 혜’라고 말한다. 이런 대승불교적 해석은 특히 ‘육조단경’에서 강조한 이후, 마음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동북아시아의 중요한 특성이 되었다. 쉽게 말하면 근본적으로 마음이란 ‘그릇됨 없이 청정함’이고, ‘산란함 없는 고요함’이고, ‘어리석음 없는 지혜로움’이다.

우리는 본래적으로 부족함이 없다. 스스로 청정하고, 스스로 고요하며, 스스로 지혜롭다. 이것은 외부에서 주어진 것이 아닌 본래적인 성품이기에 본성(本性)이라고 하고, 모든 마음 현상의 근본이기에 법성(法性)이라고 하고, 스스로의 성품이기에 자성(自性)이라고 한다. 이것이 다른 사물과 구분되는 마음의 본질이다.

그런데 여기에 두 가지 관점이 대립된다. 하나는 마음의 청정함과 고요함과 지혜는 계발되어야 한다는 관점이다. 여기에 따르면 마음은 그릇됨에서 청정함으로 나아가야 하고, 산란함에서 고요한 마음을 계발해야 하고, 어리석음에서 지혜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잡초는 그대로 두면 계속적으로 자라나기에 끊임없는 점진적인 수행이 요청된다. 이것은 점수(漸修)이다.

다른 관점은 돈오(頓悟)이다. 돈오의 관점은 마음은 본래적으로 근본이 청정하고 고요하며 지혜롭기에, 애써 수행은 필요하지 않고[無修], 애써 그것을 증득한 이유가 없다[無證].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서 노력하고 습득하는 것 자체가 문제이다. 이미 그것은 스스로 다 갖추어져 있기에 그것을 찾고 얻기 위해서 밖으로 다닐 필요가 없다는 관점이다. 단지 이 사실을 깨닫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느 쪽이 더 타당할까? 한쪽은 마음이란 그릇되어 있고, 산란하고, 어리석기에 닦아야 하고, 그 증상을 계속적으로 개선시켜야 한다. 애써 노력을 해야 하고, 관리를 해야 하고, 통제를 가해야 한다. 반면에 다른 쪽은 이미 다 완성되어 있는데 왜 다시 난리를 치는가? 사족을 달아서 더욱 번거롭게 하는가? 이미 그릇됨이 없고, 이미 고요하고, 이미 지혜로운데 무엇을 다시 구한다는 것인가? 단지 이렇게 깨닫기만 하면 된다.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된다.

한쪽은 인간의 부정적인 경우를 보고 있다. 파괴적이고 끊임없이 분노하고 슬퍼하면서 전쟁을 불러일으킨다. 쉴 날이 없다. 그래서 인위적으로 노력을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인류의 생존은 행운이 아니라 지옥이 된다. 반면에 한쪽은 인간의 긍정성을 본다. 왜 스스로 고통 속으로 들어가는가? 이 순간에 머물러 보라. 근본적으로 우리는 행복하다. 작은 이름을 알 수 없는 꽃을 보면서도 우리는 미소 짓을 수가 있지 않는가?

인경 스님 명상상담연구원장 khim56@hanmail.net
 

[1304호 / 2015년 7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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