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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수련회-하

분별에 들러붙은 마음 떼내어 부처님에 바쳐라

▲ 김원수 바른법연구원장과 수행자들 질의응답은 즉문즉설이었다. 경어체로 하나하나 답하는 김 원장 대답은 ‘금강경’ 독송의 정진력을 북돋았다.

“업보가 나쁜 것인가?”

질문에 질문이 돌아왔다. 김선영씨는 쉬이 입을 열지 못했다. 김원수 바른법연구원장은 잘못된 생각이라고 했다. 끈끈한 관계, 즉 깊은 인연일수록 업보라 했다. 중생 아닌 부처님 입장에서 고통스러운 관계라는 의미랬다. 대상에 마음이 들러붙으면 고통스럽다는 가르침이다. “아들에게 붙은 마음을 떼라.” “떼고 싶지 않다.”

바른법연구원장 즉문즉설
‘부처님께 바친다’ 뜻 설명
‘금강경’ 마음닦는 법 배워
자만·이기심 등 분별 소멸
세미나서 개인체험도 공유

김씨는 거부했다. 그녀는 중학교 1학년인 아들 성적을 위해 학원에 보내면서 동시에 힘들어하는 아들을 느낀다. 학원 때문에 성적이 유지되고, 욕심 같아서는 더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색성향미촉법에서 마음을 떼야 합니다. 붙은 마음은 이기심 혹은 아상이라고 합니다. ‘나’에게서 벗어난 삶, 그것이 ‘금강경’에서 말하는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입니다.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자유롭게 내는 것이지요. 이 가르침을 믿고 실천해야 합니다.”

김 원장이 재차 물었다. “아들에게 붙은 마음을 인정하는가?” 그렇다는 답이 오자 김 원장이 말을 이어갔다. 

“‘사랑스럽다’는 표현 속에 ‘내 소유물’이라는 독소가 있는지 모릅니다. 마음을 떼면 소유하고자 하는 ‘탐(貪)’이란 독소가 빠집니다. 아이를 자유롭게 하세요. 이게 업보해탈입니다.”

김씨는 시커먼 마음을 봤다. 놀랐다. 마음에 탐이란 독소를 제거하기로 했다. 질의응답은 즉문즉설이었다. 수행자들은 ‘금강경’을 독송하고 공부하면서 생긴 의문점을 해소할 수 있었다. 경어체로 하나하나 돌아오는 대답은 ‘금강경’ 독송의 정진력을 북돋았다.

늘 밝게 웃고 쾌활한 모습이던 한 여성수행자는 질의응답 시간에 이기심을 발견했다. 그녀는 직장과 가정 등 관계된 인연 속에 자신이 빠지면 잘못되지 않을까 걱정이 생겼다. 그리고 일에 있어 성공을 바랐다. 질의응답으로 출세하고 싶은 이기적인 마음이 몸도 마음도 병들게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부처님을 시봉하는 삶’으로 전환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한 중년 남성은 아버지 죽음 뒤 호스피스 봉사활동을 했던 마음에 독소가 있었다는 점을 뒤늦게 알았다. 직장도 관두고 아버지 병간호를 했던 경험으로 아픈 이들을 돕고자 했지만, 호스피스는 아버지를 향한 미안함을 줄이려는 수단이었다. 보상심리가 무주상보시라는 허울을 뒤집어쓰고 있었던 것이다.

고 백성욱 박사의 가르침을 잇고 있는 바른법연구원의 ‘부처님께 바친다’는 방편에 대한 궁금증도 질의응답으로 해소됐다. 이응수씨는 의문이었다. 백발이 돼서야 부처님 가르침을 만났고, ‘금강경’ 공부에 빠졌지만 정작 ‘바치는 법’은 잡히지 않는 뜬구름 같았다. ‘금강경’ 열심히 읽고 올라오는 마음 챙겨서 부처님에게 바치는 그 방법을 몰랐다. 부정적인 생각을 긍정적인 생각으로, 즉 부처님 마음으로 바꾸라는 뜻인지 번뇌망상 등 분별을 내려놓으라는 말인지 혼란스러웠다. 화를 못 참고 확 내뱉는 자신을 돌아볼 때 ‘바치는 법’이 절실했다.

“문제는 화내는 게 아닙니다. 다스려야 할 화는 되풀이되는 화입니다. 두고두고 일어나는 화가 문제입니다. 억지로 누르면 폭발하지요. 이런 화는 반드시 바쳐야 합니다. 우선 ‘바친다’ 표현 앞에는 ‘부처님께’가 생략돼 있습니다. 그냥 바친다고 하면 내려놓는 것과 같습니다. 흔히 바치는 것을 내려놓음과 동일시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내려놓을 때 편안한 어떤 상황이나 관념을 떠올리며 그런 느낌을 받을 뿐입니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면 가볍겠구나’하는 생각과 분별심을 바꾸는 겁니다. 사실 마음이 편안해지기는 하지만 완전한 내려놓음은 아닙니다. ‘형상 없는 부처님’ 그러니까 참나 혹은 불성이라 표현되는 부처님께 분별심을 바쳐야 합니다.”

‘형상 없는 부처님’은 쉽게 이미지가 그려지지 않는 미륵존여래불이었다. 김 원장에 따르면 관음보살이나 아미타불 등 익히 듣고 본 불보살은 분별망상을 바치는 순간 마음속에 이미지가 그려진다. 관음보살의 ‘온화함’, ‘따듯한 품’ 등 관념 속에 분별이 다 사라진 것처럼 착각을 일으킨다. 때문에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 미륵존여래불이나 ‘금강경’ 독송으로 분별을 바친다. 믿음이 필요했다. 스승 달마가 제자 혜가에게 불안한 마음을 내놓으라 했을 때 본래 없던 근심을 깨달은 일화에는 스승의 가르침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됐다는 게 김 원장 설명이다. 근심을 내놓으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겠다는 스승의 말을 철썩 같이 믿었다는 것. 해서 대상에 붙은 마음을 떼라는 가르침을 믿고 떼는 척이라도 하는 게 ‘바침’이라고 했다.

“백성욱 박사가 들려준 일화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부처님이 대중을 가르치는데 모두 공부가 잘 됐습니다. 이에 부처님은 ‘그대들 모두 부처가 되는구나’하고 칭찬했습니다. 이 때 한 사람만 빼고 다들 ‘내가 공부 좀 됐구나, 이만하면 됐네’라고 생각했답니다. 자만심이 올라온 겁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훌륭한 가르침을 주신 부처님께 감사하다’하는 마음을 냈다고 합니다. 이렇게 바치는 겁니다. 그리고 이게 바로 부처님 마음이자 미륵존여래불입니다.”

▲ 금강경수련회 마지막 일정인 세미나.

각 분임별 숙소로 돌아가는 수행자들 발걸음은 가벼웠다. 다음 날 새벽 ‘금강경’ 독송은 달랐다. 1분부터 32분까지 한 글자씩 또박또박 읽어 내려갔다. 어둠이 야위고 빛이 깰 무렵, 수행자들은 ‘금강경’ 독송을 마쳤다. 박창규(72, 무애)씨는 자신의 변화가 놀라웠다. 그는 더 이상  ‘금강경’ 대중독송에 거부감이 없었다. 몇 독 남았는지 헤아리는 순간 들었던 지루함도 사라졌다. 4독이 금세 지나갔다. 자세도 바꾸지 않았다. 그처럼 수행자들의 금강경수련회 경험담은 분임별 토의주제에 녹아 이날 오후 세미나에서 생생한 발표로 이어졌다. 서로 박수와 웃음으로 공감했다.

하진기(58, 동봉)씨는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서 달마와 혜가의 안심법문(安心法門)을 떠올렸다. “편치 않은 마음 편안하게 해주십시오.” “그 불안한 마음 내놔 보거라. 편하게 해주리라.” 온몸 더듬으며 마음 찾던 혜가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아무리 찾아도 없습니다.”

달마가 답했다. “네 마음, 이미 편안해졌노라.”

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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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이 부처님 가르침이라는 믿음부터

직접 체험해보니

▲ 뜻도 모르고 읽었던 '금강경'이었지만 독송을 회향하면 가슴이 벅찼다.

조계종 소의경전이라는 ‘금강경’을 처음 완독했다. 뜻도 모르고 10여독 했지만, 사구게 등 익숙한 구절과 이에 대한 뜻으로만 대강 감 잡고 읽어 내려갔다. 그래서 궁금했다. ‘금강경’을 온전히 알지 못하는 경우에도 ‘금강경’ 독송이 수행으로서 마음닦기가 가능한지 의문이었다.

뜻 모른 채 독송효과 의문
불자로서 마음가짐 되새겨

결국 믿음이었다. 신해행증에서 신을 강조한 이유가 여기 있었다. ‘금강경’이 부처님 가르침이자 마음이라는 이해보다 가슴으로부터 생기는 믿음에서 출발했다. 김원수 바른법연구원장은 모르면서 읽는 ‘금강경’의 효과도 믿음에서 나온다고 했다.

“컴컴한 굴 속에 있는 우리에게 멀리서 불빛 비추면서 이리 오면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목소리가 들린다고 가정해보세요. 어디선가 보이는 것 같고 들리는 것 같으면 살기 위해 굴 밖으로 나가기 위해 정신없이 컴컴한 길 더듬으며 그쪽으로 갑니다. 갈수록 진짜 있는 듯 자꾸 실감이 되고 빛과 목소리가 더 뚜렷해집니다. 막연한 믿음으로 왔지만 실감하는 겁니다.”

신묘장구대다라니나 능엄신주가 떠올랐다. 뜻이 없는 것 같지만 그냥 무턱대고 외워서는 안된다. 이 다라니가 부처님이 설한 주문이라는 굳은 믿음이 있을 때 어떤 경지를 만나곤 하기 때문이다. 3박4일 금강경수련회는 수행자로서 불자로서 가장 기본적인 마음가짐을 깨닫게 했다.

현재 자신에게 닥친 문제들도 마음밖이 아닌 안에서 찾아야 한다는 가르침도 얻었다. 마음 안으로 시선을 보내고 보내면 여러 문제들도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최근 열심히(?) 추진 중인 이사가 여의치 않았던 이유는 ‘이사 가기 싫다’는 본마음에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사 상황이 좋아도 마음이 거부하고 있어 차일피일 미루다 그르친 경우가 더러 있었기 때문이다. 그 마음 바친 뒤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1307호 / 2015년 8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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