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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석승조-상

기자명 성재헌

불법은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전해지는 것이기에 교화에는 상대방의 성향과 성숙도를 살핀 적절한 방편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수많은 방편은 공히 열반과 해탈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있고, 계율을 지키고 선정을 닦고 지혜를 계발해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소멸시킨다는 대강을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고금의 일들을 살펴보면 소위 방편이란 이름으로 법답지 못한 일들이 행해진 사례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속내를 들춰보면 결국 탐욕과의 타협을 방편이란 이름으로 그럴싸하게 위장했음을 확인하게 된다. 부처님께서 전하신 진실한 방편에 탐욕과의 타협이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고금의 진실한 불제자들은 방편을 행함에 있어 부나 명예 심지어는 자신의 목숨마저도 고려사항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승조 선사 역시 그런 분이셨다.

방편이라며 행해진 비법들
대부분 탐욕에 대한 위장
부와 명예 고려하지 않은
승조 선사의 방편은 귀감

승조는 남북조 시대 위나라와 제나라 등지에서 활략한 선승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학문에 매진해 태학박사(太學博士)로 등용된 인재였다. 하지만 어느날 우연히 손에 들어온 불경을 읽고는 그 이치를 단번에 깨치고 곧바로 출가했으니, 그의 나이 스물여덟 되던 해의 일이다. 이후 경명사(景明寺)의 승식(僧寔) 법사로부터 경전과 율장을 배우고, 발타(跋陀)의 수제자 도방(道房) 선사로부터 정신을 집중해 관찰하는 법을 배웠다. 그렇게 ‘열반경(涅槃經)’을 수지하면서 사념처를 수행해 계정혜 삼학을 성취했다. 그는 이름을 숨긴 채 산천을 떠돌았지만 그에 대한 소문은 곧 사방으로 퍼졌다. 왜냐하면 한번 선정에 들면 일주일이 지나야 깨어나고, 곳곳에서 신비한 이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건은 호랑이 싸움을 말린 일이다.

회주 서쪽에 있는 왕옥산에 머물 때 일이다. 어느 날 절 마당에서 호랑이 두 마리가 싸움을 벌였다. 물어뜯고 으르렁대는 소리가 골짜기를 쩌렁쩌렁 울렸고, 승려들은 공포에 살을 떨었다. 그때 승조가 태연하게 마당으로 내려서더니 석장을 들었다. 그리고는 호랑이 사이에 끼어들어 석장으로 툭툭 치면서 말했다.

“싸울 것 없다. 너는 이쪽 골짜기에서 살고, 너는 저쪽 골짜기에서 살아라.”

그러자 거짓말처럼 두 마리 호랑이가 꼬리를 내리고 뒤돌아선 것이었다. 그에 대한 명성을 듣고 위나라의 효명제와 효무제가 초청했지만 거절했다. 깊은 산에서 선정을 닦다가 생을 마감하는 것이 그의 뜻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나라 문선제의 청은 끝내 거절하지 못했다.

“오래전부터 풍모와 덕망을 듣고는 늘 만나 뵙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부디 석장을 메고 잠시나마 승명사(承明寺)에 머물러 주십시오. 지극한 도를 베풀어 고통에 잠긴 이 땅의 중생들을 널리 구제해주십시오. 저는 스님을 붙잡아두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곳에 계시다가 가시고 싶을 때 언제든 떠나십시오.”
거듭되는 황제의 청에 결국 승조는 산을 나섰고, 황제는 직접 수레를 타고 교외까지 나가 그를 맞이했다. 그때 그의 나이 일흔이었다. 겸손하면서도 당당한 승조의 기품에 황제는 한눈에 반했다. 황제는 손수 승조를 부축해 내전으로 모시고 날마다 가르침을 청했다. 황제의 진실한 태도에 승조는 불법의 핵심을 여과 없이 일러주었다.

“광활한 우주가 본래 공한 것인데, 이 조그만 국토야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주상의 영명하신 치하로 세간이 이토록 영화롭고, 향유하는 기쁨이 바다와 같이 한량없다지만 이 아름다운 모습도 한때의 풍경임을 아셔야 합니다. 풀끝에 맺힌 아침이슬처럼,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사라진다는 것을 황제께서는 반드시 아셔야 합니다.”

황제의 면전에서 그리 말하는 사람은 누구도 없었다. 황제의 온몸에서 털이 곤두서고 겨드랑이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황제는 진심으로 고개를 숙였다.

“스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부처님가르침은 여러 법사들로부터 넘치도록 들으셨을 겁니다. 하지만 몸소 체득하기 전에는 단 한 구절도 그 뜻을 바로 알 수 없는 것이 또 부처님가르침입니다. 그러니 선정을 닦으셔야 합니다.”

황제는 승조의 가르침에 따라 사념처를 수행했고, 승조의 친절한 지도로 며칠 만에 심오한 선정을 몸소 체험했다. 환희심이 솟구친 황제는 그날로 술과 고기를 끊고, 백성들에게 살생을 금하는 칙령을 내렸다. 

성재헌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tjdwogjs@hanmail.net


[1305
호 / 2015년 8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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