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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양산 통도사 향완

기자명 신대현

아름다운 무늬·완벽한 대칭으로 시선 사로잡는 걸작품

미술작품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언제나 대입해야 할 특별한 공식은 없지만, 그래도 몇 가지 기준으로 바라보면 감상하기가 훨씬 좋다. 예를 들어서 비율(portion), 대칭(symmetry), 집중(focusing) 등을 중심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고려시대 불교공예 대표작품
비율·대칭·집중 모두 압권
얇게 새긴 무늬 은실로 채워

당대 꽃피운 전통무늬 집합체
당초문·연꽃 등 ‘패턴의 향연’
새겨진 글은 조선시대작 추정
작품성 비해 낮은 관심 아쉬워

작품을 보자마자 단박에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 정도 내공은 수십 년 공부한 사람도 어려운 경지다. 아무리 전문가라도 한참 들여다보고 또 봐도 선뜻 확신이 들지 않아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푹 내쉬는 게 작품 분석이다. 하지만 일반 감상자들이 작품을 보면서 이런 고뇌를 할 필요는 없다. 앞서 제시한 세 가지 기준, “작품에 나오는 무늬나 인물이 비례 있게 자리하고 있는가?”(비율), “좌우 또는 상하의 길이 또는 너비가 정밀하게 일치하는가?”(대칭), “산만하지 않게 보는 사람의 눈을 효과적으로 끌어들이고 있는가?”(집중) 등을 위주로 해서 살피면 빠른 시간 안에 작품이 훨씬 눈에 잘 들어온다. 그런데 이런 미술 감상의 포인트는 대체로 그림이나 조각보다는 공예가 더 두드러지니 공예품을 많이 보는 게 감상안을 높이는 요령일 수 있다.

▲ 통도사 향완.

우리나라 불교공예 중에서 조형적 성취가 가장 뛰어난 분야 중 하나가 향로(香爐)인데 이런 사실이 어쩐 일인지 대중에게 그다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다. 고려불화 외에는 고려시대 불교미술이 그늘에 좀 가려져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고려시대 향로는 우리나라 공예품 중에도 특히 압권이고, 그 중에도 통도사 향완은 단연 뛰어나 비율, 대칭, 집중 등이 그야말로 더할 나위 없이 잘 드러나 있는 것이다. 통도사에는 보물 3점, 유형문화재 1점 등 모두 4점의 향완이 있다. 모두 고려 향완을 대표할 만한 작품들인데 여기서는 2011년에 보물 1735호로 지정된 향완을 소개한다.

향을 사르는 것은 부처님의 은덕을 기리는 것인 동시에 아울러 사람들 마음의 때까지 씻어준다고 믿기에 향을 담는 향로는 아주 중요한 존재다. 고려시대에서는 향완(香垸)이라고 많이 불렀다. 범종이나 금고(金鼓)와 마찬가지로 향로는 중요한 의식구여서 큰 공을 들여 정성을 다해 잘 만든 작품이 적지 않게 전한다.

1995년 부여에서 발견된 백제 금동 용봉 대향로는 삼국시대 공예의 정점이라 할 만하고, 통일신라시대 향로 중에는 미륵사지에서 발견된 금동향로가 대표 격으로 꼽힌다. 고려시대에 와서 철이나 금동뿐만 아니라 고려의 자랑이라 할 청자로도 만드는 등 재질이 다양해지고 형태도 더욱 세련되어졌다. 고려 향로는 통도사의 그것처럼 원통이 주류를 이루었고, 그 밖에도 사각형, 팔각형, 능형 등 다양한 편이다. 원통형의 경우 둥근 굽 위에 나팔처럼 밖으로 벌어진 몸체를 하고 맨 위의 구연(口緣)은 밖으로 벌어지며 넓은 전이 달린 모습이 가장 일반적이다. 이런 형태를 고배형(高杯形)이라고 하는데 그 기원은 멀리 3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오래전 신성한 의식 때 썼던 제기(祭器)가 그 원형일 것으로 추정된다.

통도사 향완에서 잘 나타나듯 고려시대 향로는 은입사(銀入絲)라는 기법을 사용한 것이 큰 특징이다. 은입사 기법은 특히 고려시대에 눈부시게 발달한 기술로, 겉면을 아주 얇게 파 무늬를 새긴 다음 거기에 은실을 얇게 꼬거나 펴서 두들겨 넣은 기법이다. 중국이나 일본은 비교가 안 될 만큼 고려의 은입사 수준이 압도적으로 뛰어나 고려 문화의 난숙함을 보여주는 대표적 ‘창조 문화’였으니, 불교 공예가 앞장서 이런 높은 수준을 이끌어냈던 것이다.

▲ 향완의 다리 부분.

통도사 향완을 보다보면 그 비율이 정말 훌륭하다는 점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좋은 비율은 전체적인 모습을 단정하고 균형 잡히게 하여 아주 단아하다는 느낌을 갖게 만든다. 표충사 향완 등 고려시대 향로 대부분 높이와 입지름[口徑] 비율이 거의 1:1을 유지하는데 비해 통도사 향완은 높이가 평균치보다 10퍼센트 쯤 더 크다. 이 점이 이 작품의 비례감을 좋게 하는 이유 같다. 이 작품 이후 고려 후기가 되면 이런 완벽한 비율은 점점 무너져가고 다소 둔중해지다가 조선시대로 이어진다. 통도사 향완의 우아한 나팔형 다리도 더 짧아져 나중에는 옆으로 심하게 벌어지지만, 이 작품에서는 아직까지 균형감과 비율이 잘 유지되고 있다.

고려의 향완에는 보상당초, 연당초, 운룡(雲龍), 봉황, 포류수금문(蒲柳水禽文) 등 당대에 꽃을 피웠던 갖가지 무늬가 모두 무대 위로 걸어 나오고 있다. 가령 ‘포류수금문’은 버들나무를 배경으로 해서 오리가 헤엄치는 연못이 있고 하늘에 새가 나는 무늬장식으로 고려에서 가장 유행했던 패턴이었다. 이 통도사 향완에도 고려 향완의 이런 여러 가지 전통 무늬의 잔영이 잘 남아 있으니 통도사 향완의 미덕은 아름답고 화려한 무늬로 더욱 돋보인다.

이런 아름다운 무늬는 완벽한 대칭으로 인해 더욱 빛난다. 원통형이면서도 자세히 보면 좌우와 상하에 자리한 무늬들이 서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배치되어 있음을 보게 된다. 비율과 더불어 대칭이 조화를 잘 이루어 여러 개성 있는 다양한 무늬들이 서로 완벽하게 어우러지고 있는 것이다. 몸체 외에 다리 쪽에도 연꽃무늬를 둥글게 돌렸고, 그 아래에 붙은 받침도 2단 몰딩 형식의 턱을 두어 문양대를 분할해서 위쪽에는 간략화 된 당초문을, 아래 단에는 구름 형태를 넣었다. 가히 패턴(pattern)의 향연이라 할 만하다. 당초문을 어찌나 잘 만들었는지 흡사 구름이 떠나가듯 혹은 시냇물이 쉼 없이 흘러가듯 유려하기가 그지없다. 이렇게 맵시 넘치는 무늬를 달리 어디서 볼 수 있을까.

또 여기에 범자(梵字)마저도 디자인적으로 장식되었다. 사실 이 범자 무늬는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역할을 한다. 무늬가 너무 많으면 자칫 사람들의 시선이 분산되어 아름다움을 옳게 감상하기 어렵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둥근 윤곽으로 둘러싸인 이 큼직한 범자가 있음으로 해서 주변의 여러 문양들이 이리 모아지고, 따라서 시선도 자연스럽게 집중시키는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 탁월한 디자인 감각이고 ‘포커싱’의 아주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범자 밑에는 노부 받침이 있고, 그 아래에 붙은 다리는 아래로 가면서 점차 넓게 퍼지다가 끝단으로 가면서 둥근 몰딩이 나온다. 또 그 아래에도 또 다른 둥근 받침을 붙임으로써 향로의 안정성과 미감을 높였다. 다리 위쪽은 세로줄을 기다랗게 두어 구획해 부분적인 대칭 효과를 주고 있다. 둘로 나누어진 구역은 각각 꽃술이 표현된 연잎을 죽 둘러서 역시 알맞은 비율이 유지되도록 신경 써서 장식한 게 돋보인다. 또 받침에도 구름과 더불어 연꽃과 당초무늬가 장식되었는데, 굵고 가는 선을 적절하게 구사하며 얼마나 사실적으로 잘 표현했는지 연꽃과 당초가 향에서 피어나오는 연기를 가득 머금고서 구름과 함께 하늘로 훨훨 날아올라가는 것 같다.

공예를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려면 기본적인 제작기법을 알아두는 게 필요하다. 다른 장르와 달리 공예는 도구와 기술이 풍부하게 동원되기 때문에 어떤 기법이 사용 되었는가를 봄으로써 시대적 특징을 구분 지을 수 있어서다.

고려시대 향완은 향을 꽂고 사르는 원통형 노부(爐部), 받침에 해당하는 나팔형 대부(臺部) 등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고, 여기에다 맨 위 전이 달린 입부분과 대부 받침 등으로 좀 더 세분하기도 한다. 노부와 대부는 따로 만들어서 결합시키는 방식을 쓰는데, 통도사 향완도 노부 맨 아래에 구멍을 뚫고 대부 꼭대기에 붙인 리벳(rivet) 같은 못을 끼워 서로 고정시켰다. 또 맨 위 전도 따로 만들어서 붙이는 경우도 있다. 크게 통짜 하나로 만드는 것에 비해 이렇게 여러 부분을 따로 만들어 조립하는 것은 기술력이 뒷받침 되어야 하고 공정도 길어지지만 장점이 많다.

▲ 표충사 향로.

우선 크기가 큰 대작을 만드는데 필수적인 기법이고, 아울러 세부 무늬를 섬세하고 다양하게 장식하는데도 필요하다. 이처럼 예술적 상상력이 높은 경지까지 발달되었고 기술력이 이를 뒷받침할 수 있게 되면서 고려 향로의 미적 성취가 이루어진 것이다.

바깥으로 벌어진 구연의 전 밑쪽에 ‘施主 嘉善大夫 戶曹 鄭仁彦 子□□ 鄭光厚 淨房寺 施納 通度寺’라는 글자들이 새겨져 있다. 아주 작은 점들을 쪼아서 연결해 만든 이른바 점각(點刻)이다. 작품에 글자가 함께 있는 것은 역사성을 높여주므로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문제가 하나 생긴다. 가선대부(嘉善大夫)라는 직함은 조선시대에 나온 것이니 그렇다면 이 작품은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형태와 양식으로 보면 분명 고려시대 것인데 어찌된 일일까? 해답은 이 글자들이 향완 제작 때 만든 게 아니라 나중에 새긴 것으로 보면 나온다.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향완에 조선시대 때 이것을 갖고 있던 사람(아마 정인언(鄭仁彦)일 것이다)이 이것을 통도사에 시주하면서 자신들의 이름을 새긴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글씨를 새긴 기술이 고려시대에 나오는 것과는 좀 달라 보이기도 한다.

▲ 흥왕사명 향완.

우리나라 향로의 뛰어난 작품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중흥사명(重興寺銘) 향완, 국립박물관 소장 향완, 밀양 표충사 향완, 흥왕사명 향완(서울 리움미술관) 그리고 통도사의 향로 등 여러 점이 있다. 이들 모두 다 우리나라 향로 중 가장 윗길에 둘 만한 작품들이다. 특히 지금 소개한 통도사 향완은 기본적인 외형과 은입사, 세부 문양에서 고려 후기 향완의 전형적인 형태를 잘 보여주는 걸작이라 보물이라는 품격에 걸맞은 높은 작품성을 보여주고 있다. 고려 불교공예, 나아가 고려 불교미술이 이룬 찬란한 성취로 보건대 앞으로 지금보다 좀 더 조명을 받아도 될 것 같다.

신대현 사찰문화연구원 대표 buam0915@hanmail.net

[1307호 / 2015년 8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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