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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푸티상사의 지상법문] 18. 자비의 포용(4)

기자명 법보신문
  • 법공양
  • 입력 2015.09.01 13:54
  • 수정 2016.01.05 16:08
  • 댓글 0

나를 넘어 중생과 사회 향한 사랑이 불교의 대자비

 
포용은 자신의 경지 높이는 길
불교 수행의 가장 큰 특징은
원인 찾고 받아들임 배우는 것
고난은 성취로 나아가는 과정
부정의 마음 긍정으로 바꿔야

포용할 수 있어야
바다와 같이 수용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돌멩이나 오수, 흙탕물, 맑은 물, 샘물, 감로수 등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바다입니다. 바다의 이러한 특징은 많은 부모님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개성이 다른 10명의 자녀가 있다면 부모는 자연히 포용을 배웁니다. 아이가 잘하든 못하든 성공하든 아이는 부모의 자녀입니다. 아이가 실직하고 가산을 탕진해도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은 변함없습니다. 당신이 자식에게는 바다이고, 따뜻한 품입니다. 밖에서 상처받고, 억울한 일을 당해 피곤하여 따뜻한 집으로 돌아오면 뜨거운 국물을 마실 수 있고, 따끈한 만두, 밥을 먹을 수 있어 아주 행복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밖에서 분주하게 일하고, 고생하고, 억울한 일을 당해도 부모님 곁으로 돌아가서 격려를 받고, 칭찬을 듣거나 따끈한 차 한 잔, 국 한 그릇을 먹어도 아이는 대지와 하늘의 가피를 받은 것처럼 에너지가 무한하며, 그의 삶에서 가장 강한 동력이 될 것입니다.

부모가 되던, 고상한 사람이 되던 자신의 경지를 높이고, 질병을 줄이려면 반드시 크고 강한 수용력이 있어서 포용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받아들임을 배우다

불교 수행자의 가장 큰 특징은 반항이 아닌 받아들임을 배우는 것입니다. 인과론이라는 이론적 사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내가 받는 고통은 지난날의 내 잘못 때문이고, 오늘 실직하는 이유는 기술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실직하는 이유는 열심히 일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장에게 해고된 것입니다. 오늘 실직하는 이유는 인간관계를 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자들이 먼저 받아들임을 배우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라고 봅니다. 그러면 반항이 적어집니다. 반항은 이해하지 못했다는 뜻이고 받아들임은 이해했다는 뜻입니다. 이해하게 되면 원망하지 않고 화를 내지도 않습니다.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화가 나지 않으며 쉽게 병에 걸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불교인은 마음이 너그러우며 몸도 편안합니다. 마음이 자재로우니까요. 작은 일도 따지며 특히 기억력이 좋고 속이 좁은 사람은 아주 고통스러운 사람입니다.

결혼한 지 15년 후 만약 이혼하게 되면, 청혼할 때는 평생 바다가 마르고 돌이 썩을 때까지 사랑한다고 했으면서 지금 왜 이혼하느냐며 따집니다. 자신이 상대방을 어떻게 괴롭혔는지는 기억나지 않고, 15년 전의 그 맹세만 기억나나 봅니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자신의 잘못은 모조리 잊었습니다. 그래서 기억력이 아주 좋고 마음이 좁은 사람은 반드시 고통스럽습니다. 마음이 넓고 너그러워야 하며, 눈앞의 손익만 따져 번뇌를 일으키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겪는 고통은 마땅히 겪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시련은 성취의 길

젊고 학력도 좋고 머리도 아주 좋은, 젊은 수행자가 우리 법당에서 봉사할 때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곳에서 일하니 즐겁나요?”

“괜찮아요.”라고 하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괜찮은데 왜 눈물을 흘려요?”
“잘하고 있는 나를 사형이 질투해요. 보리선수는 내가 상상하는 천당이 아닌가 봐요. 그래서 번뇌에 시달리고 있어요.”

그는 내가 위로하고, 누가 비방했는지 알려주면 가서 엉덩이라도 때려 줄 거라 기대했나 봅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에게 마땅히 겪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 서유기.

“기억하세요. 손오공, 저팔계 등이 스승과 경전을 구하는 과정을 배워야 합니다.” 그들은 경전을 구하는 과정에 구구 팔십일 난을 겪었습니다. 팔십 난에 이르러 부처님을 만났는데 가짜 부처님이었습니다. 가짜에게 속임수도 당합니다. 통행료를 달라하고 서천(불교에서 인도를 가리키는 말)에 가는데 입장료를 내라 하고… 사기꾼이었습니다. 팔십 난에 만난 부처님은 사기꾼이며 허상이었습니다. 마지막에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팔십일 난에서 하나가 부족해도 원만하지 않고 한 가지 고통을 적게 겪어도 한 가지 지혜가 부족하다.” 그러한 번뇌에 대처할 수 있는 하나의 지혜가 부족한 것입니다.

한의사가 될 때 320가지 처방을 기억해야 하는데 그중에 180개만 기억했다면 다른 사람을 위한 처방을 쓸 때 많이 고민합니다. ‘왜 기억이 안 날까? 그 몇 가지 처방이 뭐였지?’ 심지어 처방전을 잘못 쓰기도 합니다. 처방전을 잘못 쓰면 아주 위험합니다. 본래는 사람을 구하고자 한 것인데 오히려 목숨을 해칠 수도 있습니다. 청각장애인을 치료하려고 했는데 언어장애인으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본래는 귀가 좀 안 들릴 뿐 말은 할 수 있었는데 처방을 잘못하여 청각장애에다 언어장애까지 된다면 큰일 아닙니까?

구구 팔십일 난에서 하나가 부족해도 성취할 수 없는 원인이 바로 이것입니다. 한 가지 고통을 적게 경험하고, 한 가지 시비를 적게 겪으면, 그 분야에 대한 지혜가 부족합니다. 어떤 사람은 한 번으로 부족하므로 여러 번 겪기도 합니다. 우리가 ‘서유기’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면 작가의 노력이 엿보입니다. 그는 우리에게 인생이 완벽해지려면 반드시 고통을 겪어야 하며 한 가지 고통이 부족해도 인생은 완벽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 시련과 고난을 모두 겪고 나면 시련이 괴로움이 아니라 성취를 향한 길이고 나를 성취시키는 길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번뇌의 마음을 잘 이용하자
그래서 젊은 제자에게 일을 잘하는데 다른 사람이 질투하니까 억울하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답하더군요.

“억울해요.”
“당신에 대한 다른 사람의 질투와 비방은 당신에게 거울과 같습니다. 만약 눈앞에 당신보다 능력 있는 사람이 나타나면 질투하지 않겠어요?”
“솔직히 말하면 저도 질투할 것 같아요. 그렇군요. 모두 질투심이 있군요. 우리는 질투심을 없애야 해요. 그렇지요?”

나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질투심은 활용하기 나름입니다. 나라면 당신을 질투하더라도 당신보다 더 잘하기 위해 노력했을 겁니다. 당신이 노력하고 있는데, 나를 앞서간다 하여 당신을 끌어내리고, 내가 그 자리를 대신하지는 않을 겁니다! 스스로 노력할 겁니다. 상대방에게 해를 끼치는 대신 내가 더 노력하여 더 빨리 더 높은 경지에 오를 겁니다.”

모든 번뇌의 마음을 활용해야 합니다. 질투심으로 사람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지요? 상대방이 법력이 강하고 깨달음을 얻어 많은 사람을 제도했다면 나는 더 많은 사람의 제도를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을 제도한 저 사람을 한 방에 때려죽여야겠어. 깨달음을 얻었으니 독살시켜야겠어.’

이것은 사람의 도리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질투심을 잘 활용해야 합니다. 만약 질투 나면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 말고 그 마음을 자신의 동력으로 삼아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질투심은 아주 필요합니다.

불법을 배운다고 탐욕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생기는 번뇌의 마음을 활용하는 법을 터득해야 하며, 자비심이 바탕이 되어야 함을 기억하세요. 자비심을 바탕으로 자신의 속된 마음, 질투심, 증오심을 활용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증오하지 말고, 자신의 게으름을 증오해야 합니다. 자신의 게으름이 싫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부지런해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부정적인 심리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에게 탐욕심이 있다면 보시로 자신의 탐욕에 대처해야 합니다. 옹졸한 마음, 탐욕, 이기심은 관용으로 대처해야 합니다. 자기애가 강한 사람은 중생을 사랑하고 사회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연애도 사랑이지만 중생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적인 사랑이며 자기 자신의 신체적, 생리적, 심리적 필요에 의한 사랑이며 사사로운 애착입니다. 중생과 사회의 이익을 위한 사랑은 박애이고, 대자대비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생각하는 사람은 앞으로 큰 인물이 될 수 있으며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습니다.

2012년 4월28일 부산 / 번역:정금주
제공:한국 보리선수 약사선원

[1308호 / 2015년 9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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