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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

기자명 하림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15.08.25 11:50
  • 수정 2015.10.22 12:06
  • 댓글 0

절에서 함께 일하던 25세 청년이 “며칠 다녀오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스님”이라는 문자만 남기고 어디론가 떠났습니다. 문자를 해도 답장이 없습니다. 누구와도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핸드폰은 일부러 받지 않습니다. 며칠이 지났는데도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언제 온다는 연락이 없습니다. 소식을 기다리는 부모님의 심정이 어떠할지 걱정되고 함께 일하던 식구들에게도 나중에 뭐라고 해야 할지 방향이 잡히지 않습니다.

절에서 함께 사는 한 청년의
갑작스런 가출에 걱정하지만
학창시절 가출 기억 떠올리면
걱정보단 기다리는 게 ‘지혜’

며칠째 밤이 되면 하루의 일이 남은 듯 잠이 오지 않습니다. 내일이라도 돌아오면 ‘크게 혼을 내야지’ 하다가도 ‘아니야 달래야지’ 하다가 어느 것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잠이 들고 맙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생각을 해보아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어제는 어느 자녀를 둔 보살님에게 오히려 물어도 보았습니다. 당신의 자녀가 며칠씩 대화를 거부하고 연락을 받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실 것이냐고요.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요.

그분인들 무슨 뾰족한 수가 있을까요. 다만 함께 걱정하고 위로할 뿐입니다. 한 분은 그냥 기다렸다고 하더군요. 마음이 열릴 때까지요. 그것이 옳은 것인지 밤새 자문해 봅니다. 그러면서 은사스님 생각을 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에는 자신의 경험 속에서 해법을 찾게 되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역할이 바뀌었을 뿐입니다. 저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때 빠짐없이 가출을 했습니다. 아니 그러고 보니 대학생 때도 했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그러고 보면 저는 가출인생이었습니다. 그러니 은사스님은 얼마나 답답하고 속이 상했을까요. 지금 그 청년의 가출을 겪으면서 스님의 심정을 이해하게 돼 감사한 마음이 더 깊어집니다.

‘이 녀석 오기만 해봐라’ ‘혼내줄 거야’라고 마음먹고 그 마음이 식지 않도록 더 잘못한 것을 떠올리면서 의지를 불태웁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입니다. ‘어디서 제대로 먹고 잠자리는 괜찮은 걸까? 얼른 안돌아오면 어쩌지’하는 걱정으로 변합니다. 제가 가출할 때에는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물론 어른들은 이해할 수 없는 이유들이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아마도 도저히 현실적이지 않은 내용들입니다. 그러나 현실 경험이 적은 저는 그것이 제 인생에서 가장 큰 고민이었고 당장에 해결하고 도전해야 할 가장 큰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나가보면 아닌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어떤 때에는 새벽에 나가 오전까지는 용기 백배였지만 저녁 무렵이면 꿈이고 용기고 다 사라지고 어디에서 오늘밤을 보내야 할지 걱정이 앞섰습니다. 또 어디서 밥을 먹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으로 온통 채워지곤 했습니다. 어떨 때는 좀 길기도 했습니다. 몇 개월이 지나서야 ‘이건 뭔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멀리 갈수록 돌아오는 길도 어려웠습니다. 경험은 좋지만 돌아올 수 없었다면 아마도 지금은 다른 길을 걷고 있을지 모릅니다. 나갈 때 용기보다 돌아올 때의 용기가 더 필요하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은사스님은 한 번도 돌아왔을 때 크게 혼낸 적이 없었습니다. 그냥 이유를 물어주고 어설픈 저의 설명을 묵묵히 들어주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었겠구나. 너의 선택이 너로서는 최선이었겠구나’라고 공감해 주셨습니다. 그리곤 ‘남들이 하는 학교를 마치고 나름의 길을 가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상좌의 가출로 걱정하고 힘들었지만 스님은 참고 인내하고 기다려 주셨습니다.

▲ 하림스님
미타선원 주지
긴 세월의 기다림 때문인지 요즘은 더 관계가 좋습니다. 3개월 마다 법문을 청합니다. 저만의 생각인지도 모르지만 스님을 뵈면 즐겁고 기쁩니다. 함께 하는 시간이 기다려지고 종종 뵙고 싶어집니다.

그 청년도 50살이 되었을 때 저와 스님같은 관계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하면서 기다립니다. 돌아오면 은사스님에게서 배운 대로 할 것 같습니다. 언제나 그런 힘을 가질 수 있도록 수행에 전념해야겠다고 발원합니다. 

 

 

[1307호 / 2015년 8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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