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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석승조(釋僧稠)-중

기자명 성재헌

승조의 가르침에 감동한 문선제(文宣帝)는 승조로부터 보살계를 받고 그 발아래 절하였다.

가르침에 감동한 황제
승조에게 보살계 받아
황제의 존경 깊어지자
주변 시샘·폄훼 심해져

“도가 사람을 넓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도를 넓히는 것이라 하더니, 그 말씀이 거짓이 아니었습니다. 이 제자가 오늘부터 평생 스님을 외호하는 시주가 되겠습니다. 저의 청을 허락해 주십시오.”

승조가 가만히 웃으며 대답하였다.

“폐하는 황제이십니다. 폐하께서 보살의 서원을 세우셨다면 온 백성을 보호하고 온 백성을 교화하는 데 힘쓰셔야 합니다. 저는 이제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

승조는 그렇게 40여일 동안 궁중에 머물다 어느 날 훌쩍 떠나버렸다. 그리움에 사무친 황제는 백방으로 스님을 수소문하여 다시 청하였다.

“번화한 궁중보다 깊은 산중에 머물고 싶어 하신다는 것을 이 제자가 모르는 바 아닙니다. 하지만 스님의 가르침을 잃어버린 저는 불안하기만 합니다. 감히 궁중으로 다시 찾아주시길 바라지는 않습니다. 도성 서남쪽 80리쯤 있는 용산(龍山)의 양지바른 곳에 정사를 지어 운문사(雲門寺)라 하였으니, 부디 그곳에 머물러 주십시오. 그저 가끔씩 안부라도 여쭐 수 있게 허락해 주십시오.”

황제의 간절한 청을 이기지 못해 승조는 결국 운문사로 처소를 옮겼다. 승조의 지도로 황제의 선정은 나날이 깊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황제가 승조에게 말하였다.

“제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몸소 체득하고 보니 불법의 원대한 종지는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습니다. 그런데도 저 법사라는 자들은 부질없이 글자나 들먹이면서 그것이 참된 불법인양 자부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그들에게 속아 헛되이 공력과 세월만 낭비했습니다. 세상을 오히려 더 시끄럽게 하는 저런 쓸데없는 짓은 몽땅 폐지해야 마땅합니다.”

황제의 존경심이 승조에게 쏠리자 당시 도성의 큰스님이란 자들은 그를 경쟁자처럼 여기며 경계하고 폄훼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황제가 당신에 대한 확고한 신뢰를 밝힌다는 것은 세속사로 보면 크게 반길 일이었다. 하지만 승조는 황제의 이야기를 듣고 도리어 얼굴을 찡그렸다.

“법사들이 전승하고 해설하는 경율론 3장은 그릇과 같고 선정은 맑은 물과 같습니다. 그릇이 없다면 맑은 물을 어디에 담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일러주신 선정이란 본래 말과 생각의 범위를 벗어난 것입니다. 하지만 말과 생각이 아니라면 장차 무엇으로 중생들을 교화하고, 무엇으로 선정으로 이끌겠습니까? 땅을 다지고 계단을 놓는 일은 매우 성가신 일이고, 그것만으로 편안히 앉고 누울 자리를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 번잡한 일을 성실히 수행하지 않으면 그 위에 아무리 정교한 건물을 세운다 해도 오래 가질 못합니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입니다. 계율을 익히고, 교학을 탐구하고, 불보살을 찬양하는 것 역시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는 좋은 방편임을 아셔야 합니다.”

예상치 못한 승조의 꾸지람에도 황제는 크게 기뻐하며 맹세하였다.

“오늘부터 저의 재산을 세 몫으로 나누어 한 몫은 나라를 위해 쓰고, 한 몫은 저 자신을 위해 쓰고, 한 몫은 삼보를 위해 쓰겠습니다.”

문선제는 운문사에 거대한 창고를 만들고 막대한 재산을 헌납했다. 승조를 후원해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무리를 늘리려는 심사였다. 돈과 비단, 이불과 담요를 실은 수레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운문사로 향했다. 하지만 승조는 편지 한 장과 함께 황제가 보낸 물품을 몽땅 돌려보냈다. 그 편지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재물과 이익으로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세속에서 쓰는 방법입니다. 폐하의 이런 행동은 불법의 홍포를 돕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교화를 방해하는 것입니다.”

호의를 거절당했지만 황제는 불쾌하게 여기지 않았다. 도리어 그 강직함에 감탄하며 승조에게 더욱 정성을 다하였다. 황제는 다달이 자신의 측근을 몰래 운문사로 파견해 사중에 부족한 물품들을 파악하게 하였고, 그 물품들을 또 몰래 사찰에 공급하였다. 하지만 소문이 퍼졌고, 승조에 대한 시샘과 폄훼가 다시 시작되었다. 황제는 근위대를 거느리고 직접 운문사로 행차함으로써 승조에 대한 주변의 험담을 일거에 불식시켰다.

성재헌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tjdwogjs@hanmail.net

[1306호 / 2015년 8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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