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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마음-중

조건에 따라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능력

▲ 일러스트=김주대 문인화가·시인

일체유심조의 ‘마음’은 내 마음이 아니라 내게 다가와 나를 둘러싼 것들에 속한 마음이다. 음식에 마음이 속한다는 말이나 TV에 마음이 있다는 말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의식’이 아니다. 나의 마음이라고 할 때에도, 그것은 나로 하여금 어떤 행동을 하게 하는 것이고, 그 행동에 의해 내가 만난 무언가에 작용하여 영향을 미치게 하는 것이다. 양파와 감자에 작용하여 잘게 자르도록 하고 섞어서 요리를 하는 것이 나의 마음이라면, 마찬가지로 나에게 작용하여 어떤 변화를 야기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마음이라고 해야 한다. 내가 침을 흘리게 만들고, 내가 생각지 못한 쇼핑을 하게 한 것이 있다면 그것을 마음이라 해야 한다.

35억년 지속된 생명역사는
외부적 조건에 적응하려는
모든 생명체가 갖는 마음의
기억들이 집적된 결과물

그렇다면 그런 마음들을 관통하는 것을 지칭하는 ‘마음’이란 개념을 다시 생각할 수 있다. 하나하나의 마음이 아니라 그런 모든 것들을 묶어서 ‘마음’이라는 하나의 말로 표현할 수 있게 해주는 것, 어떤 것에 작용하여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이 그것이다. 나의 ‘마음’이란 염두에 둔 대상에 작용하여 어떤 변화를 야기하는 능력이고, TV의 ‘마음’이란 나나 오바마 대통령이나, 그걸 보고 있는 누군가에 작용하여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는 능력이다. 그렇게 작용하여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 능력이 있는 모든 것은 마음을 갖고 있다. 개는 개 나름의 능력을 갖고 있고, 소나무는 소나무 나름의 능력을 갖고 있으며, 첼로는 첼로 나름의 능력을, 바위나 흙조차 그것 나름의 능력을 갖고 있다. 동물은 동물대로, 식물은 식물대로, 그리고 생물은 생물대로, 무생물은 무생물대로 모두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큰 것’만 그런 것은 아니다. 어딘가에서 넘어져 무릎이나 팔이 깨져본 이들은 알 것이다. 상처를 조심스럽게만 다루어준다면, 피부가 예전처럼 재생된다는 것을. 그렇게 신체를 재생하는 것은, 단백질을 합성하여 체세포를 만드는 유전자의 작용이다. 즉 유전자의 마음이 깨진 신체를 재생한다. 아니, 그것이 생물의 신체를 만들어낸다. 특정한 아미노산을 찾아 모아서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 활동의 최소단위인 코돈들도 마음을 갖고 있고, 자신의 특정한 짝 아니면 결합되길 거부하는 뉴클레오티드들도 마음을 갖고 있다. 우리 신체의 가장 작은 부분들 모두가 마음을 갖고 있다. 작용하여 변화를 산출할 능력을 가진 모든 것은 마음을 갖고 있다. 그런 점에서 우주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마음’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평등하다.

이런 식으로 마음의 개념을 일반적인 것으로 추상하여 이해한다면, 이제 ‘일체유심조’란 말에 대해서도 우리는 앞서와 약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즉 “모든 것은, 어떤 것에 작용하여 변화를 야기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이 만들어낸 것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칼이나 요리, TV나 자동차만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너무 시야가 좁은 것이다. 토끼의 신체는 그것에 작용하여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는 풀의 능력이 만들어낸 것이고, 우리 인간의 신체는 거기에 변화를 만들어내는 벼나 콩, 혹은 소나 돼지가 만들어낸 것이다. 풀 위에 내리는 비는 습기 머금은 대기에 작용하여 태양이 만들어내는 것이며, 숲의 나무를 흔드는 바람은 대기가 만들어내는 것이다. 모든 자연현상에 대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며, 그 모든 자연현상을 포괄하는 자연 전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이 바로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다.

모든 것이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라면, 나의 마음은 어떤가? 이미 앞서 본 것처럼 그것 역시 마음이 만들어낸 것 아닌가? 스피노자 식으로 말하면, 만들어내는 능력을 뜻하는 마음이 모든 걸 산출하는 역할을 한다는 의미에서 ‘능산적(能産的) 마음’이라면, 나의 마음, 개미의 마음 등 각각의 마음은 그것에 의해 산출된 능력이란 점에서 ‘소산적(所産的)인 마음’이다.

각각의 마음은 모두 무언가를 만들어낼 능력을 갖는다. 그러나 모든 것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그것은 어떤 조건에서, 어떤 마음들의 연쇄에 의해 만들어졌는가에 따라 다른 산출능력을 갖는다. 흑인을 노예로 삼으려는 마음들에 의해 만들어진 흑인의 마음과 자유인으로 대하려는 마음과 상대하는 흑인의 마음은 같을 수 없다. 유전자조차 그러하다는 걸 보여주는 유명한 사례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인 1944년 9월, 유럽전역에서 퇴각하던 독일군의 거점 중 하나였던 네덜란드 서부의 주요도시에서 독일군에 저항하는 철도파업이 일어나고 빨치산 투쟁이 격화되었다. 이에 보복하기 위해 독일군은 식량봉쇄조치를 취한다. 1945년 독일군이 항복할 때까지 지속된 이 봉쇄조치로 2만2000명이 굶어죽었다. 식량봉쇄에 따른 기근은 살아남은 사람들은 물론 그 사이 엄마의 자궁에 있던 태아들에게까지 큰 영향을 미친다. 인상적인 것은 임신 초부터 기근의 영향을 받은 아기들은 예상과 달리 평균보다 몸집이 컸으며, 이후 평균의 2배 정도가 비만한 신체를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후성유전’이라고 설명되는 이 현상은, 임신 시의 기근에 반응하여 유입된 영양소를 저장하는 유전자가 최대한 활성화되었기에 발생한 것이다. 기근을 만들어낸 마음들이 최소식량 속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최대한을 흡수하여 저장하는 유전자들의 ‘마음’을 만들어낸 것이다.

사실 이뿐만 아니라 우리의 유전자는 35억년 생명체의 역사 속에서 생존에 유리했던 것들이 집적된 것이다. 빛과 이산화탄소만 있으면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엽록체의 ‘마음’은, 서로 먹고 먹히는 만남 속에서 박테리아들의 ‘마음’들이, 그들의 생존조건이 된 물이나 대기에 속하는 ‘마음’들이 뜻하지 않게(!) 만들어낸 것이다. 정교하게 작동하는 우리의 눈은 빛에 반응하는 박테리아를 기원으로 하는 세포들에 의해, 빛을 조건으로 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광수용체에게 ‘손을 내미는’ 빛이 사라지면, 빛을 보려는 마음도, 신체적 능력도 사라진다는 것을 두더지의 퇴화된 눈은 잘 보여준다. 그런 유전자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움직여지는 우리의 신체, 우리의 마음은 35억년 생명의 역사가 만들어온 것이기도 하다.

우리가 흔히 ‘마음’이라고 부르는 나의 마음, 너의 마음은, 이런 점에서 보면 모두 35억 년 간 생명의 역사라고 불리는 연기적 조건이 기억되고 집적된 것이며, 그런 외부적 조건이 내부화된 것이다. 나에게 작용하는 모든 마음들이 응집되어 내부화된 것이다. 들뢰즈 식으로 말하면, 그 외부적 조건이 생명체의 마음속으로 접혀 들어가며 만들어진 ‘주름’, 그것이 나의 신체요 나의 마음이다. 만나는 조건마다, 만나는 마음들에 따라 모두 다르게 접혀 들어가며 만들어진 주름, 그것이 ‘소산’으로서의 마음이다. 나의 마음, 개미의 마음이고, 내 눈의 마음, 내 유전자의 마음이다.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solaris0@daum.net

[1308호 / 2015년 9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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