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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살배기 난민 ‘아일란 쿠르디’

터키 해안가 모래에 얼굴을 파묻은 채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 세 살배기 아이 ‘아일란 쿠르디’의 사진 한 장이 세상을 눈물짓게 하고 있다. 이슬람국가(IS)의 위협을 피해 시리아에서 터키로 건너간 쿠르디는 유럽으로 건너가기 위해 고무보트에 몸을 실었다가 엄마, 형과 함께 바다에서 짧은 생을 마감했다. 쿠르디가 형과 환한 웃음을 지으며 찍었던 사진은 SNS를 통해 세계에 전송되면서 난민유입에 대해 배타적이었던 유럽의 양심을 일깨우고 있다.

터키 해안가 시신으로 발견
전 세계 울음바다로 만들어
불법체류자 자녀 또한 난민
인류애 돌아보는 계기 돼야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난민은 21세기 인류가 직면한 가장 참혹한 재앙으로 불리고 있다. 지난해 전 세계 난민은 6000만명에 이른다. 특히 2011년 시작된 시리아 내전으로 난민은 매년 급증하고 있다. 시리아에서는 어린이를 포함해 이미 25만명이 사망했고 이를 피해 지중해를 건너다 쿠르디처럼 목숨을 잃은 난민이 올해만도 2600여명에 이른다. 최근에는 냉동차에 숨어 국경을 넘으려다 70여명이 숨지는 비극도 일어났다. 그러나 유럽으로 떠나도 안전은 보장되지 않는다. 무사히 도착해도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추방이라는 가혹한 형벌뿐이다.

그러나 쿠르디의 죽음으로 유럽이 변하고 있다. 빗장을 풀고 난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나라들이 늘고 있다. 독일 총리와 오스트리아 총리는 자국에 들어오는 난민들을 조건 없이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핀란드 총리는 국민들을 향해 자신의 집을 개방하겠다고 선언했다. 유럽의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박수로 난민들을 환영하고 있다. 특히 무슬림에 대해 병적인 경계심을 갖고 있는 유럽이 쿠르디의 죽음 앞에 보여준 포용심은 종교의 벽을 넘어선 그들의 지성과 인류애의 깊이를 보여준다.

그러나 유럽인들의 행동에서 우리는 난민에 대한 우리의 빈약한 철학과 가난한 인류애를 뼈아프게 돌아보게 된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난민에게 가장 배타적인 나라 중 하나다.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난민법을 제정했다지만 추방당하지 않고 난민지위를 인정받는 비율은 5%에 불과하다. 세계 난민 협약국 평균치가 38%임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몰인정한 수준이다. 시리아 난민의 경우도 유럽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나라에 난민 신청을 한 시리아인은 지금까지 760명이다. 그러나 난민으로 인정된 시리아인은 3명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부끄러운 것은 우리 안의 난민들이다. 우리 주변에는 이미 수많은 쿠르디가 존재한다. 불법체류자 자녀들이다. 태어난 나라가 아닌 부모의 국적을 따라가는 속인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한국에서 불법체류자 자녀들은 병원도 학교도 다니지 못한다. 발각되면 부모와 함께 추방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방치된 채 숨어사는 아이들이 우리주변에 2만명에 이른다. 지난해 12월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이 발의됐지만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오히려 극우주의자들로부터 외국인에게 혈세를 낭비한다는 거센 저항에 직면해 있다. 난민유입에 난색을 표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국내로 유입되면 종교 갈등과 경제 혼란이 생길 것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국내에는 이미 100만 명이 넘는 외국인과 이주민이 존재한다. 이들에 의해 나라가 혼란에 빠졌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없다.

일제강점기와 6·25한국전쟁, 가난 등 생존을 위협하는 수많은 고통을 이겨낸 우리는 역설적이게도 남의 아픔을 돌아볼 여유를 갖지 못했다. 같은 핏줄인 남북 이산가족의 상봉마저도 인도주의적 관점이 아닌 정치적인 역학관계에 따라 수시로 이용되는 것을 보면 야박한 우리의 민낯을 보는 것 같다.

▲ 김형규 부장
“우리나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난민들이 힘겹게 독일 국경을 통과해 버스에 오르자 독일인 버스기사는 환한 웃음과 함께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불교는 자비와 평화를 말한다. 남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 불교의 보살행이다. 그러나 독일인 버스기사 만큼의 자비로움을 가슴에 품고 사는 불자들이 얼마나 될까. 쿠르디의 가슴시린 죽음이 불자로서의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 아프게 일깨우고 있다.

김형규 kimh@beopbo.com
 

[1310호 / 2015년 9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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