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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이종걸 집행위원

“성소수자 문제는 인권 신장의 역사…차별없는 세상이 답이다”

▲ 이종걸씨는 안타깝다. 성소수자들을 혐오스럽게 바라보는 시선이 아프다. 그는 단색의 단조로움보다 여러가지 색이 저마다 아름다움을 뽐내며 어우러지는 조화로움을 꿈꾼다.

꿈 많은 스무 살 아가씨였던 흑인여성 사끼 바트만(Saartje Baartman, 1789~1815)은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영국 의사의 꼬임에 빠져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건너갔다. 그러나 유럽에서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참을 수 없는 모욕과 수모였다. 진화가 덜 된 열등인종 취급을 받으며 성적 착취에 시달렸다. 벌거벗은 채 전시되기도 하고 틈틈이 스트립쇼도 해야했다. 호기심어린 유럽 남성들을 위해 매춘도 강요받았다. 그녀는 아프리카에서 경험해 보지 못한 참혹한 시련을 견디지 못하고 5년 만에 프랑스 파리의 허름한 골방에서 홀로 숨졌다. 그러나 그녀가 죽은 뒤에도 모욕은 멈추지 않았다. 인간이 멈추고 동물이 시작되는 지점을 찾는다는 주제 아래 그녀의 뇌와 생식기는 연구대상이 됐다. 유해 또한 프랑스 인류학박물관에 전시돼 오랜 세월 유럽인들 눈요기 거리가 됐다.

성적 취향은 보호받아야 할 권리
기독교 혐호감 조장 도 지나쳐
차별금지법·동성결혼 허용 절실

성소수자 얘기 듣는 종교계 적어
조계종노동위원회 초청법회 감사
차별철폐 문화행사 함께 진행키로

성소수자는 같은 사회 구성원
사랑하며 사는 ‘똑같은 사람’
“차별은 인간존엄 대한 도전”
여러 색 조화이루며 어우러진
아름답고 조화로운 사회 꿈꿔

바트만의 존재는 1993년 세상에 알려졌다. 남아프리가공화국은 백인들에 의한 인종차별정책을 종식시키고 최초의 흑인대통령을 탄생시켰다.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다. 그는 대통령이 되자마자 프랑스에 바트만의 유해 송환을 줄기차게 요구했다. 마침내 2002년 5월, 187년간 유럽을 떠돌던 바트만의 유해는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고향 강가에 묻혔다.

바트만의 사례는 잘못된 편견을 보편적 진리로 받아들일 때 인류가 얼마나 잔인해 질 수 있는지 경종을 울리는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러나 바트만의 슬픔은 결코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대한민국에도 바트만과 같은 존재들이 있다. 성소수자들이다. 성소수자란 이성간의 사랑과 다른 방식으로 감정을 나누는 사람들을 말한다. 동성애자, 양성애자 그리고 트랜스젠더(육체적 성과 정신적 성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사람들은 남자가 여자에게 끌리고 여자가 남자에게 끌리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성소수자들은 동성에게 끌리거나 육체와 다른 정신적인 성을 갖고 있기도 하다.

우리사회에서 성소수자에게 가해지는 모욕과 압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변태성욕자 혹은 정신이상자로 몰리거나 심하게는 사회에서 격리해야 할 대상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불교계에서는 몇 해 전부터 성별, 인종, 피부색, 종교, 성적 취향에 따른 차별을 법으로 금하자고 요구해오고 있다. 그러나 보수 기독교계 반발이 거세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동성애가 만연해 도덕적인 타락과 에이즈 같은 질병이 창궐해 나라가 망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집행위원 및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이종걸씨는 이런 편견에 온몸으로 맞서 싸우고 있다. 그러나 그 일은 태산을 무너뜨리는 것만큼이나 힘들고 버겁다. 성소수자를 향한 우리사회의 편견은 바트만을 향한 유럽인들의 편견만큼이나 완고하고 거칠기 때문이다.

-올해 6월 미국 연방대법원이 동성결혼을 허용했다.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세계적 흐름은 어떤가.
성소수자 문제는 인권 문제다. 민주주의와 인권이 발달된 나라일수록 성소수자 인권 또한 중요한 이슈로 다뤄지고 있다. 현재 동성결혼을 허용하는 나라는 21개국 정도다. 북유럽에서 북미, 남미로 이어지고 있다. 성소수자 문제는 인권신장의 역사였다. 한 나라의 인권이 신장되면 성소수자 인권도 신장된다. 그러나 쉽게 얻어진 것은 아니다. 오랜 세월 성소수자들이 스스로의 권리를 찾기 위해 치열하게 싸워온 피와 땀의 결과이기도 하다.

-성소수자 문제는 성적 취향 이전에 인권 문제다. 우리사회의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어느 정도라고 보는지.
국가인권위법에 성적 취향으로 차별받지 말아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헌법에도 보장된 권리다. 그러나 성소수자들이 느끼는 현실은 전혀 다르다. 우리사회에서 성소수자는 한때 해외토픽에나 나오는 신기한 사람들로 인식했다. 2000년대 접어들면서 상황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트랜스젠더인 하리수와 동성애자인 홍석천의 커밍아웃(자신의 성 정체성을 공개적으로 드러냄)으로 성소수자 문제가 사회에 심각하게 부각됐다. 성소수자는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으며 미래에도 존재할 것이다. 다만 과거에는 억압적 분위기 속에서 드러내지 못했을 뿐이다. 성소수자 문제가 사회이슈로 부각되자 공격도 늘고 있다. 특히 기독교 보수주의자들 공격이 거세다. 성소수자들의 성적 지향에 대한 혐오감을 심기 위해 안간힘이다.

-한국의 성소수자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사회문화적으로 그리고 제도적으로 모든 것이 취약하다. 일단 가족에서도 직장에서도 자신의 성적 취향을 드러내기가 쉽지 않다. 성소수자임이 공개되면 평온하던 삶에 엄청난 일이 벌어진다. 직장에서 왕따를 당하거나 심하게는 쫓겨나기도 한다. 온갖 모욕과 핍박에 스스로 직장을 그만 두는 경우도 많다. 보호의 울타리가 돼야 할 가족 안에서도 용납이 쉽지 않다. 그래서 홀로 가슴앓이를 하는 경우가 많다. 제도적으로 동성 간 결혼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다. 서로를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함께 살아도 의료보험 같은 법적보호를 받을 수 없다.

-불교계에서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모든 존재는 평등하게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올해 6월 조계종 노동위에서 성소수자들을 위한 초청법회를 열어줬다. 종교계가 나서서 성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지지를 해준 경우가 별로 없다. 그래서 감사하다. 올해 9월에는 조계종과 함께 차별철폐 문화행사를 갖기로 했다. 연례행사이기는 하지만 불교계와 함께 하기로 한 것이 중요하다. 종교라는 이름으로 가장 아프고 저주스런 용어를 동원해 공격을 하는 곳과는 참 대조적이어서 큰 위안이 된다.

-기독교 보수주의자들은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동성애가 만연하고 에이즈가 창궐해 나라가 망한다고 주장한다.
모든 기독교인들이 성소수자에 대해 혐오스런 발언을 쏟아내는 것은 아니다. 진보적인 그룹에서는 우리와 함께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기독교 보수주의자들이 성소수자를 공격하는 것은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막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지만 기독교 내 헤게모니 싸움도 있다. 동성애가 허용되면 에이즈 같은 질병이 창궐할 것이라는 주장은 비과학적임이 이미 증명됐다. 성소수자의 인권이 확실하게 보장되는 나라에서도 성소수자 비율은 1~3%정도로 알고 있다. 동성애는 성적 지향의 문제지 전염병이 아니다.

-가장 큰 편견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성소수자에 대한 문제를 동성 간 성행위로만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동성이든 이성이든 결국 사람과 사람의 관계 문제다. 남성이 여성에게 끌린다고 해서 모든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듯, 동성에게 끌린다고 해서 모든 동성을 성적대상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이성애자들이 살아가는 방식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함께 생활하고 사랑하는 보편적인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다른 삶의 방식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차별을 하거나 모욕을 줘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는 아직 그런 열린 마음이 부족하다.

-청소년기에 성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는 아이들이 많을 것 같다.
성소수자 문제에서 가장 심각한 것은 누구와도 고민을 나눌 수 없다는 것이다. 학교에 보건교사나 상담전문가가 있다고 하지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학교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발언을 쏟아내는 선생님들도 많다. 그래서 아이들이 많은 상처를 입는다. 특히 기독교계에서 운영하는 미션스쿨의 경우 정도가 심각하다. 성적 지향의 문제로 학교에서 왕따를 당한 끝에 자살한 학생이 있었다. 학교가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방치했다. 그런데 대법원에서 학교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우리사회가 이렇게 편협하다.

-우리사회에서 스스로 성소수자임을 인정하기가 두려울 것 같은데.
일단 스스로 받아들이는 것부터가 어렵다. 내적인 혐오가 있을 수 있다.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알고 있어도 이 사회에서 성소수자로 살아갈 수 있을까 큰 두려움에 떨게 된다. 그래서 자신은 동성애자가 아니라고 최면을 건다. 사회적 편견을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스로의 성적지향을 억누르며 이성애자로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그렇지만 최근에는 조금씩 용기를 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성소수자들 사례가 회자되고 롤 모델도 나오고 있다. 거기에 힘을 얻는 사람들이 많다.

-성소수자들이 노출과 같은 과격한 방식으로 존재를 알리는 방법은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혐오세력들이 줄기차게 공격하는 것이 노출이다. 매년 6월에 열리는 성소수자 축제에 부정적인 생각을 심어주기 위해 그런 말로 혐오감을 심고 있다. 노출을 보기 위해 행사에 나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참석한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노출이 너무 없어 실망했다고. 그러나 성소수자들의 노출을 보는 시각은 내부에서 복합적이다. 노출을 통해서라도 존재를 알려야 되는 것 아니냐는 주장들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충격적이지만 그만큼 효과도 크다. 미국에서는 실제 노출 등 다양한 형태의 퍼레이드가 세월이 지나면서 편견을 개선하는 효과로 이어졌다. 그래서 성소수자 인권을 보는 단체들의 고민이 깊다.

-정부나 공공기관에 바라는 점들도 많을 것 같다.
무엇보다 차별금지법 제정이 중요하다. 성적 지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는 것은 인간 존엄에 대한 도전이며 자유에 대한 탄압이다. 공공기관이나 교육기관에서도 편견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위한 교육이 선행돼야 한다. 언론 역할도 크다. 언론에서도 동성애와 같은 성소수자 문제를 인권의 문제로 보지 못하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가십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진보를 자처하는 정치인들도 성소수자 문제를 보는 시각이 여전히 편협하다. 세상이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됐으니 조금 기다려달라고 한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데, 이렇게 함께 살아가고 있는데 무얼 기다리라는 말인가. 존재를 부정하는 말처럼 모욕적인 것은 없다.

-사회에 바라는 점도 있을 것 같다.
성소수자들을 대상으로 욕구조사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가장 바라는 점을 묻는 질문에 첫 번째가 차별금지법 제정이었고 두 번째가 동성결혼 허용이었다. 한마디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고 싶다는 말이다. 매년 6월에 벌어지는 퀴어문화축제는 성소수자들에게 큰 위안이 된다. 같은 성적지향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서울광장 주변을 걸으면서 느끼는 해방감을 이성애자들은 짐작하지 못할 것이다. 이성애자들이 행사에 함께 참여해 다름을 받아들이고 성소수자들의 인권을 함께 생각해보는 문화로 정착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3년 뉴질랜드에서 동성결혼을 허용하는 법안이 통과됐다. 세계에서 13번째였다. 동시에 기독교의 맹공이 시작됐다. 그때 뉴질랜드 국민당 모리스 윌리엄스 위원은 의회연설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개정안 통과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약속합니다. 개정안 통과에도 불구하고 내일 태양은 떠오를 것입니다. 당신에게 피부병이 생기거나 두꺼비가 침대에 나타나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세상은 그냥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니 큰일 난 것처럼 굴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개정안이 적용되는 사람에게는 환상적이겠지만 남은 우리들에게, 삶은 예전처럼 그냥 흘러가게 될 테니까요.”

성소수자들은 무지개를 상징으로 삼는다. 단색의 단조로움보다 여러가지 색깔이 저마다 아름다움을 뽐내며 어우러지는 조화로운 세상. 성소수자들이 갈망하는 차별 없는 세상의 모습이다.

김형규 편집부장 kimh@beopbo.com

[1309호 / 2015년 9월 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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