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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계제도, 불교전통 회복하는 게 바람직”

기자명 법보신문
  • 기고
  • 입력 2015.08.10 15:06
  • 수정 2015.08.10 17:14
  • 댓글 19

임승택 경북대 교수 특별기고
권력에 맞선 94년 개혁은 정당
과정 중 발생한 문제에 대해선
이제라도 진지한 재검토 필요

종단운영 합리·민주적이지만
역기능 있다는 사실 직시해야
당시 멸빈징계 불가피했더라도
사실 관계 입각한 재조사 필요

▲ 임승택 경북대 철학과 교수
최근 94년 멸빈자 사면이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임승택 경북대 철학과 교수가 ‘불교인가, 민주주의인가’라는 기고문을 보내왔다.

임 교수는 기고문에서 “당시 종단개혁은 소수의 권력집단이 시대적 흐름을 무시하고 조계종 전체의 대의를 거슬렀던 까닭에 초래된 불가피한 것”이라며 “그렇지만 거기에서 발생한 제반의 문제에 대해서는 진지한 검토와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조계종의) 체계는 국가운영시스템에 비견할만한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모습”이라며 “이러한 제도는 세속의 국가 운영에서 나타나는 제반 문제점을 종단의 내부로 끌어들이는 역기능도 겸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 교수는 또 “(선거제도와 마찬가지로) 징계제도도 세간의 법보다는 불교의 전통을 회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94년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에서 책임을 면하기 힘든 몇몇 분들에게 멸빈이라는 중징계가 내려진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멸빈이라는 징계가 율장의 규정이나 이념을 외면한 비불교적 처사였다는 점에서 재고가 요구된다”며 “서의현 전 총무원장의 경우에는 당시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했기 때문에 절차적인 문제가 있었더라도 감당해야 할 부분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다른 분들에 대해서는 지금이라도 명확한 사실 관계에 입각한 재조사와 징계수위의 조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승택 교수는 동국대대학원에서 초기불교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미얀마 위빠사나 명상센터에서 수차례 안거수행을 마쳤다. ‘붓다와 명상’(민족사 2011), ‘바가바드기타 강독’(경서원 2003), ‘빠띠삼비다막가 역주’(가산불교문화연구원 2001), ‘초기불교 94가지 주제로 풀다’(도피안사, 2013), ‘네띠빠까라나 상·하’(학고방, 2014) 등 저서 및 역서가 있으며, 60여편의 논문을 집필했다. 편집자

■임승택 경북대 교수 특별기고 ‘불교인가, 민주주의인가’ 전문

최근 94년도 종단개혁 과정에서 멸빈된 분들에 대한 사면 논란이 뜨겁다. 당시의 종단개혁은 절대권력에 대한 항거로 시작되었으며, 불교사를 통해 유례를 찾기 힘든 불교민주주의의 실현으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이제 20년이 지난 시점에서 종단개혁의 공과는 냉정하게 재검토될 필요성에 직면하고 있다. 당시의 종단개혁은 소수의 권력집단이 시대적 흐름을 무시하고 조계종 전체의 대의를 거슬렀던 까닭에 초래된 불가피한 것이었다. 따라서 종단개혁 자체는 정당했다고 할 수 있으며 그 정신 또한 존중되어야 마땅하다. 그렇지만 거기에서 발생한 제반의 문제에 대해서는 진지한 검토와 논의가 필요하다. 보다 나은 미래의 조계종을 위해서이다.

현재 조계종의 조직운영 방식은 전형적인 삼권 분립의 형식을 유지하고 있다. 상징적 존재인 종정을 수장으로, 중앙종회(입법)·총무원(행정)·호계원(사법)이 존립해 있고, 총무원에 쏠리는 업무 집중을 완화하기 위해 교육원과 포교원이라는 별도의 기관이 서로 협력하는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 또한 조계종은 전국에 산재한 소속 사찰들을 스무 개 이상의 권역으로 나누고 있다. 각각의 권역을 관장하는 교구 본사는 일정한 자치권을 지니지만 종무행정 전반에 대해서는 총무원이 권한을 갖는 중앙집중적 관리 방식을 취한다. 이러한 조직 운영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사항은 선거제도이다. 종정을 비롯하여 총무원장, 중앙종회의원, 교구 본사의 주지 등 주요 요직의 담당자는 모두 무기명 투표를 통해 선출된다. 선거를 통한 인사 선출은 종단개혁 이후 정착된 조계종의 가장 큰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조계종의 조직체계와 운영은 종단개혁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외견상 원만하게 유지되는 듯하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서는 두 가지 엇갈린 평가가 가능하다. 이러한 체계는 국가운영시스템에 비견할 만한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보다 투명한 종단 운영이 가능해진 측면이 있고, 현대 사회의 이상이라고 할 수 있는 민주성을 담보한다는 점에서도 긍정적이다. 그러나 이 방식은 세속적인 국가운영시스템을 벤치마킹한 것이라는 점에서 적지 않은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물론 종단의 운영은 투명하면서도 전문적으로 행해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는 세속의 국가 운영에서 나타나는 제반 문제점을 종단의 내부로 끌어들이는 역기능도 겸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예컨대 국가권력에서 나타나는 관료주의적 사고와 선거만능주의가 그것이다. 특히 현재의 조계종 운영 방식에서 가장 큰 문제는 선거제도이다. 선거를 통해 다수의 의사를 결집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제도와 권력을 이루어 내는 방식은 현대 민주주의 사회의 불가피한 선택이다. 그러나 조계종의 선거는 ‘돈 선거’라는 오명을 떨치지 못하고 있으며, 구성원의 의사 반영 부족, 선거관리기관의 중립성 문제, 선거 후의 소송 등과 같은 숱한 갈등과 문제의 온상으로 지목되고 있다. 선거 과정에서 노출되는 삼보정재의 누수 현상은 일회적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선거에서 소요된 비용을 임기 내에 메우기 위한 각종의 추가적인 문제들이 지속적으로 유발되고 있다. 이것은 승단의 위신 추락과 재가신도 및 일반인의 불신이라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현재 조계종의 운영 방식은 국가 권력의 그것에 부합하는 것이지 종교 단체를 이끌어가기 위한 성격의 것이 아니다. 조계종은 엄연히 출가한 수행자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모든 종무는 수행과 화합을 우선순위에 두고 처리해야 하며, 구성원 간에 위계를 따질 필요가 있을 때에는 법랍을 기준으로 법랍이 높은 스님이 상좌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초기불교 당시와 지금은 시대적으로 차이가 큰 까닭에 모든 의사결정을 율장의 가르침대로 고수할 수 없다. 그러나 시야를 넓히면 대안이 없는 것도 아니다. 미얀마나 스리랑카 불교에서 볼 수 있는 합의를 통한 만장일치제라든가 로마 가톨릭의 교황선출방식 등이 그것이다. 이들은 사전 선거운동의 여지를 줄이면서 명망 있고 유능한 인사를 리더로 뽑을 수 있는 참고 사례가 될 수 있다.

선거와 마찬가지로 징계제도도 세간의 법보다는 불교의 전통을 회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94년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에서 책임을 면하기 힘든 몇몇 분들에게 멸빈이라는 중징계가 내려진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멸빈이라는 징계가 율장의 규정이나 이념을 외면한 비불교적 처사였다는 점에서 재고가 요구된다. 멸빈의 일부 당사자들은 호법부나 호계원으로부터 출석통보도 받지 못한 채 궐석징계를 받았고, 그 중에는 멸빈의 이유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경우마저 있다고 한다. 서의현 전 총무원장의 경우에는 당시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했기 때문에 절차적인 문제가 있었더라도 감당해야 할 부분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다른 분들에 대해서는 지금이라도 명확한 사실 관계에 입각한 재조사와 징계 수위의 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94년 종단개혁은 그 썩은 물을 갈기 위한 몸부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그 일이 있고 난 후 2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다. 그간의 종단은 교육, 포교, 복지 등의 여러 분야에서 많은 발전을 이루어 냈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만큼 고쳐나가야 할 부분들의 윤곽도 뚜렷해 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종단개혁의 유산만을 붙잡고서 이미 드러나 있는 문제점을 외면하는 처사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어쩌면 그것은 강산이 두 번씩이나 변하는 사이에 그 물이 또 다시 썩어가는 징후일 수 있다. 이제 종단개혁에 앞장섰던 분들부터 떨치고 나서야 한다. 건설적인 미래를 위해 스스로에 대해 책임을 지는 태도가 필요하다. 세속적인 민주주의의 틀 안에 불교적 가치를 고사시켜서는 안 될 일이다.
 

[1306호 / 2015년 8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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