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6. 밀양 만어산 만어사

용왕, 해탈의 흔적 소리에 담아두다

▲ 만어사 앞 암괴류 전경. 암괴류는 만어산 중턱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폭 100m에 길이만도 500m에 이른다. 하늘에서 내려 보면 암괴류 전체가 딱 물고기 모양이다.

“만어!  돌물고기만 이르는 게 아닌 듯싶다. 코스모스, 소나무, 사람도 만어다. ”

 3대 신비가 서려 있는 경남 밀양으로 떠났다. 밀양의 3대 신비란 한여름에도 얼음 어는 얼음골 계곡, 국난이 있을 때 땀 흘리는 표충비, 그리고 바위에서 종소리가 나는 만어사 경석을 이른다. 그 중 돌에서 나는 종소리가 듣고 싶었다.

묵직한 바위 제 스스로 소리 내는 건 아니다. 누군가 작은 돌로 가볍게 톡톡 쳐야만 제 소리를 내는데 그 소리 들은 사람 모두 ‘맑은 종소리 같다’고 한다. 그래서 소리내는 돌 ‘경석(磬石)’이라 불린다. ‘바위와 종’이라는 이색적 어감에 ‘돌과 소리’가 얹어지니 그 소리 어떨지 상상만 해도 신비롭다. 그 오묘함 체험하려면 저 앞에 서 있는 만어산(萬魚山)을 올라야 한다. 해발 670m 산 정상 부근에 만어사(萬魚寺)가 있고, 그 절 바로 아래 너덜지대에 종소리 내는 바위가 가득(암괴류·岩塊流)하다고 했다.

▲ 만어사 전경.

8월 끝자락서 불어오는 솔바람이 나그네를 좀 더 깊은 숲으로 이끈다. 일연 스님도 이 길을 걸었다. 아마도 밀양 옆 청도 운문사(雲門寺)에 주석하며 선풍(禪風) 일으켰던 그 즈음(1277∼1281년)일 게다. 지척의 밀양서 들려오는 만어사 전설에 일연도 귀가 솔깃했을 터. 왜 아니겠나. 바위서 종소리가 난다는데.

만어사 전설이 ‘관불삼매경(觀佛三昧經)’의 ‘용과 나찰녀’와 유사하다는 것쯤이야 이미 알고 있었을 일연. 그러나 직접 두드려 보고 싶었을 것이다. 정말 바위서 종소리가 나는지! 청도에 머물 때 참배 못하면 언제 다시 찾아 확인할 수 있겠나 싶어 작심하고 이 산을 올랐을 게 분명하다. 실제로 일연은 예불을 올린 후 너덜지대로 내려가 돌 하나하나 쳐보며 그곳에 산적한 바위 3분의 2가 종소리 낸다는 사실을 확인했더랬다. 재미있는 만어사 이야기 보따리 ‘삼국유사’에 풀어 놓았다.

만어산 인근 지역(지금의 삼랑진)에 흉년이 들었다. 그것도 4년 연속이다. 이유는 한 가지. 독룡(毒龍) 한 마리와 나찰녀의 애정행각 때문이다. 한 명의 나찰도 아닌 다섯 나찰녀와 통했는데 정분 나눌 때마다 번개가 내리치고 비가 쏟아져 내렸다. 오곡백과인들 제대로 영글까. 어느 날 김해 가야의 왕 김수로가 행차했다. 삼랑진 기관장과 유지들이 직언했을 것이다. 경제파탄의 주범인 독룡과 나찰녀를 물리치지 않는 한 지역경제는 살릴 수 없다고. 김수로왕, 주술을 부려보았지만 독룡을 물리치는 데 실패했다. 결국 김수로왕은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께 법을 청했다. 부처님 설법에 감명한 나찰녀가 오계를 받으니 폐해가 없게 되었다. 불법의 위력에 동해 용왕도 감탄해 이곳 만어산을 찾은 듯싶다. 동해의 어룡(魚龍)이 바위로 변하여 골짜기에 가득 찼는데 각기 종경(鐘磬)소리가 났다.

일연은 아울러 ‘관불삼매경’ 제7권 속 이야기 한 토막도 상세하게 기록해 놓았다. 부처님께서 악귀굴이 있는 야건가라국의 아나사산(阿那斯山) 남쪽에 이르렀을 때 다섯 악귀(나찰녀)가 암룡으로 변신해 독룡과 사통하고 있었다. 용이 우박을 내리고 악귀가 난행을 저지르니 기근과 역질이 4년 동안이나 계속됐다. 이 난제를 해결하고 싶었던 야건가라 왕은 천지신명에게 기도를 올렸으나 헛수고. 어느 날 ‘인도 정반왕의 왕자가 도를 이루어 석가모니라 부른다’는 소식을 들은 왕은 부처님을 향해 예를 올리며 간청한다.

“오늘날 불교가 이미 일어났다고 하는데 어찌하여 이 나라에는 아직 이르고 있지 않습니까?”

세존은 1만명의 대화불을 보내 용왕과 나찰녀를 항복시켰다. 용왕은 부처님께 이 나라에 계속 머물러 달라고 청했다. 부처님은 “네 청을 받아들여 나찰석굴에 앉아 1500년을 지내겠다” 하시고는 몸을 솟구쳐 바위 속으로 들어갔다. 바위는 명경(明鏡)과 같았는데 멀리서 보면 부처님이 나타나고 가까이서 보면 나타나지 않았다.

일연은 ‘서역기’ 제2권이 전하는 이야기도 전했다. 용왕이 악한 마음을 일으켜 한 나라를 폐망하려 하자 여래가 이를 알고 신통력으로 다스렸다. 여래로부터 불살생계를 받은 용왕은 부처님이 굴 속에 머물며 공양 받으시기를 간청했다. 그러자 여래는 “내가 장차 적멸에 들 것이니 너를 위해 내 그림자를 남겨 놓겠다. 독한 마음이 일어날 때 내 그림자를 보면 거친 마음이 그칠 것이다” 했다.

만어사를 참배하며 일연은 독룡과 나찰녀, 용왕과 부처님의 그림자 ‘불영(佛影)’에 얽힌 연관성을 파헤쳤던 것이다. ‘삼국유사’에서 ‘물고기 산 부처님 그림자’ 뜻의 ‘어산불영(魚山佛影)’ 제목으로 만어사 전설을 풀어놓은 연유가 여기에 있다.

또 하나의 기록. ‘동국여지승람’과 ‘택리지’가 전하는 만어사 이야기도 들어야 한다. ‘삼국유사’ 속 ‘동해의 어룡(魚龍)이 바위로 변해 골짜기에 가득 찼는데 각기 종경(鐘磬)소리가 났다’는 대목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동해 용왕의 아들이 탄식하고 있었다. 자신의 수명이 다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지금의 김해 땅 무척산에 머무는 신승(神僧)을 찾아가 사연을 전하고는 여생을 보낼 만한 곳을 일러 달라 간청했다. 신승의 한마디가 단순명쾌 하면서도 일품이다.

“가다 멈추는 곳이 그곳이다.”

▲ 미륵전에 안치돼 있는 ‘미륵’은 신묘한 기운을 내뿜는다. 임진왜란, 6·25한국전쟁 등의 국난이 있을 때마다 이 미륵 역시 표충비처럼 땀을 흘렸다고 한다.

용왕의 아들이 길을 떠나자 수많은 물고기떼가 그의 뒤를 따랐더랬다. 용왕의 아들이 멈춘 곳이 지금의 만어사. 절에 이른 직후 용왕의 아들은 미륵불로 변했고, 그를 따르던 수많은 물고기들은 크고 작은 바윗돌로 변했다.

장관이다. 너덜지대에 바위가 가득하다. 장담컨대 물고기 바위 찾는 건 어렵지 않다. 눈길 머무는 곳 마다 펄떡펄떡 뛰고 있다. 희유한건 대부분의 돌물고기들이 만어산 정상을 밟고 하늘로 승천하려는 듯 산 꼭대로 머리를 쳐들고 있다는 점이다. 작은 돌 집어 바위 한 번 쳐보고 싶은 마음 일었지만 애써 눌렀다. 일연 스님이 이미 확인했지 않은가. 그리고 저 돌물고기들 전부 천연기념물이다.

용왕이 미륵으로 변했다면 그 미륵은 저 미륵전에 있을 터.

놀랍다! 저리 큰 바위가 어찌 그리 물고기를 꼭 닮았는가 말이다. 여느 암석의 질감과는 확연하게 다른 질감을 보여주고 있다. 붉은 빛도 감돈다. 불가사의한 기운이 미륵전을 꽉 채우고도 남아 저 먼 산 위 하늘로 뿜어져 가는 듯하다. 미륵전에서 암괴류를 바라보니 수많은 물고기들이 미륵에게 법을 청하는 듯하다. 미륵의 일성이 들려온다.

“정진하고 정진하라!”

▲ 천진난만한 돌고래도 바다와 강을 거슬러 헤엄쳐와 이곳에 닿았다.

삼층석탑 앞 샘에서 물 한 모금했다. 그러고 보니 만어사 오르는 내내 그 흔한 물 한 줄기 보지 못했다. 계곡도 있었는데 말이다. 그 많은 물, 어디로 갔을까? 그리고 저 많은 바위, 어디서 왔을까?

▲ 거대한 암괴류에도 길은 나 있다.

물 한 모금 더 했다. 표주박 내려놓는 순간 한 생각이 스쳐갔다. 그렇다. 이 샘물! 땅 아래서 솟구쳐 오르고 있지 않은가. 암괴류로 눈을 돌렸다. 그래, 그런 거야. 저 너덜지대 속으로 큰 물줄기가 흐르고 있는 거다. 그렇다면 저 물고기들 진짜 물 위를 헤엄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렇다. 동해의 용과 한 무리의 물고기들은 동해바다와 낙동강, 그리고 만어산 계곡을 거슬러 여기에 이른 것이다. 부처님 법 듣고 해탈해 적멸에 들려고 그 길고 긴 물길 헤엄쳐 온 게다.

▲ 만어사 운해는 밀양8경 중 하나로 손꼽힌다.

만어! 돌물고기만 이르는 게 아닌 듯싶다. 코스모스, 소나무, 사람도 만어다. 그리고 부처님 그림자, 굴 속 바위나 저 돌물고기에만 스며있겠나. 삼라만상에 배여 있겠지. 살면서 멀리할 게 무엇일까? 무엇을 멀리하면 부처님이 보이고, 무엇을 가까이 하면 부처님을 볼 수 없는 것일까?

▲ 3층석탑도 먼산 위로 피어오르는 운해를 감상하고 있다.

히야! 8월의 하얀 운해가 이른 아침 멋지게 피어오르고 있다. ‘한 폭의 수묵화’란 이런 광경을 두고 하는 말이겠지. 만어사 화두는 잠시 접자. 지금은 밀양8경 중 하나라는 ‘만어사 운해’를 감상해야 할 순간이다.

채문기 본지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도움말]

 

길라잡이

들머리는 경남 밀양 삼랑진 초등학교. 삼랑진초등학교서 대형버스 주차장(현수막이 걸려 있다)까지는 약 5.8km. 만어사 주차장까지 이어지는 도로(약 2km)가 있지만 폭이 좁아 대형버스는 위험하므로 이곳에 주차해야 한다. 가능한 한 승용차도 이곳에 주차하기를 권한다.
만어산이 내주는 풍광이 일품인데 차를 이용하면 만끽할 수 없다. 만어산장을 지나면 오르막길 끝에 만어사와 표충사로 갈리는 삼거리가 나온다. 삼거리 정 중앙에 만어사 산길로 이어지는 돌계단이 있다. 대형주차장부터 만어사 주차장까지 도보거리는 1.5km. 오르막길이 있지만 1시간10분이면 충분하다.

이것만은 꼭!

 
삼층석탑: 고려중기 조성된 것으로 현재 보물 제446호로 지정돼 있다. 종소리 난다는 소문이 퍼져 직접 두드려 보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러지 마시라. 훼손된다.

 

 

 

 

 

 
미륵전: 웅장하면서도 날렵해 보이는 전각이다. 미륵바위, 미륵불로 불리는 고기 모양의 자연석이 안치되어 있다. 전각 뒤편으로 돌아가면 미륵바위 후미를 볼 수 있다.

 

 

 

 

 

 
소원바위: 큰 바위 위에 무게 10kg 정도의 작은 돌(소원석)이 있다. 성인이라면 누구나 쉽게 들 수 있지만, 소원을 빈 후 들었을 때 잘 안 들릴 때가 있다고 한다. 바위가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무언의 징표로 사람들은 여기고 있다.

 

 

 


[1308호 / 2015년 9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