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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문화포교-대운사 부산불교학당

시대의 언어로 부처님 가르침 아로새기는 복합 문화 공간

▲ 쿠무다의 에프터눈 티 강의는 경남지역 곳곳에서 사람들이 찾아올 정도로 유명하다. 스님이 차에 대해 강의하는 모습은 어느새 지역의 명물이 됐다. 사진은 8월28일 열린 에프터눈 티 강의에서 스님과 참석자들.

8월28일, 부산 송정해수욕장 인근에 자리 잡은 카페 ‘쿠무다’에서 에프터눈 티(afternoon tea) 강의가 열렸다. 차의 기원과 종류는 물론이고 티타임에서의 예절까지, 강의는 광범위한 내용으로 짜임새 있게 진행됐다. 부산뿐 아니라 경남지역 곳곳에서 온 사람들은 옹기종기 모여앉아 강의 내용을 필기하거나 질문을 던지며 진지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3시간에 걸친 강의가 마무리될 즈음에는 15종에 이르는 차를 시음하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마련되기도 했다. 19세기 중반 영국 귀부인들이 홍차에 샌드위치, 스콘, 케이크 등을 곁들여 마시면서 시작됐다는 ‘티타임(tea time)’이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는 이곳에서 강사로 나선 이는 놀랍게도 스님. 사실 쿠무다는 대운사(주지 주석 스님) 부산불교학당이 운영하고 있는 복합 문화공간이자 부처님 가르침을 시대의 언어, 시대의 감각으로 아로새기고 있는 도심 속 전법도량이다.

도량 1층에 카페 ‘쿠무다’ 조성
다양한 강의·북 콘서트 등 개최
갤러리에서는 매달 전시 열어

복층 공간에는 각종 불서 비치
처음에는 손님으로 방문했지만
2층 법당 찾는 젊은이 늘어나
‘문화 통한 포교’ 모범 사례로

산스크리트어로 ‘하얀 연꽃’이라는 뜻을 지닌 쿠무다는 대운사 부산불교학당이 문화포교에 대한 원력을 바탕으로 새롭게 거듭나며 탄생했다. 2013년 8월, 함양 대운사 주지 주석 스님은 해운대 달맞이길에 있던 부산불교학당을 현 위치로 옮기면서 1층 공간을 모두 활용해 쿠무다를 조성했다. 현재 ‘커피 거리’로 젊은이들에게 각광받고 있는 그곳에서도 쿠무다는 세계 각국의 커피와 차, 맛깔스런 디저트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더구나 카페 한편에는 별도의 갤러리 공간이 있어 인기가 높다. 전시 기간은 1개월이며 자신의 전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작가들만도 10여 명에 이를 정도다. 쿠무다 갤러리에서는 도현 스님의 만다라전을 비롯해 일반 작가들의 작품도 전시돼 왔으며 현재는 필명 ‘어라 스님’으로 유명한 지찬 스님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 쿠무다 한편에 별도의 공간으로 마련된 갤러리.

쿠무다가 생산하고 있는 문화콘텐츠는 이뿐만이 아니다. 카페에 들어서면 곳곳에 책들이 꽂혀 있어 어떤 자리에 앉더라도 쉽게 독서를 할 수 있다. 불서 아닌 일반 책들이 그득 들어찬 카페에서 사람들은 거부감 없이 책을 읽고 차를 마시며 일상 속 작은 휴식의 시간을 갖는다. 나아가 주석 스님은 매달 한 차례 독서모임을 개최하고 있으며 두 달에 한 번 북 콘서트도 연다. 그동안 북 콘서트에서는 혜민 스님, 시인 황동규·정호승, 소설가 김연수, 방송인 이수근, 이계진 등 저명한 인사들이 차례로 나서며 부산시민들에게 행복을 선사했다.

▲ 방송인 이계진씨 초청 북 콘서트의 모습.

강좌 또한 눈여겨볼만 하다. 이날 열린 에프터눈 강의처럼 한 번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마카롱 강의는 매주 목요일 정기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특히 에프터눈 강의에서 사람들이 그 훌륭한 맛에 감탄사를 연발하게 했던 마카롱과 스콘, 케이크, 샌드위치는 주석 스님이 새벽부터 직접 만든 것이다. 마카롱 강의는 이와 같이 수준 높은 디저트를 배울 수 있는 기회이기에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이처럼 쿠무다는 지역사회를 위해 다채로운 문화콘텐츠를 생산하며 부산시민들이 사랑하는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러나 쿠무다의 역할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쿠무다의 진정한 의미는 복층에서 시작된다. 1층 카운터 옆 계단을 올라가면 오로지 불서만을 위한 공간이 나온다. 전망이 확 트여 있는 복층에 올라온 사람들은 편안해진 마음으로 불서를 읽으며 불교를 접한다. 손님 대부분이 젊은 층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거부감이 들게 하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포교를 하는 셈이다.

복층에서 나와 한 층을 더 올라가면 법당을 만날 수 있다. 여느 법당과 달리 갤러리 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법당에서 쿠무다의 의미는 완성된다. ‘문화를 통한 포교’라는 주석 스님의 발원이 공간의 흐름을 따라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마카롱 강의와 함께 사찰음식, ‘법화경’, 기초교리 강의가 열리는 것도 쿠무다를 품고 있는 대운사 부산불교학당의 의미를 더욱 깊게 만들고 있다.

실제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쿠무다를 통해 불교에 귀의하고 있다. 북 콘서트, 전시회, 사찰음식 강의 등에 참석한 사람들은 이 공간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불교에 대한 관심을 키워나간다. 이웃종교를 믿던 사람이 수십 년 신행생활을 한 불자보다 더욱 열정적인 불자로 거듭났던 사례도 있다. 젊은이들은 스마트폰 SNS에 ‘2층 법당에서 108배를 하고 내려와 커피 한잔’ ‘스님이 하신다는 카페, 신기하다’ 등의 글을 올리며 쿠무다를 적극 홍보하고 있다. 스마트폰을 통해 구축된 사회관계망의 강력한 영향력 속에서 대운사 부산불교학당은 그렇게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때때로 젊은이들은 애인과의 이별, 취업문제 등 청춘의 고민을 주석 스님에게 털어놓으며 상담을 요청하기도 한다. 주석 스님은 허심탄회하게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소통하고 고민을 함께 나눈다. 이따금 홀로 법당에 올라가 어두운 표정으로 앉아있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주석 스님은 슬그머니 법당 문을 닫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배려한다. 그들은 쿠무다에서의 시간을 통해 결국에는 부처님 법과 가피를 만나게 될 것이다. 법당만 덩그러니 있었다면, 가만히 자리만 지키며 불자가 되길 기다렸다면 결코 가능하지 않았을 일들이 부산 도심에서 펼쳐지고 있음이다.

▲ 송정해수욕장 인근에 자리 잡은 대운사 부산불교학당과 쿠무다 전경.

대운사 부산불교학당과 쿠무다가 입소문을 타면서 불교계에서도 반향이 일어나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부산연합회에서 실무를 보고 있는 스님들은 1주일마다 한 번 쿠무다에 모여 회의를 연다. 주석 스님은 부산연합회에서 문화국장 소임을 맡고 있기도 하다. 또 전국 각지에서 스님들이 신도를 데리고 방문한다. 지속적으로 쿠무다를 찾는 수많은 스님들은 차를 마시며 정취를 즐기거나 주석 스님에게 카페 운영 노하우를 물어보기도 한다. 그렇게 지역불교계 사랑방으로서 쿠무다는 또 하나의 의미를 키워나가고 있다.

쿠무다 운영에 매진하고 있는 주석 스님은 현재 복합 문화대안학교의 건립을 꿈꾸며 계획을 세워나가고 있다. 창의적인 학생들을 불교적 정서 속에서 키워내는 불사를 펼치겠다는 오랜 꿈이다.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주석 스님의 ‘복합 문화대안학교’가 탄생하는 날, 이 땅의 불교는 시대의 언어와 시대의 감각으로 세상과 대화하며 문화포교의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될 것이다.

김규보 기자 kkb0202@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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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향유’할 수 있는 사찰 만들고 싶다”

대운사 주지 주석 스님

▲ 주석 스님
주석 스님이 백화점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다섯 살 정도 되는 아이가 놀란 표정을 짓더니 “스님도 백화점에 와요?”라고 물었다. 한국불교의 암울한 현실을 드러낸 당시 상황을 스님은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불교가 자칫 박물관 속 문화재로 남게될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 시작된 문제의식은 오늘날 대운사 부산불교학당과 쿠무다를 만들어낸 동력이 됐다.

스님은 “노래 한 구절, 한 점 그림에서도 충분히 영적 희열을 느낄 수 있다. 그러한 관점에서 문화콘텐츠에 불교적 요소를 가미한 포교를 펼치고자 했고 결국 쿠무다를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도량이 스님 소유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문화를 생산하는 공간,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스님들이 먼저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님은 얼마 전 대한불교조계종 부산연합회장이자 범어사 율주인 수진 스님과의 대화에서 “신도 보시에만 의존하는 것은 점점 어려워지고, 또 그래서도 안 된다. 사찰도 카페 등을 통해 자체경영이 돼야 한다”고 말한 것에 깊이 공감했다. 주석 스님이 생각의 전환, 고정관념 탈피를 한국불교계의 당면 과제로 삼아 시대와 호흡하는 불교를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물론 대운사 부산불교학당이 개원한 지 2년밖에 안 됐기에 재정적 어려움도 있다. 그럼에도 뚝심 있게 나아가고 있는 것은 승가대 졸업 직후 하루에 다라니 1000독을 하며 1000일 동안 기도를 이어갔던 스님의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것은 바리스타와 티소믈리에, 파티쉐 전문과정을 이수하고 영어 통번역으로 박사학위까지 받는 등 다방면에 걸친 문화 섭렵의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스님은 “마냥 머물러만 있으면 수행자가 아닌 생활인이 될 수밖에 없다”며 “보다 많은 스님들이 불교가 새로운 이미지로 거듭 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행동으로 옮길 때, 결국에는 시대와 호흡하는 불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308호 / 2015년 9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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