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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사용되는 불자 신심

최근 불교계 관계자로부터 의외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서울 강남에 위치하고 있는 한 유명사찰이 불자들이 공양 올린 쌀, 즉 공양미를 재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양미 한 포대가 이 불자, 저 불자의 공양을 통해 중복적으로 부처님전에 올려진다는 설명이다. 그는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공양미 재사용은 너무하다”고 한탄했다.

상세한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 사찰에서는 대부분의 사찰이 그러하듯 불전 공양을 위한 쌀 포대를 마련해 두고 공양을 원하는 불자들에게 판매하는 식의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문제는 일정 수량만을 마련해 두고 모두 판매가 되면 신도들의 눈을 피해 불전에 이미 올려진 공양미를 가져와 다시 판매한다는 점이다. 부처님오신날이나 초하루 등 공양미를 원하는 불자들이 많은 날에는 같은 공양미가 수차례나 돌고 도는 경우도 생긴다.

사실 공양미의 재사용 문제는 간혹 들은 바가 있다. 사찰 재정이 어렵거나 너무 높은 지대에 도량이 위치한 경우에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다. 그러나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데다 신도수도 적지 않은 사찰에서 으레 그래왔다는 듯 공양미를 재판매하고 있다는 사실은 불자의 한 사람으로서 더없이 안타깝고 씁쓸함을 느낀다.

공양미는 부처님이나 보살에게 신심과 정성을 담아 올리는 쌀이다. 신심 깊은 우리네 어머니들은 사찰이 아무리 높고 먼 곳에 있을지라도 머리에 쌀을 이고 묵언 걸음으로 부처님전에 공양했다. 때문에 공양미는 신심의 상징이기도 하다. 심봉사가 딸 심청이의 원력으로 몽은사 화주승에게 공양미 삼백석을 시주하고 눈을 떴다는 이야기에는 공양미에 담긴 무한한 공덕의 의미가 깃들어있다.

쌀은 먹는 음식을 대변한다. 음식은 몸을 건강하게 유지해 진리로 나갈 수 있도록 하는 토대가 되니 쌀 공양은 건강과 행복을 발원하는 마음이다. 쌀 공양으로 가족이 건강하고 무탈하길 발원했으며, 공양미로 사찰 대중과 배고픈 이들이 허기를 이기고 널리 그 공덕을 회향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쌀은 곡식의 씨앗이니 이를 부처님께 공양 올림으로써 성불의 씨앗이 되길 바라는 마음도 담긴다.

▲ 송지희 기자
그래서 여섯 가지 공양 중에서도 쌀 공양은 기쁨과 환희를 의미하며 ‘선열미(禪悅米)’라고도 일컬어진다. 많은 사찰에서 공양미를 모아 대중공양 혹은 만발공양에 사용하거나 소외계층에게 전달하는 등 주위의 어려운 이웃을 위해 회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해당 사찰의 입장에서는 공양미 재사용이 재정 효율성을 위한 선택이라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공양미에 담긴 불자들의 신심과 공덕의 의미를 외면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선택인지 고민해 볼 일이다.

송지희 기자 jh35@beopbo.com


[1307호 / 2015년 8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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