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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전생의 죄업

기자명 서광 스님

금강경 읽고 새겨도 전생 업 따라 행·불행 갈려

“수보리야! 만약 ‘금강경’을 읽고 사유하면서 수행하는 사람이 남에게 천대와 멸시를 받는다면, 그 사람은 분명 전생에 지은 죄업 때문에 악도에 떨어질 운명을 타고 난 것이다. 그런데 ‘금강경’을 독송하고 사유한 공덕으로 악도에 떨어지는 대신 천대와 멸시를 받는 것으로 전생의 죄를 소멸하고 나면,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될 것이다. 수보리야! 무량한 나의 전생 삶을 돌이켜보니 나는 연등불을 뵙기 전에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부처님을 만나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며 그냥 지나친 적이 없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말세에 이 경을 읽고 사유하면서 가슴에 간직한다면 그가 얻을 공덕은 내가 그 많은 부처님께 공양한 공덕의 백분의 일, 천분의 일, 만분의 일, 억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어떤 계산이나 비유로도 설명할 수가 없다. 수보리야! 말세에 선한 사람들이 ‘금강경’을 읽고, 사유하고, 가슴에 새기는 공덕을 자세하게 말하면, 아마도 어떤 사람은 그 말을 듣고 마음이 어지러워져서 의심하고 믿지 않을 것이다. 수보리야! 이 ‘금강경’은 그 뜻이 워낙 불가사의하고, 그 과보 또한 불가사의해서 생각하거나 짐작할 수가 없다.”

불가사의할 만큼 공덕 크지만
천대 받는다면 업장소멸 과정
수행한 그대로 복과 덕 돌아가
궁극적으론 아집·법집서 해방

지금까지 우리는 ‘금강경’을 읽고 사유하고 가슴에 새기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을 얻는 일인지, 또한 그것을 다른 사람을 위해서 가르쳐주고 설명해 줌으로써 얻게 될 복과 덕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에 대해서 공부해 왔다. 그런데 실제 현실에서 보면 ‘금강경’을 읽고 외우고 사경하고 가슴에 새긴다고 해서 누구나 다 행복하고 잘 사는 것은 아니다. 또 모두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게다가 ‘금강경’을 외우고 공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는 것이 힘들고 별로 좋아지는 것이 없다면 그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가 전생에 지은 과보로 인해서 현생에서는 지옥(공격성, 불안, 공포에 휩싸이는 삶), 아귀(만족을 모르고 끝없는 갈망과 결핍감에 허덕이는 삶), 축생(성적욕망과 충동, 무지에 사로잡힌 삶)과 같은 삶을 살아야 마땅한데, ‘금강경’을 공부하는 공덕으로 인해서 남에게 천대와 멸시를 받는 것으로 대신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천대와 멸시는 일시적인 것일 뿐, 과거 또는 전생에 지은 죄가 소멸되고 나면 반드시 자신이 수행한 만큼의 복과 덕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나 오랫동안, 얼마나 많이, 어느 정도까지 ‘금강경’을 이해하고 사경하고 가슴에 새기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해줘야만 삶의 문제와 고통, 갈등, 욕망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까? 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궁금증이 일어난다. 물론 개인마다 지은 업이 다르기 때문에 개인차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아집과 법집을 내려놓을 수 있는 만큼 해방되지 않을까 여겨진다.

아집과 법집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경험에만 집중하라는 뜻이다. 경험의 주체인 ‘나’나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정신적 물질적 대상인 ‘너’는 잊어버리라는 것이다. 잊는다는 의미는 관심을 두지 않아서 ‘나’와 ‘너’에 대해 무지해진다는 뜻이 아니고 ‘나’에 대한 경험과 ‘너’에 대한 경험을 저항하거나 회피하지 말고 관찰하고 음미하고 사색하라는 의미다. 즉 경험에 개방적이고, 경험을 반추하고, 경험으로부터 기꺼이 배우고자 하는 삶의 태도를 채택하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경험의 노예가 되지 말고 지혜를 발달시키는 방식으로 인생경험을 사용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경험으로만 존재해야 하는가? 경험의 주체인 ‘나’를 의식하는 것이 아집의 모양이고 경험의 대상인 ‘너’를 의식하는 것이 법집의 모양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 ‘나’를 의식하는 순간이 바로 갖가지 정서적, 심리적 번뇌를 낳는 순간이고, ‘너’를 의식하는 순간이 바로 갖가지 판단과 생각, 분별망상을 낳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서광 스님 한국명상심리상담연구원장 seogwang1@hanmail.net


[1305
호 / 2015년 8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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