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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서정주의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 같이’

기자명 김형중

사람들의 애틋한 마음 살펴보고 이별의 아픔 어루만지는 ‘송별시’

섭섭하게
그러나
아조 섭섭치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 같이…

인생은 사람과 만남으로부터 시작해서 이별로써 끝난다. 수많은 만남이 있지만 부모를 만나 이 세상에 태어나고, 부모의 품에서 자라고 성장해서 또 부모가 그랬듯이 새 연인을 만나 사랑하고 자식을 낳아 키우고 끝내 늙고 병들어 자식의 손을 놓고 영영 이별을 함으로써  인생을 마감한다.

미당 이별시 소재는 연꽃
구품극락 정토 만남 기약
시인의 자애로움이 담겨
아픔을 연꽃호수로 인도

이별은 슬픈 것이고 가슴 아픈 것이다. 만나는 사람과는 반드시 이별하는 것이 회자정리(會者定離)의 이법이요, 헤어지면 또 만나는 것이 거자필반(去者必返)의 법칙이다. 그러나 이별하고 그리움으로 다시 만날 수 있는 인연이 있고,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죽음의 이별은 영원히 만날 수가 없다. 그래서 아쉬움이 더 크고 슬픔의 고통은 갑절이 된다. 사랑하지 않으면 그리움도 없고 이별의 아픔도 없다. 이별이 없으면 그리움도 없고 만남도 없다.

저승은 너무 먼 곳에 있기 때문에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온 사람이 없어 실재(實在)를 증명할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다. 만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모두가 동의해서 다음 세상을 약속했다. 이 세상보다 더 아름답고 행복한 극락 천국을 약속했다.

옛 시를 보면 송별을 노래한 시에 명품시가 많다. 그것은 이별하는 사람들의 애틋한 마음을 노래하기 때문이다. 왕유(王維)의 송별시에서 보이듯이 당나라 때는 버들가지를 꺾어서 친구나 연인과 헤어지는 이별의 관습이 있었다. 그래서 한시에서 이별과 버드나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시어가 되었다. 버드나무 류(柳)와 머물 유(留)의 음이 같은 동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당(1915~2000)의 시에서 이별의 소재는 ‘연꽃’이다.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의 시구처럼, 미당은 이별과 만남의 무대를 ‘관무량수경’에 나오는 연꽃이 피는 구품극락 정토로 상정하고 그곳에서 만날 것을 기약하고 있다.

이 시에서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는 이별이 아니라 새로운 만남이다.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는 이별을 예고하는 이미 만난 소중하고 묵은 인연이다. ‘바람’은 인연을 상징하는 시어이다.

가신 님아, 너무 서러워 마라. “아조 섭섭치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내생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는 이별이다. 이별의 아픔을 잔잔하게 내생을 기약할 수 있는 연꽃 호수로 인도하는 시인의 자애로움이 있다. 이별을 노래한 미당의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 같이’는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영영 이별의 아픔을 어루만져주는 명품 이별시이다.

김형중 동대부중 교감·문학박사 ililsihoil1026@hanmail.net
 

[1306호 / 2015년 8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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