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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자성정혜와 수상정혜

기자명 인경 스님

본지는 대상을 아는 것을 아는 앎 자체

‘수심결’에서 보조국사는 정혜를 자성정혜(自性定慧)와 수상정혜(隨相定慧)로 구분한다. 기준은 관찰의 힘이 강한가 열등한가, 습기의 장애가 깊은가 얕은가이다. 정혜가 이미 자성에 갖춰졌다면 새롭게 다시 익힐 이유가 없다. 이런 경우 깨달음의 돈오가 중요할 뿐이다. 그러나 번뇌가 깊다면, 그래서 관찰의 힘이 약하다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점수의 길이 필요하다. 비록 자성이 그대로 정혜임을 깨달아 별도의 수행이 요청되지 않지만, 대치문(對治門)에서는 전혀 필요 없는 것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돈오만 주장하면 적응력 문제
점수만 주장하면 통찰력 문제
지혜는 상호보완 통해서 가능
돈오·점수 함께 존재하는 이유

대치문이란 번뇌에 따른 적절한 수행의 관점이지만 비유적으로는 병에 따른 처방이라고 해도 괜찮겠다. 확대하면 사회적 교화로서 근기에 따른 방편이란 의미로 해석할 수 있고, 혹은 번뇌에 따른 대처라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가 있다. 자성정혜란 정혜가 본래 자성에 구족되었음을 말한다면, 수상정혜는 다양한 상황과 근기에 따른 처방과도 같은 성격을 가진다. 전자가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돈오적 성격을 가진다면, 후자는 상황에 따른 다양성을 고려한 점수의 길을 염두에 둔 이해이다. 이들은 상호보완적이다. 돈오만 주장하면 현실적인 적응력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반대로 점수만을 주장하면 다양성의 본질에 대한 통찰을 이룰 수가 없다. 이것이 돈오와 점수는 늘 함께 존재해야할 이유이다.

심리치료적 의미에서 본다면, 점수는 중후한 장애에 대한 점진적인 접근을 요구하는 것이다. 번뇌가 깊다는 것은 발달상의 어떤 문제점을 가진다는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에 이런 경우 관찰의 힘을 강화하면서, 장애에 대한 점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만약에 고착된 어린 시절의 깊은 번뇌를 점진적인 방식이 아닌 너무 성급한 혹은 급진적인 방법을 선택한다면, 상황에 따라서는 오히려 역효과만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조금씩 그러나 든든하면서도 안전하게 번뇌의 본질에 접근하는 방식이 더 귀중할 때가 있음을 말하고 있다.

만약 산란한 마음이 치성하게 일어난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보조국사는 먼저 ‘이치에 따라서 산란함을 거두어서 마음이 인연을 따르지 않고, 본래의 선정에 계합한다.[稱理攝散 心不隨緣 契乎本寂]’고 말한다. 여기서 이치란 무엇을 말할까?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지만, 호흡이나 화두와 같은 명상의 주제에 집중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 그래야 흩어진 마음을 거두고 다른 인연에 끌려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야 근본적으로 존재하는 본질적인 고요함의 선정에 도달하지 않겠는가?

일상 상황을 심리치료적인 상황에서 보면, 감정이 압도당할 때 어떤 말도 효과가 없다. 감정이 가라앉고 정신이 돌아와야 상황을 판단할 힘이 생긴다. 마찬가지로 명상수행에서도 먼저 선정의 힘이 바탕돼야 지혜의 통찰이 가능해진다는 점에서 점진적인 접근이 유효하다.

반대로 만약에 혼침으로 멍하니 앉아만 있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점에 대해 보조국사는 ‘마음의 현상을 선택하여 그것이 본래 존재하지 않음을 관찰하고 미혹이 없음을 관조하여 본래적 앎에 계합한다.[擇法觀空 照鑑無惑 契乎本知]’고 한다. 여기서 택법(擇法)은 ‘특정한 심리현상을 선택하여 면밀하게 관찰한다’는 것이고, 그 결과로서 ‘텅 비어 존재하지 않고, 미혹도 또한 없으며, 오직 근본적인 본래적 앎에 도달하는’ 것이다.

본지(本知)란 대상에 따른 앎이 아니고, 그 대상을 아는 것을 아는, 앎 자체를 말한다. 거울 앞에 서면 거울은 대상을 비춘다. 이것은 대상에 대한 앎이다. 이 대상이 앞에 나타면서 생겨나는 앎이다. 이런 앎은 분별적인 앎이다. 그러나 거울 자체는 대상이 있든지 없든지 스스로의 앎이란 자질, 성품, 본성을 가진다. 이것을 근본적인 앎, 무분별의 앎이라고 부르는 마음, 지혜를 의미한다.

우리는 일상에서 대상에 대해서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데[見聞覺知], 이렇게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이것은 무엇일까? 춥고 덥고 기쁘고 슬퍼하는, 이것은 무엇일까?

인경 스님 명상상담연구원장 khim56@hanmail.net

[1306호 / 2015년 8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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