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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에 대한 불감증

“나를 위한 헤어 스타일, 나라를 위한 헤어스타일. 나를 위한 저금, 나라를 위한 저금~”

공익광고를 들으며 나도 모르게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FM 음악방송이었기에 화면이 없어 ‘나라를 위한 헤어스타일’이란 것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중에 TV를 보면서 나라를 위한 헤어스타일이란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알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게 그것이 좀처럼 이해되지는 않았다. 군인의 헤어스타일이란 것이 나라를 위한 것인가?

여기에서 ‘위한’ 이라는 말이 정말 이상하게 쓰이고 있었다. 나의 헤어스타일이란 말은 자연스럽지만, 나를 위한 헤어스타일이란 말은 정말 어색하다. 그렇게 수단과 목적의 관계를 헤어스타일에까지 적용시켜야 하고 그것을 국가를 ‘위한’ 헤어스타일이란 말에까지 이어가야 할 것인가? 그 뒤의 광고 또한 어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를 위한 기다림’, ‘나를 위한 저금’ 거기에도 또한 ‘위한’이란 말로 수단과 목적의 관계를 분명하게 나타내면서, 그것을 나라를 ‘위한’이라는 애국심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왜 갑자기 이렇게 개인의 행위 하나 하나를 수단과 목적이라는 관계로 맺어 가면서, 그것을 개인과 국가의 관계로 연결 짓는가? 여기에는 큰 위험이 숨겨져 있다.

우리의 행위 하나 하나가 모두 수단과 목적이라는 관계로 맺어져 있는가? 그냥 좋아서 하는 헤어스타일에 수단과 목적이라는 관계를 부여해야 하는가? 나의 삶 전체가 그런 수단과 목적이라는 관계 속에 놓여 있는가? 이런 물음을 던져 볼 필요가 있다. 그 자체로 하나하나 소중하다고도 할 수 있는 삶의 과정이 모두 수단과 목적이라는 연쇄의 고리에 갇힌다는 느낌은 없는가? 그리고 그것을 바로 ‘국가를 위한’으로 연결지으면 어떻게 되는가? 나의 행위가 바로 ‘국가를 위한’ 이라는 수단과 목적의 관계에 놓이게 되고, 결국 나라는 존재와 국가가 수단과 목적이라는 관계로 규정될 위험은 없는가?

물론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지나치게 예민한 것일 수 있기에 이렇게 물음으로 처리해 본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이 꼭 부정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만일 이러한 위험이 있다면 ‘공익 광고’라는 이름 아래 이런 위험한 광고가 자행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애국심, 또는 국가에 대한 충성심은 감정의 영역에 속한다. 어떤 의무감과 연결 지을 수 있지만, 역시 감정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한 감정에 대하여 지나치게 명령형의 요구를 해서는 안 된다. 지금의 젊은이들이라면 거의 가고 싶어 하지 않는 군 입대에 대한 긍정적인 조명은 필요한 일인지 모르겠으나, 그것을 ‘국가를 위한 헤어스타일’이라는 이름 아래, 마치 헤어스타일이 애국심의 표현인양 호도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리고 개인이라는 조그만 존재로부터 갑자기 더 이상 큰 것을 찾기 힘든 국가에로 연결시키는 작업 자체가 매우 무리한 일이다. 우리 주변에 대한 따뜻한 사랑과 관심이라는 과정을 거쳐, 자아의 확장이 이루어지는 점차적인 과정 없이 대뜸 ‘국가를 위한’이라는 식의 비약은 너무도 자연스럽지 못하다. 우리의 행위가 결과적으로 이웃과 사회, 나아가 국가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연기법으로 보아서도 분명하다. 그렇지만 국가가 우리에게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에 대한 느낌도 주어지기 이전에 ‘국가를 위한’이 강조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헤어스타일을 정하고, 꼭 무엇을 위해서라는 수단과 목적의 관계를 떠나 ‘기다리고’ ‘저금한다’ 거기에 ‘국가를 위한’이 강조되면 자칫 ‘파시즘’으로 흐를 우려가 있다. 따뜻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공익 광고에 미소 짓던 마음을 움츠리게 만든 이 ‘국가를 위한’ 공익광고, 다시 검토해 보기 바란다. 혹 필자 혼자의 과민한 반응이라 한다면 한편으로는 다행스럽다 할 수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파시즘에 대한 불감증이 만연되어 있지 않은가 걱정이 되기도 한다.

성태용 건국대 철학과 교수 tysung@hanmail.net


[1305
호 / 2015년 8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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